헨델의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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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합창단 제175회 정기연주회 ‘헨델의 메시아’
●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일시: 2018. 12. 8 오후 5:00

아직은 2018년
1월호 매거진이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제이는 아직 2018년 12월을 살고 있다. 제이의 2018년은 어땠을까? 센터의 이런 저런 일정들로 분주했고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큰 수술로 몇 달간 병간호와 집안일까지 하느라 지치고 힘든 시간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랑하게 매거진에 올릴 글을 쓰고 있는걸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보낸 2018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2018년의 보라매공원
다음 주말쯤엔 올해 기록해 두었던 로그북을 둘러보고 내년 계획을 세울 시간을 가지려 한다. 오늘은 자료를 찾느라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니, 보라매공원을 오가면서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띈다. 동일한 장소지만 시간이 바뀌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보라매공원. 센터에 들어가기전 만나는 자연이 제이는 참 좋다.

연말엔 이 공연이지요.
이번 달은 어떤 곳에 가고,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의자에 걸터앉아 곰곰이 고민 또 고민하던 제이. 신중하게 고른 공연은 헨델의 메시아다. 연말이면 하는 공연이라고 하는데 제이는 처음 알았더랬다. 부활절 교회에서 듣는 칸타타쯤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예매를 했다.
토요일 오후 5시는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지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래서 지각을 했다. 천국 갈 땐 문 닫히기 전에 도착하자.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사이 천국문, 아니 콘서트홀의 문이 열렸다. 닌자와 같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신속한 동작으로 자리에 착석. 전석 매진이라고 했는데 원형 탈모 마냥 곳곳에 빈자리가 보인다. 지각자만 많은 게 아니라 결석자들도 많군. 이렇게 저렇게 산만한 주의력을 다잡고서 연주회에 집중.

오라토리오를 아시나요?
오늘 제이가 선택한 헨델의 메시아는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TV나 영화 OST로도 익숙한 곡이 나온다. <할렐루야>란 곡이다. 제이가 선택한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된 이번 공연은 국립합창단의 합창과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관현악 연주, 솔리스트 4명의 독창이 함께하는 규모가 큰 오라토리오 공연이다. 오라토리오란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종교적 극음악을 말한다. 별도의 무대 장치와 의상을 마련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오페라와는 달리 제작비가 적게 든다는 이점이 있다. 당시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헨델은 오라토리오 작곡을 통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곡을 건너뛰고 시작된 1부 공연
헨델의 <메시아>는 총 3부로 구성돼있다. 전곡을 듣는데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아뿔싸. 쉽게 생각하고 왔는데 굉장한 곡이었구나.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두 번째 곡을 시작으로 1부, 총 21곡을 듣는다. (첫 번째 곡은 지각을 한 덕(?)에 듣지 못했답니다.) 합창단 뒤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영어와 한글자막으로 가사를 지원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제이를 깊은 잠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건져준 고마운 텍스트들.  그나저나 지휘자님의 옆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뵌듯하다. 우리 집회 오시는 분일까? 아, 우리 교회 성가대 지휘자님이시구나. 갑자기 동네 주민을 만난 듯 이 연주회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마음으로 지휘자님께 아는 체를 하고, 자막도 보고, 지휘자님 덕에 친근해진(?)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선율에 빠져도 보고, 솔리스트들의 옷차림에도 관심을 가졌다가, 합창단의 합창에도 빠져서 듣는 사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1부가 끝났다. 약20분 정도의 인터미션이 주어졌다.
이 시간에 제이는 프로그램 북을 2천원 주고 구입했다. 텍스트 덕후로서 미리 읽어줬어야 하는데, 프로그램 북에게 속으로 사과를 하며 글을 읽었다.

[할렐루야]를 듣는 우리의 자세
프로그램 북의 클라이맥스인 광고 페이지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2부가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고난 당하심을 다루는 2부와 부활을 다룬 3부까지 연속 공연이다. 2부와 3부가 연결돼 있는데 제이는 어떻게 2부의 마지막을 구분했을까? 2부의 마지막 곡은 귀에 너무도 익숙한 곡, <할렐루야>가 나오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제나저제나 2부의 마지막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때가 됐다.
“할렐루야”와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가 합창단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한 음씩 쌓여 올라가다가 절정에 이르면, “왕의 왕.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로 최고 절정에 이른다. 오라토리오 초보자인 제이 귀에도 이 곡은 너무 유명해서 훌륭하다가 아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높여드리는, 최고로 훌륭한 곡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는 곡이다.

