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변화에서 의식의 변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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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철 장로 │2019년 2월 19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말씀

인식은 뭔가에 관심을 두고 분별하고 판단해나가는 과정과 행위를 말하고, 의식은 알고자 하는 주체인 내 존재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인식은 인식하는 행위에 초점이, 의식은 의식하는 주체에 초점이 맞춰진 개념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뜻을 알려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분별하게 되는지 나와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것이 열쇠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사고방식을 다르게 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음은 ‘transformed’ 즉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었다가 성충이 되는 것처럼 완전히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은 네 사고방식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너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변혁시키시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보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루 평균 무려 6만 개 이상의 생각을 하고 산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은 목소리가 올라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 선한 목소리가 자기라고 생각하면서 악한 목소리는 닮지 않으려고 저항합니다. 그러나 모든 목소리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 대해서 마음속에서 반응하면서 결국 ‘나’를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선한 목소리와 악한 목소리 모두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목소리 뒤에는 목소리를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타락한 존재가 아닌 영적 존재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진짜 ‘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으며, 영혼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그리스도 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마음에 묶여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감정과 나쁜 생각대로 살다가도 ‘이러면 안 돼, 이렇게 살아야지.’하며 나의 마음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선을 추구해 봐야 그것은 마음의 작용일 뿐이고, 그리스도 의식이 없이 나의 인식만 바꿔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선을 추구하는 마음의 작용일 뿐, 여전히 마음에 묶여있는 영혼, 즉 ‘거짓자아’에 속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라는 주체는 변하지 않은 채, 오직 내가 인식하고 추구하는 대상만 바뀐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 그래서 우리를 그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핵심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중생한다는 것은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의식, 즉 자아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바뀌어야지 생각은 아무리 바꿔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내는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지금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의식을 가질 때부터 비로소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복음에 기초해서 중생한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에 속아서 마음이 생각과 감정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내 마음을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의 잘못된 생각을 거둬내어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실상을 바라볼 때 그 실상이 우리의 마음에 심기게 되고 믿은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삶입니다.

롬 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이란 영혼이 마음에 묶여서 주체는 바뀌지 않은 채 ‘나는’, ‘나는’ 하는 생각입니다. 영의 생각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내면에 올라오는 목소리는 당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의 목소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경험에 기초한 선한 일을 추구하는 것은 당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이 아니며 당신 스스로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주체는 그대로 있고 대상만 바꾼 그 인식에서 벗어나서 당신의 의식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마 6:26-33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의 생각으로 인식만 바꿔서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본들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느냐. 그것은 네가 주체가 된 네 생각일 뿐이다. 그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생각에 속지 말라. 하늘 아버지께서 네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너의 의식을 바꾸라.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라. 하나님의 의가 되어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며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모든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마음에 종노릇하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돌아다니면서 결핍과 부족과 질병을 통해서 나를 묶으려고 합니다. 이 때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어떻게 할까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너무 급박하고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의 생각이지 내가 아님을 알고 내 영혼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내 전부를 주님께 의탁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의인의 믿음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지요. 나는 하나님의자녀이고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믿음은 의인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는 자가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의식의 변화입니다. 이것이 없이 영적인 돌파나 신앙의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깨달은 진리만큼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만큼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 안에 있을 수 있을까요.
첫째, 동일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엉터리입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우리가 거짓자아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한다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본래 존재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내가 있고 마음이 있는 것이지 내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믿고 산다면 그것은 거짓자아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그 생각을 보고 있는 것이지 그 생각이 ‘나’가 아닙니다.
나에게 질병이 있다면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질병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 질병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생각하면 그 대상에 힘을 부여하게 됩니다. 아무 힘이 없던 대상을 내가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순간 그 대상이 힘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동일시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마치 거울 앞에서 내가치면 상대방도 치고, 내가 물러나면 상대방도 물러나는 원리와 같습니다. 이처럼 내가 모든 것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 일어난 일들을 나와 관계시키지 않고, 모든 것들을 나와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 의식 안에 있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둘째, 마음의 헤아림을 멈추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자꾸 올라오는 생각들을 일일이 분별하고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올라오는 대로 퍼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퍼낼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내 마음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계시와 지혜가 당신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음 속에 뭔가가 올라오면 ‘또 분노네’ ‘또 미움이네’ ‘또 거짓말이네’ 이렇게 바라보시고, 퍼내세요. 자칫 잘못하여 마음의 헤아림을 시작하면 결국 끊임없이 더럽고 악한 상상에 빠져 헤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처음에 올라올 때 바로 퍼내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것이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비우면 하나님의 것이 임하게 됩니다. 자기를 비워낼 때 내면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올라오는 그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나의 상황을 바꿀 뿐 아니라, 놀랍게도 그 말씀이 내 마음 판에 기록됩니다. 마음에 한번 기록된 말씀은 다음에 같은 상황을 만나도 이전처럼 반응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심은 대로 거두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지금 이 순간 여기’가 목적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과거의 집착과 고통,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나’를 만들어서 살아갑니다. 그것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시공간을 초월해서 현존하시고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나를 만들어버리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여기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거짓자아인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행복에는 어떤 조건이 있고, 어떤 이유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은 속는 것입니다. 행복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지금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기름부으심과 능력이 나타나는데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이순간 그분이 내 인생을 다 계획하고 계시는데 미래에 대해 걱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내고 즐기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원리와 법칙과 사랑과 무한한 전지전능하심으로 다스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태양과 같습니다. 태양의 빛은 밤도 없고 낮도 없고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에 밤과 낮에 나뉘는 것뿐입니다. 태양 빛은 누구에게나 비치고 차별이 없습니다. 내가 막으면 비치지 않지만 막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영원히 빛나는 것이 태양 빛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십니다. 하나님나라에는 질병도 없고 사망도 없고 가난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과 풍성함과 기쁨과 평강이 해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당신의 의식을 바꾸어 하나님의 마음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도 태양처럼 나타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태양처럼 비춰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지 않고 나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이 내가 힘쓸 일입니다. 이것을 ‘의롭다’라고 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일치시키고 하나님의 것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당신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복음의 핵심은 내 인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을 바꾸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생명의 한 부분이 되어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전부가 계십니다. 그분이 지금 당신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믿는 만큼 당신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내가 내 삶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에 내 마음을 일치시켜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삶에서 기적의 연속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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