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01 복음은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제가 영성과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뼈저리게 느낄 때였습니다. ‘왜 내 머릿속에 든 말씀과 내 삶은 일치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 어느 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읽게 된 마태복음 16장 24절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하여 저는 한순간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구약의 한 말씀과 새 언약의 한 말씀이 하나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전 2: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동안 스스로 내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그야말로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물속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많은 물을 마시고 혼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육신의 나(거짓자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는 오직 현실에 기초한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현실의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를 포기할 때 비로소 성령님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엡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 곧 죽음인데,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쫓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말하는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이어지는 마태복음 16장 25절에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그 이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사고의 모순 가운데서 진리로 들어가는 새로운 비밀의 문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갈 때라야만 비로소 내 영혼이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 안에 거하는 새로운 의식,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체험한 영적 존재와 영적 생각 입니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수많은 생각들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나를 의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이상 마음의 생각과 감정에 의존하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자신을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 가운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본래 기능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풀어지는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하며, 마음은 자기의식 대신에 그 말씀을 풀어내는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 거짓자아가 주체가 되어서 나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진 내 영혼이 말씀으로 육신의 나와 세상을 보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 전 본래 마음의 역할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부질없고, 쓸데없고, 불필요한 생각과 상상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생각과 상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생각과 상상이 바로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거짓자아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엡 1:17-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반대로 육신의 눈이 열린 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였습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02 복음은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신 이유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한 그 상태로 돌아가서 주의 뜻에 일치된 본래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였습니다. 위임된 통치권을 가지고 주의 뜻을 이루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하나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사랑을 나누는 관계였습니다.
우리가 타락했을 때 우리는 영적 존재에서 육적 존재로 타락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것은 옳고 그름과 선과 악, 좋고 싫고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선악을 판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준 즉 말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전에 내가 판단자가 되는 것이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현실을 판단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판단하는 내 마음이 잘못된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타락함으로 우리의 마음은 본래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영적 존재였고,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였고 주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통로였습니다. 즉, 주의 말씀을 그리고 상상하고 느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 마음에 자신의 경험을 쌓고, 그것이 자기라고 믿고, 그 저장된 기억에 기초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인이 되어 옳고 그른 것과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합니다. 그때부터 고통과 불행이 그 마음에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내 본질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그 본질(그리스도 안에서)에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부터 자유함이 옵니다.
거짓자아는 항상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경험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축적된 기억을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소유물이나 상황, 다른 사람 또는 외부에서 오는 영향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외부에 의해서 자신을 규정하는 행위와 사고방식을 멈출 때 우리는 진정한 본질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03 거짓자아에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어두움과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과 행복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일평생 동안 어두움과 고통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요 1:3-5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 가운데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은 매 순간 자신이라고 믿는 그 마음을 부정하고 자기라고 붙들었던 것들을 놓아 버릴 때 비로소 주어집니다. 우리가 결핍과 부족을 채우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자신이 부족하고 결핍하다는 속임에서 벗어나면,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그 사람이나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당신의 기억에 기초한 생각입니다. 사람들과 환경이 내 삶을 어떻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삶에서 외부환경을 바꾸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동까지 바꾸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씁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대부분 아니 전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온 내내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곤 합니다.
사실은 외부환경과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무엇을 끌어당기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기억에 기초한 생각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더 정확히 말해 내 마음을 바꾸면 주위의 환경, 그리고 다른 사람도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모든 것을 인식하는 방식은 오직 자신의 잠재의식과 기억의 정보에 기초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우리 기억이 옳지 않고 완전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올바르게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환경의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 생각의 피해자 일뿐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을 놓아버릴 때(거짓자아가 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돌아가는 것이며(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는 것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창조주의 지식과 지혜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04 하나님 자녀의 유업을 이루어 갑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로 살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남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탓하고, 통치하기를 원합니다. 환경이나 사람으로부터 오는 자극에 우리가 보호적이고 방어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원하고 심지어 악하게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더욱 부정적이고, 보호적이고, 폐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도록 합니다.
내가 늘 거짓자아에 속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함과 긍휼함을 가지게 됩니다. 나에게 부정적으로 대하고, 악하게 대하는 자들도 거짓자아에 속아서 자신의 마음에 가득한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도 자신의 기억에 기초하여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을 새롭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람에 대해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정적이고 악하고 더러운 기억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만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영향을 미친 그 사람의 마음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준 유업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짓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자유케 하는 소명을 이루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세상(환경과 사람)의 악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흘려보냄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도록 하는 자입니다. 할렐루야!
2019년 2월호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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