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영호 (HTM 전도사)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 ‘킹덤빌더의 삶을 위한 기독교 핵심진리’라는 칼럼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고 해석하여, 말씀과 성령과 삶이 일치되는 킹덤빌더의 삶에 필요한 기독교 핵심진리에 대해 다루려고 합니다. 정형화된 조직신학적 범주인 신론(the Doctrine of God), 기독론(the Doctrine of Jesus Christ), 구원론(the Doctrine of Salvation), 성령론(the Doctrine of the Holy Spirit), 교회론(the Doctrine of the Church), 종말론(the Doctrine of the last things) 등을 다룰 뿐만 아니라 실제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가정, 인간관계, 재정, 건강 등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신학의 정의와 기독교 핵심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Theology), 교리(Doctrine), 신조(Creed), 전통(Tradition)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느낌이 드시는지요? 아마도 밝고 산뜻하고 좋은 느낌보다 무겁고 딱딱하고 답답한 느낌이 드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신학 공부를 하더니 아이러니하게 신앙이 더 안 좋아지게 된 경우를 보고, 신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신학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게 됩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신앙생활만 잘하면 되지 이것들은 굳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학이 이러한 안 좋은 인식과 평가를 받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독교인의 신앙 성숙과 성경 이해를 돕는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지나치게 학문적이고 지적이 되어 기독교인의 실제적인 삶과는 연관성이 적거나 거의 없는 거대한 신학적 담론과 논쟁에 치중한 것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신학이 학문적 성격이 강해지고 굳어진 것은 중세 시대 유럽에 대학교가 생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대학 내의 모든 학문이 세분화, 전문화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한 학문 분야에 다양한 분과들이 생기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변화의 바람이 신학에도 불게 되며, 신학도 세분화, 전문화 과정을 겪으면서 성서신학(구약, 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등 다양한 분과(分科)화가 진행되었고, 그 때의 영향이 오늘날까지도 미치고 있습니다. 사실, 교부 시대의 어거스틴과 중세 시대의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종교 개혁가인 칼빈을 지나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신학을 살펴보면 성서신학, 조직신학처럼 신학을 세분화하지 않고, 신학이라는 이름 안에 모든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은 약 2천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긴 세월 동안 신학의 의미와 범위가 변화되고 확장되어왔기 때문에, 신학은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기초적인 신학의 어원적 의미를 분석하여 신학을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신학은 영어로 ‘Theology’인데 이 단어는 ‘신’을 뜻하는 ‘Theos’와 ‘말’, ‘심도 있는 담화’, ‘체계적인 진술’ 등을 뜻하는 ‘Logos’라는 그리스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신학의 어원적인 의미는 ‘신에 대한 심도 있는 담화 또는 체계적인 진술’입니다. 이러한 어원적인 정의를 접하면 신학은 왠지 정규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에 반해 일반적인 간단한 언어로 쉽게 신학을 정의해보면, 신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계시)을 인간이 해석하는 것 (What we say about what God says)’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의미에서 모두 다 신학자라고 할 수 있고, 모두 다 ‘신학을 한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위 구절은 너무나 익숙해서 해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구절 안에 있는 단어들은 신학적 해석을 요구하며 소리치고 있습니다. 위 구절의 주어인 ‘하나님’은 누구인가?[신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은 누구인가?[창조론, 인간론] 하나님의 단 하나 뿐인 아들인 ‘독생자’는 누구인가? [기독론]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구원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신학적 해석을 요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는 위 구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데,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간이 해석하는 것’ 즉 신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본인만의 독특한 신학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체계를 가지고 성경을 읽으며 해석합니다. 여러분들은 위의 신학적 질문들에 어떠한 답변을 하셨나요? 여러분이 아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영생’은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성경에 기반하여 얼마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진술을 하실 수 있나요?
정규적인 신학 교육을 받은 신학생과 그렇지 않은 기독교인과의 차이점은 전자가 이러한 신학적 질문에 보다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전자는 신학을 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신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정규적인 신학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항상 더 바르고 성경적인 답변을 하는 것도 아니며 신학 지식과 신앙이 항상 정비례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바른 신학적 지식 없이는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즉 바른 신앙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2. 기독교 핵심진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신학자(Theologian)’이고, 신앙생활 가운데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신학을 한다(Theologize)’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인만의 독특한 신학적 전제(theological presuppositions)라는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이 신학적 전제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본인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세상을 인식 그리고 그것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기적 통일성(the Organic Unity)을 가지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다양한 진리들 또는 교리들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누구인가(신론)’에 대한 이해는 ‘인간은 누구인가(인간론)’과 ‘예수님은 누구인가(기독론)’ 그리고 ‘구원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인가(구원론)’라는 교리에 대한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역으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기적 통일성 때문에, 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그 교리에 대한 오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도미노처럼 다른 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예는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와 같은 단체들의 잘못된 성경 해석과 그에 따른 이단적 교리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핵심진리를 알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교리)로 양육을 받아 성경적인 건전한 교리만을 믿고 받아들이고, 잘못되고 거짓된 비성경적 교리를 거부하기 위해서입니다.
