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 공부는 누가 가르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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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주안맘

요즘 ‘스카이 OO’이라는 TV 드라마가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좋은 대학 보내 자식에게 자신이 누리는 부와 특권을 물려주고픈 상류층의 욕망을 그린 드라마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여러 매체들은 스카이 OO 열풍에 대한 사설을 앞다투어 내놓는 것만 봐도 이 드라마가 미치는 영향력을 알 수 있다.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는 고학력 중년 남성까지 TV 앞에 앉게 만들었다니 이쯤이면 신드롬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 인기의 비결이 교육열, 입시, 상류층이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깊은 내면에 있는, 내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부모들이 한 번쯤 자신의 욕망이 오히려 자식을 망치고 있다는 반성(?)을 하길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드라마 이후 실제 입시 코디네이터들에게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하니 모두가 그런 반성을 한 것은 아닌가 보다. 오히려 사교육 열풍을 타고자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이 매우 씁쓸한 일이다.

그저 문제 제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아니 각 가정에 작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그동안 홈스쿨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1위는 “공부는 누가 가르치나요?”였다. 공부가 도대체 뭘까? 나도 ‘공부’하면 국·영·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 국·영·수를 중심으로 내 나름대로 커리큘럼과 시간표를 짜고 “자, 이제 수학 시간이야.”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잘 되는 날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흥미를 잃었고 나는 화가 나서 결국 둘 사이 관계만 나빠질 뿐이었다. 우리의 영원한 필수 과목! 국, 영, 수를 어쩔 것인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고민되었다. 많은 선배 홈스쿨러가 학교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실패한 경험들을 이미 많이 들었는데 나도 같은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왜?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나도 나름 틀을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 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 아니 배움에 대한 새로운 의식 전환이
필요했다. 지난 2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하나씩 하나씩 깨지기 시작했다.

아이와 씨름하면서 속수무책으로 그냥 보낸 날도 많다. 학교를 안 보내고 괜한 생고생을 하는 건 아닌지, 주변에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들으면 불안하기도 했고, 아이의 미래가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큰 부담도 됐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방법은 없었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면 남편은 걱정하는 나를 잘 달래주었고 끊임없이 말씀으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확신을 주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오늘 하루 주신 시간에 감사하며 기쁨과 평안을 누리자고 격려하며 그 시간을 견뎠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조급함을 내려놨을 때 하나님께서는 탐구할 수 있는 영역들을 하나씩 열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셈이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의 성향을 잘 살피고 장점을 잘 살려주자는데 동의했다.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나 운동하러 가는 시간 빼고 집에 있는 시간에는 그냥 놔둬보기로 했다. 어떤 날은 뒹굴뒹굴하며 책 읽다가 그림 그리다가 멍 때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몇 시간씩 방에 들어가 택배 상자를 오리고 붙여서 기발한 것들을 만들기도 했다. 어떤 날은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두꺼운 책 한 권을 독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이야기 성경을 듣고 읽기 시작했다. 근 1년을 푹 빠졌다가 나오더니 갑자기 세계사로 관심을 옮겨가 고대 이집트의 세계에 빠졌다. 사진만 찍으면 이집트 벽화에 나오는 포즈를 취할 정도였다. 그다음엔 알렉산더 대왕, 율리우스 시저 등 역사 속 인물들에게 차례로 빠졌다가 영어 만화 서유기에 빠져서 서유기를 밤새 다 읽더니 한동안은 여의봉을 들고 다니며 손오공 행세도 했다. 바다 생물과 동물의 세계에 빠져 도감을 마르고 닳도록 본 시즌도 있었다. 오디오 파일로 된 위인전을 한참 듣더니 한국사에 빠져서 칼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삼국시대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동. 서양을 오가면서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관심사에 빠져들었다. 하나가 지나가면 다른 것이 파도치듯이 왔다 가면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씩 관심사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었다. ‘저래도 되나? 그저 잡다한 지식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아이가 너무 몰입하니까 최대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이는 이 사건과 다른 사건을 연결하고 있었다.
나는 한번 듣고 잊어버리거나 단편적 지식으로만 남아있는 것들이 아이 안에서는 구슬을 꿰듯 연결되고 있는 듯했다. 성경 역사의 뿌리에서 출발한 가지들은 세계사와 오버랩 되어서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인물들을 만나면 이 가지 저 가지에 걸면서, 나무가 자라나듯 지식의 탐구는 꼬리의 꼬리를 물고 커져가고 있었다. ‘단순히 국어 지문에 과학을 넣는 것이 통합이 아니라 이런 것이 진짜 통합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과목 사이에서 큰 연관을 찾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의 깊은 사고는 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내신 등급 안 깎일 정도로만 하면 되는, 중요하지 않은 과목이었다. 내가 그런 식으로 핥고 지나간 수박은 도대체 몇 통일까? 그 모든 지식이 과목별로 조각난 채로 내 머리에, 그것도 극히 일부만 남아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런데 한마디로 우리 집 학교에서 과목 파괴가 일어난 것이다. 시간의 파괴도 일어났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충분히 몰입하기를 원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과목을 바꿀 필요도 없고 해야만 하는 공부가 없으니 관심 있는 세계에 충분히 몰입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니 학년의 파괴가 일어났다. 어떤 의미에서 선행 학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집 학교는 느리든 빠르든 자신만의 속도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관심 영역 책을 열심히 검색해 중고서점에서 사다가 슬쩍 밀어 주거나 자료를 찾아준다. 그러면 아이는 아무 저항 없이 그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쫑알쫑알 말할 때 들어주는 것이다. 전자는 내가, 후자는 남편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자료를 구하고 흥미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일은 잘 할 수 있었다. 남편은 아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고 함께 토론도 하고 그 사이 잘못된 가치관이 있으면 말씀과 연결해서 하나님나라 사고방식으로 방향을 잡아 주었다. 또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배워나가는 기쁨도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도 지금은 이렇게 자유롭게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지만 어떤 시기에는 그것들을 정리하고 심화시켜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이 ‘공부’가 대학가기 위한 수단,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보다 더 넓은 시야로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은 지금도 매일 허물어지는 중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포기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누가 홈스쿨에서는 누가 가르치냐고 물으면 “성령님이요!”라고 대답할 거다. 여전히 시행착오는 있지만 정말 진리의 성령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길을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나서서 가르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님께서 이끄시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 탁월하게 점프할 수 있음을 날마다 배워가고 있다.

지금 아이 안에 막 자라기 시작한 나무의 가지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날이 오겠지…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박고, 매일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달디 단 열매를 맛보며,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아이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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