<할렐루야>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공연 문화가 하나 있다. 객석에 앉아있던 모든 이들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곡이 끝날 때까지 서있는 것이다.
문화의 시작은 이렇다. 때는 독일 사람 헨델이 영국에 건너와 국왕 조지 2세 앞에서 이 공연을 초연했을 때다. 국왕께서는 이 <할렐루야> 합창에 너무 감동하신 나머지 기립하여 이 곡을 들으셨다. 그 후로 <할렐루야>는 <기립 할렐루야>가 됐다는 사실. 머나먼 나라 영국의 18세기 문화가 21세기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메시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을 콘서트홀에서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있다는 감동이 왔던 순간이다. 이제 <메시아>는, 언젠가 천국에 가게 되면 챙겨봐야 할 공연 일정 중 제이의 1순위가 됐다. 그때는 헨델 님을 만나서 공연 일정을 물어보고 원작곡자의 공연으로 꼭 챙겨 봐야지. 아니면 오라토리오 합창단원으로 써달라고 떼를 써봐야겠다. 그땐 제이의 꽥(?)꼬리 목소리가 은혜롭게 바뀌어 꾀꼬리가 되어있지않을까?

비하인드 스토리
헨델은 <메시아>를 작곡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찰스 제넨스로부터 메시아의 대본을 받은 지 24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겸손은 천재의 또 다른 이름일까? <메시아>에 대한 그의 발언이 걸작이다. “신께서 내게 찾아오셨던 것만 같다.” 겸손한 천재 헨델의 신작을 듣기 위해 몰려들 관중을 염려하여 신문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많이 차지하는 현란한 복장은 삼가라.” 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이 말인즉슨 신사들은 검을 차지 못하고, 숙녀들은 스커트를 부풀리는 후프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 현란한 복장을 삼간 덕에 600석의 공연장에 700명이 끼여 앉아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당연히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한다. 무려 국왕 폐하께서 기립하셨다니, 게임은 끝난 거지.

지금이 그때인 듯 그때가 지금인 듯
헨델의 <메시아>는 다른 오라토리오와 뚜렷한 차별점이 있다. 멘델스존의 [엘리야]나 바흐의 수난곡은 특정 인물과 시점을 기준 삼아 작곡한 곡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그 역을 맡은 뛰어난 솔리스트의 음악적 기교를 듣기 위해서, <수난곡>은 고난주간이라는 특정한 날에만 들을 수 있는 곡이란 뜻이다.
반면 헨델의 <메시아>는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 신약의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한 예수님에 대한 내용 전부를 다룬다. 프로그램 북에 담긴 53곡의 대사를 읽어보니,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다룬 대사가 없다. 예를 들면,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이사야 40장에 나온 예언적 말씀이고, <주가 살아계심을 나는 안다>는 욥기 19장의 말씀이다. <사람을 인하여 죽음 왔으니>는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이다. 구약이 앞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신약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다루고 있는데 <메시아>가 신구약 내용 전부를 담고 있는 대작 중의 대작이 된 셈이다.

이렇게 훌륭한 대작을 헨델 혼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을까? 아니다. 훌륭한 동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대본을 맡은 제넨스는 <메시아>를 구상할 때, 틀림없이 성경 전체에서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는 모든 말씀들을 뽑아서 묵상했을 게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토대로 ‘지금이 그때인 듯 그때가 지금인 듯’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들을 수 있는 53개의 대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위에 헨델의 훌륭한 음표가 더해졌으니, 이 곡은 1741년 초연 된 이후로 2018년을 지나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공연될 게 분명하다.

“신의 뜻이야말로 위대하다. 지식과지혜의 보배는 모두 신께 있다.”
<메시아> 악보 초판 서문에 헨델이 적은 글이다.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를 성경의 수많은 저자들의 입을 통해 예수님께 들려드리도록 만든 헨델의 <메시아>. 재정적 파탄과 뇌일혈로 건강까지 잃었던 헨델은 온천 요양 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작곡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화려한 오페라가 아닌 수수한 오라토리오를 선택했다.

요즘 장로님은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려고 저러시나…’ 싶게 집회 참석자들에게 호통을 치시면서 설교를 하신다.“ ‘아멘’ 하지 마세요!‘ 내가 치유되었습니다!’ 말하세요!‘ 주시옵소서’ 하지 마세요! 이미 내 안에 그분이 계세요. 자신을 버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해보세요!”
음표 하나도 그릴 수 없었던 시기,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게 유일한 하루 일과였던 그때. 헨델은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던 재능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신의 뜻이야말로 위대하다. 지식과 지혜의 보배는 모두 신께 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2019년을 맞이하며
<메시아>는 주로 연말에 공연을 하니, 제이의 글을 읽고 공연을 꼭 보고 말리라 다짐하셨다면. 하나하루 로그북 2019년 12월 일정에‘ 헨델의 <메시아> 공연 예매하기’라고 기록해 두고, 1년을 기다렸다가 관람하시기를 소망해 본다. 한국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메시아> 공연이 더욱 많이, 자주 열릴 수 있도록.

2019년 1월호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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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헨델의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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