◆ 딤전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교리, doctrine)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 딤전 6:3-4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교리, doctrine)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 딛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교리, doctrine)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 엡 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많은 분들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21세기 들어 개신교 한편에서 ‘히브리 관점에서 성경 읽기’ 또는 ‘기독교의 히브리 뿌리 찾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유대교처럼 토라(율법) 회복 운동에 열심을 내는 이들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히브리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함으로 현 기독교를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제사장 직분의 교체(레위 계통의 제사장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동물 제사가 폐해진 것, 이 두 가지 변화뿐이기 때문에, 구약에 기록된 도덕법뿐만 아니라 의식법을 포함한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마지막으로 토라(율법)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대표적인 근거로는 첫째로 기독교는 본래 히브리적이었는데, 점점 헬라화가 이루어져 본질이 크게 왜곡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기독교의 히브리적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에서 사도들이 이방인 기독교인들도 토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셋째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폐해졌다고 말한 것은 ‘장로들의 유전’이지 ‘율법’이 아니며 갈라디아 교회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의해 돌아가려했던 ‘천박한 초등학문 (갈 4:9)’은 ‘율법’이 아니라 기존에 그들이 섬겼던 ‘이방 신’이며, ‘날과 달과 절기와 해’(갈 4:10)는 율법에 기록된 구약의 절기들이 아니라 예전에 섬겼던 이방 종교의 절기를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기독교인 중의 일부는 예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잘못된 비성경적 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올바른 신앙에서 떠나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핵심진리를 알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
성경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올수록 거짓 선지자와 선생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택함 받은 자들까지도 배교의 길로 유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이러한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진리에 굳게 서기 위해서입니다.
◆ 마 24:3-5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막 13:22-23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 살후 2:2-3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 살후 12:9-12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그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개신교 종교개혁의 시작일을 루터가 그 당시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내건 날인 1517년 10월 31일로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던 2017년에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와 학회들이 있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연합 그리고 부흥: 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회의 리더들이 다름을 제쳐두고 500년 만에 화해하는 역사의 획을 긋는 순간‘ 이라는 주제로 개신교와 천주교(카톨릭)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연합을 위한 에큐메니컬 컨퍼런스인 카이로스 2017(Kairos 2017)이 미국 켄자스 시티 국제 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 마이클 비클)에서 2017년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렸습니다. 컨퍼런스 기조 연설자 중 한 명은 500년 전 종교개혁을 교회 역사상 가장 큰 분열인 마귀의 역사라고 평가하며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개신교와 천주교가 다시 연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일생동안 최고의 순간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보낸 시간이라고 말하며 이 컨퍼런스와 연합운동은 그분의 노력과 리더십 아래 진행되고 있다고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은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의 교리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우리 모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라고 주장하며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제사장적 기도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살펴보며 그 구절 안에 있는 단어들(하나님, 독생자, 믿는 자, 영생 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구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살펴보았듯이 똑같은 단어를 서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 단어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신앙고백을 한다고 해서 그 신앙고백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앞으로 다양한 기독교 핵심진리들을 살펴보면서 천주교는 해당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천주교는 성경적인 지지를 받기 힘든 성경 해석과 적용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비성경적 교리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주의권 신학자들 중의 다수는 천주교를 선교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핵심진리를 알아야 하는 세 번째 이유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지상대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이루는 제자적인 삶을 사는 킹덤빌더가 되고,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하나님나라의 복음 안에서 말씀-성령-삶이 일치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핵심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뜻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사역을 통해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나타난 가르침도 포함합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도 포함합니다. 지상대명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에 비추어진 신구약의 모든 진리,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이 그것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히 성경을 잘 이해하는 것을 넘어 받은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킹덤빌더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 진리가 마음 판에 새겨져야 합니다.
사실, 성경 속 모든 계명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과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임을 이미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던 것이었습니다.
◆ 마 5:18-19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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