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아름답게 떠나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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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주안맘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가 아이가 4세부터 다녔던 어린이집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수첩 4권을 발견했다. 수첩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손수 써주신 아이의 하루하루와 나의 고민과 당부가 적혀있는 수첩을 혼자 울고 웃으며 읽어내려갔다. 매일 선생님과 주고받은 글을 읽다 보니 워킹맘으로 아등바등 살던 그 시절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한 편의 소설이 따로 없구먼…

5살 어린이의 재밌는 일화 한편소개!

– 2014년 9월 15일 –

어머니~ 오늘 주말 지낸 이야기 시간에 주안이가 친구들에게 교회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사람들이 불에 타는 이야기 (다니엘과 세 친구로 추정됨)를 하면서 교회에
잘 다니자고 했더니 친구들이 살짝 겁을 먹은 표정으로 끄덕거렸어요. 몇몇 친구들은
다음 주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답니다.

아이에게도 보여줬더니 자기가 이랬었냐며 너무 재밌다고 깔깔댔다. 이쯤 되면 전도라기보다 협박?

2년간의 기록을 쭉 읽어 내려가다 보다보니 아이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나도 초보 엄마이고 일하면서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아이가 남들과 다른 성향을 보이면 ‘무슨 문제가 있나?’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읽다보니 행동이나 성향이 9살이 된 지금이랑 어찌나 똑같은지 웃음이 났다. 내 기준에서 보면 잘못된 것, 고쳐야할 점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질과 성품이라면 장점을 살려주고 단점은 훈련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변화도 읽을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내 마음의 변화였다. 조용히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면서 걱정하고 조바심 내던 내 마음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신기한 건 아이의 마음도 내 마음과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4살 수첩에는 거의 매일 “오늘 하기 싫다고 울었어요, 집에 가고 싶다고 울먹였어요”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때는 분명 예민하고 불안해하고 짜증도 많은 아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안정된 아이로 자라고 있다니 감사해서 막 눈물이 났다. (주책이야 주책.)

아들에게 보여줬더니 “나는 이때 너무 엄마랑 헤어지는 게 싫었어요.” 하면서 운다. “엄마도 그때는 항상 걱정 속에 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갑자기 아들과 안고서 엉엉 울음바다. 무슨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뭐하냐고 남편이 황당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네…

뭐, 어쨌든 함께 울고 웃으며 읽다보니 새삼 2년간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이런 자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구나. 내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네. 사소한 기록도 인생의 작은 퍼즐이 될 수 있고 풀리지 않는 고민, 작은 아이디어 조각 하나도 적어놓으면 하나님의 때에 풀려서 구슬 꿰듯 꿸 수 있는 거구나.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았던 시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쭉 연결해서 보니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기록하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사라진 것만 같은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아~ 잊혀진 날들이여!

2015년 12월 어느 날, “이제 너 7살 형아 되니까 좋겠다.” 했더니 아들이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거다.
“아~~ 내 6살~~~!! 얼마나 즐거웠는데 소중한 내 6살이 사라지다니 너무 슬퍼요. 엉엉~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요?”하면서 30분 넘게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당황해서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했더니 더 크게 앙~~! “하나님은 못하시는 게 없으니까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기도할 거예요.” (아니 근데, 울어도 40살 넘은 내가 울어야지 왜 네가 우냐고요.) 그 뒤로 7살 12월도, 8살 12월도 아이는 지나간 시간이 아쉬워 울었다.

올해도 벌써 12월이 왔다. 올해는 먼저 이 부분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 하고 시간을 아껴야 해.”하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최대한 우리가 보낸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념으로 남기기로 했다. 요즘은 사진을 엮어서 만들어주는 사이트가 많으니 사진을 모아 연말에 사진집으로 만들고 만든 작품이나 그림들을 찍어서 작품집도 만들자고 약속했다. 지나간 시간을 그저 기억 속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자료로 만들어 차곡차곡 모으면 역사가 되리라.

아이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 역시 또 세월을 그냥 보낸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몰려왔다. 40대 이후 시간이 1년 단위로 흐르는 것 같은 건 나만의 느낌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한 해 동안 쓴 노트와 찍었던 사진, 올해 초 세웠던 계획들을 대략 둘러봤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했네? 아이는 쑥쑥 자랐고, 여기저기 다니며 틈틈이 참 잘 놀았고, 좋은 홈스쿨 동지들을 만났고, 인생에 획을 그을 만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고, 조물조물 참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이 끈끈하게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가족 각자가 각자만의 톱니를 열심히 돌렸지만 이가 맞지 않아서 제자리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면 이제야 톱니가 딱 들어맞아 앞으로 한 발자국 나가게 된 느낌이랄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되고 이제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함께 한 팀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구나.

‘기록’에 취약했던 내가 뭐라도 끄적였더니 놀랍게도 한 해를 허무함보다 감사와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기대감 속에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듯하다.

조만간 온 가족이 모여서 한 해를 평가해서 감사한 일은 감사하고 각자 잘 한 일은 칭찬하고, 격려하고 내년 해야 할 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조용한 곳으로 리트릿을 떠나는 것도 좋겠네. 그렇게 올해는 눈물 없이, 웃으며 찬란했던 너의 9살, 아름다웠던 우리 모두의 2018년을 떠나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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