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매일 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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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6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말씀

 

‘우리는 왜 매일 죽어야 하나?’

이 질문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합니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완전한 죽음이 아니라 그 뒤에 새로운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살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고,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세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는 것이 무엇인지 해결하지 못한다면 열심히 신앙생활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으심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는 삶은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겸손하라고 가르친 사도 바울이 자기 자랑을 합니다. 자랑하는 내용은 ‘날마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죽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두 가지의 죽음이 있습니다. 옛 본성의 죽음과 거짓자아의 죽음입니다. 이 두 가지 죽음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어떤 면으로 보면 피에 대한 이야기, 곧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후 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두 번의 죽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진다고 했습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 사람/새 사람, 겉사람/속사람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락했을 때 우리 마음은 세상 신의 성품을 나타냈습니다. 옛 자아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이 마음의 생각과 감정이 나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세상 신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내 자체가 잘못된 존재인 것을 깨닫고 고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이 일어납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심으로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자아가 형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자아가 내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혼으로써는 이를 느낄 수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영적 존재가 된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옛 자아(sinful nature)가 아니라 거룩한 자아(divine nature)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 (NLT)

…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KJV)

이 말씀을 보면 과거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의 옛 자아, 옛 본성이 못 박힌 것입니다. NLT버전 성경을 보면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똑같지만 본질은
바뀌었습니다.

‘내 안에’라는 것은 ‘심령 안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이 말씀에서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입니다. KJV버전에는 ‘the life I now live the flesh’라고 돼 있는데 ‘육체 가운데 지금 살고 있는 생명’입니다. 한글에는 ‘내가’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육체 가운데 살고 있는 생명’이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의 정확한 뜻도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입니다. 이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 안에 있는 믿음, 즉 하나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본질이 변했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 믿음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 의가 나타나게 됩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KJV, ASV)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NIV, RSV)

이 말씀은 한글로도 제대로 번역이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믿는 나는 누구입니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접붙임의 비유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로마서 11장과 요한복음 15장에 접붙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롬 11:16-18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가지의 생명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에 의지하는 것이지 가지 자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뿌리로부터 수액이 올라옴으로 인해서 가지에 포도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만 본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가지가 자신의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접붙임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원래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옛 본성, 옛 자아가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새 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 접붙임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가 됩니다. 뿌리로부터 수액을 공급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지혜와 능력이 내 삶에 나타납니다. 처음에 가지가 원 나무에서 잘라지는 것은 옛 자아의 죽음이고, 접붙임을 받은 이후에 가지가 포도나무의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 매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거짓자아의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 위해서 자기의 생각, 감정, 의지를 날마다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지에 흘러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면 가지는 말라비틀어지고 결국은 나무로부터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느낄 수 없다고 해도 우리 심령 안에는 새로운 자아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육신과 마음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면서 매일 우리를 도둑질합니다. 일, 사건, 질병 등을 통해서 내 마음이 묶이도록 합니다. 심지어는 광명의 천사로 찾아와서 ‘주의 일을 해라, 주를 위해 살아라’ 하면서 우리를 속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현실에 묶이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내 마음이 변화되고 말씀이 마음에 기록이되는 것입니다.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현재 분사 능동태)(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Jesus)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the Jesus’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육체에 가지고 다니는 것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주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본래 그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라고 하면 마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안에 짊어진 결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머리의 기억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호흡하는 것은 예수를 언제 믿었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위에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때가 아니라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과 그 생명 안에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믿었다면 더 이상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 그 십자가와 성령 안에 내가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은 나눌 수가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기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always carrying’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죄를 짓고 실수하고 좋지 않은 마음을 품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가지에 있는 옛날 습성 때문에 잘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후 4:11
우리 살아있는 자가(for we who are alive)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For we who are alive’. 이것은 거짓자아의 죽음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연결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마음에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과 말씀이 우리 마음을 통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말씀이 마음에 기록되면서 믿은 대로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옛 자아의 죽음은 한 번 있는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동안 계속되어 내가 그 바탕 위에 살아갑니다. 거짓자아의 죽음은 매일 일어납니다. 마귀가 속일 때마다 죽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죽음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온전한 자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죽음이 필요합니다. 한순간이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성령님에 의한 새 생명이없다면 거짓자아만 존재하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인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논리적, 시간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칭의와 성화를 논리적, 시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칭의가 먼저 있고 그다음이 성화의 삶이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맞는 것 같지만 칭의와 성화는 나눌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칭의와 성화의 삶입니다. 칭의와 성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십자가와 성령은 늘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혼과 육을 통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아무리 수액이 나무에서 가지로 흘러들어가려고 해도 가지가 거부하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고, 현실에서 문제가있을 때마다 나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현실에 묶이지 않고 그 마음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훈련할수록 점점 성령의 소욕에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 거짓자아의 죽음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결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매일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화 다 내고 난 다음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화내는 도중에 멈추고 사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진짜 변했다는 징표입니다.

지금 전혀 기뻐할 기분이 아니라고 해도 본질(진리)에 기초해서 내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령과 말씀에 의해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행동할 때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고 그 은혜 때문에 자기 마음을 버리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길 원하시고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그때부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다 포기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지지하시고 세밀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믿겨져야 합니다. 자기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냥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부터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2018년 12월호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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