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킹덤빌더 제이의 문화 기록 열한 번째
가을이다. 날씨가 이리 좋아도 되나 싶게 선선하고 맑은 날의 연속이다. 요즘 제이는 어머니의 수술 후 회복을 보조하면서 이 좋은 가을을 유익하게(?) 보내고 있다. “목표는 수술 후 삶의 질이 수술 전보다 좋아지는 겁니다.”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퇴원하여 회복 중인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그리고 건강하게 나이 들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헤븐리터치에는 부지런히 99 88 234를 향해 가는 70대 사역자가 몇 분 계신다. 99 88 234는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가 죽는(4) 것. 앞서 의사선생님 말을 이 숫자로 풀어본다면, “우리가 99세까지 사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으니, 88 234는 지금부터 환자분 몫입니다.”가 아닐까? 모세처럼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눈이 흐려지지 않고 기력이 왕성하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는 숫자다.
그렇다. 수명 연장은 가능하지만, 삶의 질 향상은 병원이 해줄 수 없는 문제다. 어머니가 어서 건강해져서 좀 더 행복한 노년을 보내셨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제이도 99 88 234 숫자에 가까워지려면 어찌 살아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나이 듦에 대해서 고민하던 제이에게 영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타샤 튜더]. 푸른 잔디 위를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맨발로 서있는, 꽤 곱게 나이 드셨단 생각이 드는 할머니가 포스터 안에 계신다. 이걸 봐야겠어. 이 영화가 장수의 비법을 가르쳐 주진 않겠지만, 이 할머니가 노령에도 건강해 보이는 일말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평일 저녁에 들른 영화관은 절반정도나 찼을까. 영화 평점은 9점이 넘던데, 영화가 흥행하길 응원하는 점수를 더해서 평점을 매긴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자리가 여유롭단 말인가? 그래. 그렇지. 잔잔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사람들이 무슨 큰 관심이 있겠어? 그렇다면 제이가 영화소개를 잘해서 모바일이나 TV 다시보기 조회수를 높여볼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를 정하고 글쓰기에 임해본다.
이 영화는 타샤 튜더(Tasha Tudor)라는 미국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다큐멘터리’란 단어에서 이미 하품이 시작된 눈치 백단 킹덤빌더도 계시리라. (그래도 꿋꿋하게 써보자!) 스포일러 부담이 제로인 상태로 미리 얘기하건데, 영화는 잔잔하고 잔잔하고 또 잔잔하다가 끝이 난다.
주인공 타샤 튜더는 1915년에 태어나 2008년까지 92세를 산 동화작가다. 미국 버몬트의 30만 평 부지에 정원을 가꾸고 부분적 자급자족의 삶을 살면서 그것을 그림 소재로 삼아 유명해 진 여인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18세기 영국 전원주택의 삶을 재현한 것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에게는 동경과 대리만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정원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타샤 튜더는 유명인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감독도 일본인이다.) 한국에서도 가드닝에 관심 있는 어르신 사이에서는 유명하다고 하는데, 정원 무식자인 제이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할머니 되시겠다.
영화는 황량한 겨울부터 시작된다. 겨울은 고독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한다는 타샤 할머니. 영화는 그렇게 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배경으로 겨울이 지나고 꽃이 만개한 화창한 봄과 초록으로 싱그러운 여름,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든 가을, 눈 내리는 겨울과 다시 봄을 지내는 타샤 할머니와 그의 가족들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첫 촬영당시 90세였던 타샤 할머니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웰시 코기종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며, 정원의 꽃을 다듬고 음식도 스스로 해먹는다. 또렷한 발음은 아닐지라도 생기있고 총명하게 인터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간이 갈수록 정원을 다듬는 범위가 좁아지고 기억력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행복하다는 할머니. 그런 타샤할머니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나는지금이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그린 그림과 동화책을 보여주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작품들이다. 타샤의 어머니는 유명한 초상화화가였다는데 어머니의 능력이 딸에게는 전혀 다른 화풍의 걸작들로 유전되었나 보다.
자연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는 타샤 할머니에게 빠져들어 열심히 관람중인 제이. 그런 제이 곁에는 다큐멘터리의 최면에 걸렸는지,‘ 어쩔 수 없이 수면 모드’로 전환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 (한 블로거는 이 영화 완성도에 5점 만점에 2점, 불면증 해결 기여도에 만점을 주었다. 제이가 이상한 인종인 거다.)
