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목사칼럼 – 사랑하고 사랑받고
윤현숙 목사
지난주에 HTM USA 스텝으로 동역해 온 이 봉열 장로님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미국을 다녀왔다.
갑작스런 소식에 많이 놀랐고 신실한 동역자를 잃은 슬픔에 안타깝고 당황스러웠다.
7년 전 혈액암 진단을 받으신 후 골수이식을 받는 힘든 과정을 믿음으로 이겨내셨는데, 올 초에 병이 재발해서 함께 기도하면서 이번에도 잘 이기시기를 기도로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로님은 생전에 성품이 따뜻하시고 온유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좋아했다.
만날 때 마다 빙그레 웃으시며 수줍게 반겨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더 이상 이 땅에서 이 장로님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슬픔에 잠겨있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먼 길이지만 조금이라도 격려와 위로가 될까 싶어 길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위로가 가정 가운데 임하길 간절하게 기도했다.
이틀 동안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누워계신 고인의 얼굴을 보니 마치 잠든 듯 평온해 보였다.
이젠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실 이 장로님을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평안해졌다.
예배 순서에 자녀들과 지인들이 나와서 고인과의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들이 나와서 말하다가 눈물을 짓기도 하고 즐거운 기억이 떠오르면 웃기도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장례식이 우는 것으로 끝나고, 우리의 정서가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여 장례식 분위기가 무거운 것을 생각해 볼 때, 장례식에 이런 순서가 있는 것이 참 좋아보였다.
드러내고 표현하고 나눌 때 슬픈 감정들도 올라오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좋은 아버지, 남편, 동역자를 보내주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나눔과 표현들이 소중했지만 특별히 나에게는 이 장로님의 아드님이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사셨다는 고백이었다. 내가 아는 이 장로님은 따뜻하고 신실한 분이셨다.
아내에게는 너무나 사랑받는 남편이셨고, 자녀들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셨으며, 목사님에게는 믿음직스러운 장로님이셨다.
중한 질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의지하셨으며, 의료진들까지 고개를 숙일 만큼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임종을 맞으셨다고 한다.
또한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서 존경을 받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그분의 삶이 사역에서 믿음의 본을 보인 것 뿐 아니라 가정과 직장에서도 동일하게 신실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큰 감동이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에서는 신실하나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가정을 소홀히 하기도 하고, 어느 한 가지를 잘하면 다른 한 가지는 엉망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장로님은비록 더 오래 함께 할 수 없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참 복된 삶을 사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죽고 난 후에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추억하고 기억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역을 잘 감당하면서 귀하게 쓰임받고 많은 사람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나오는데, 어느 날 그가 병들어 죽게 된다.
그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던 사람으로 그가 죽자 그가 돌보았던 과부들이 울며 그의 생전에 함께 지은 옷을 내보이면서 슬퍼했다.
또 이미 시체를 씻어 다락에 둔 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청할 만큼 그를 살리고 싶어 했다.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비다와 같은 삶을 살다가 주님 곁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 속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삶은 기대나 바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삶을 통해 나오는 것이리라. 가끔씩 동료 목회자들이 장례식에 가서 고인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거나 추억할 만한 것이 없어서 난감한 경우들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땅에서 하루하루 살다 보면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시간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삶의 끝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들을 이루는 삶도 좋지만, 나와 동역자들 모두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사람으로 기억해 주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