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Maria Barbara Bach, 1684-1720)는 바흐보다 몇 달 먼저 태어난 육촌 누나이다. 그녀는 바흐의 아버지 암브로지우스의 사촌동생인 요한 미하엘 바흐의 막내딸로서,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른슈타트에 있는 친척집에서 살고 있었다.
세상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부여잡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느냐 혹은 상처를 치유 받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상처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자기 안에 가둔 채 살아가는 삶은 지옥 같지만, 한순간 치유의 빛이 임하면 어둠은 깨어지고 천국이 임한다.
상담자는 관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직접 맺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 자신이 상담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담자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감추기를 바라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으면 진정한 상담관계를 맺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 3절의“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이 성경구절 만큼 이 영화를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설정. 하지만 주님의 자리에 누구를 놓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많은 분들이 미디어 금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실 이 문제는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한다면 미디어를 금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익하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미디어가 방해요소가 안 되고 절제할 수 있는분별이 선다면 미디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