아무튼 그녀가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제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평생을 자연 속에 살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 그렇다면.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선 제이 역시 귀향해서 정원을 가꾸며 살아야하는 걸까? 그러다 문득 어릴 적, 방학 때면 전라도 할아버지 댁에 내려
가곤 했던 일이 떠올랐다. 지난 호에서 고백했다시피 어린 제이가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하는 일이란, 한 달 간 놀기에(만) 힘쓰다 오는 거였다. 기억을 더듬어 어떤 놀이에 힘썼는지 살펴보면, 농부였던 할아버지의 경운기를 타고 논에가서 일손 돕기(=귀찮게 하기). 닭장 속 닭들 관찰하기(=괴롭히기). 털이 하얘서 백구라 불리던 개와 놀기(=못살게 굴기). 그렇게 한 달 가량 지내면 구수한 사투리가 여유롭게 나올 정도가 된다. 계절이 여름이라면 피부도 햇빛에 그슬려서 ‘거의 완벽한 호남 아이’로 서울에 올라오곤 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온 날부터 다음 방학을 기다렸다. 그렇게 어릴 적 시골생활을(본인만) 따뜻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현실주의자가 되어 바라본 시골(전원)생활은 귀향하여 살기엔 망설여지는 곳이라는 진실된 고백이 나온다.
영화에서 타샤 할머니를 봐도 그렇다. 그녀의 주변에는 아들과 손주 내외, 정원사까지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들 대부분이 끊임없이 정원을 다듬고 있다. 30만 평의 땅에 수년이 걸려 피는 꽃씨를 심고, 시든 꽃을 잘라주고, 비료를 뿌려주고, 겨울이면 온실에 옮겨 심어주고. 덤으로 비둘기와 닭장 관리,양초 만들기, 옷도 손수 만들어 입어야 하니 그 노력과 시간이 얼마나 들지 상상이 가는가? 타샤 할머니는 그런 일이 평생토록 인내심을 갖고 하기에 너무나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라 그동안 해왔다고 얘기한다. 타샤 할머니는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고, 속도는 다소 느릴지라도 자신이 생각하기엔 최고의 삶을 항해한 셈이다.
하지만 킹덤빌더 제이의 기질과 삶의 이력을 고려해 볼 때, 타샤 할머니처럼 사는 건 무리다. 타샤의 그림과 삶을 좋아했지만 똑같이 살지는 않았던 여타의 미국인들처럼. 삼시세끼 유기농 라이프는 TV나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끝내고 싶다.
그렇다. 킹덤빌더로써 건강하게 나이드는 것이란, 누군가에게는 타샤처럼 귀향하여 전원생활을 누리는 삶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도시에서 일하며 보람을 느끼는 삶일 수도 있다. 역시나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인 거다. 지금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그곳이 하나님나라임을 알고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삶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타샤처럼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라는 고백을 하게 되지 않을까?
다음 달 출시될 하나하루 로그북의 로고는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 중인 배 모양이다. 그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키는 일-관계-시간-재정-건강으로 구성돼 있다. 어머니를보면서 제이는 그런 다짐을 해본다. 비록 다섯 개로 구성된 방향키의 원형이 작아질지라도, 찌그러지지는 말자.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끝까지 항해를 계속하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12월에 새 로그북이 나오면 기도하면서 설계하도록 미루어 본다. 우선은 지금 쓰고 있는 글이나 잘마무리해 보자.
서두에 제이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그리고 건강하게 나이 들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글을 시작했다. 그에 대한 답은 99 88 234 하면서 평생 찾아야할 문제란 생각이 든다.
타샤 할머니를 보면서 떠오른 찬송이 하나 있다. <저 장미 꽃 위에 이슬>. 제이가 최애하는 곡. 비밀의 정원(제이의 머릿속에 그려진 배경이 그렇다.)에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주님과 함께 걷고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꽃이 피기까지 수년간 보살피고 기다려주고, 적합한 장소를 찾아 주기 위해 이곳저곳에 옮겨 심어주었다는 타샤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제이는 예수님께서 제이의 마음속 정원을 평생토록 가꾸고 돌보아 주고 계심을 화면으로 확인시켜 주신 것도 같다는 즐거운 착각이 들었다.
비록 킹덤빌더의 모델로 추천할 바는 못되지만,“ 나는 지금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타샤 튜더는 꽤 성공적으로 인생의 항해를 마쳤다. 방향키를 아주 잘 관리했던 모델이지 싶다. 그런 분의 삶을 영화를 통해 간접 체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킹덤빌더들로 삶의 질이 풍성해지는 가을이 되길 소망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브라보! 99 88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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