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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IX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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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주기도문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를 헬라어로 직역하면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이며,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도리어 우리를 그 악으로부터 구원하소서”가 된다.
여기에서 “도리어”는 앞서 나온 내용과 대조를 이루거나 수사적인 점층을 나타내는 접속사이다.
따라서 본문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악(마귀)에서 구함 받도록 해 달라는 뜻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의 마지막인 이 구절을 읽게 되면 잘 나가다가 맥이 빠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을 읽으면 너무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기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시험을 이기게 하시옵고’ 또는 ‘모든 시험이 사라지게 하시옵고’가 아니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이고,
또한 ‘악에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가 아니라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과 영적 전쟁의 비밀을 알고 나면 이 기도문의 내용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라 가장 귀중한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도문의 참뜻은 과연 무엇일까?

 

2) 왜 이런 기도가 필요할까?

하나님나라가 임하기 전에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삶을 살았으며,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더 이상 흑암의 권세 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진 것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1:13

 

따라서 마귀는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지만, 우리 주위를 돌면서 우리의 틈을 노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마음에 여전히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습성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2

 

과거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지만, 마귀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환경, 상황, 처지, 사람들과의 관계, 재정, 과거의 상처 등을 통하여 핍박, 박해, 유혹의 형태로 우리를 시험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험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5:8-9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7

 

2) “시험”이란?

시험은 신약에서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주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이루어 가고자 할 때 그것을 저지하는
마귀의 핍박, 박해, 유혹을 가리킨다. 주로 마귀가 시험을 행하는 것과 관련되거나, 또는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한 것도 결국은 마귀의 계략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인 것으로 볼 때,
시험이란 마귀들이 가하는 외적인 핍박이나 박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볼 수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3:12

 

다음으로 시험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이라고 볼 수 있다. 유혹은 외부에서 우리 마음에 던져 넣은 낚시 바늘에 있는 밥과 같다.
우리 안에 탐욕이 없으면 어떤 유혹이 와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탐욕이 남아 있으면 평상시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낼지 모르지만,
낚싯밥이 드리워지면 탐욕은 발동하게 되고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 그 낚싯밥(유혹)을 덥석 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험은 마귀가 외부에서 주는 핍박과 더불어 우리 내부의 마음의 탐욕을 부추기는 유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는다”는 것은 ‘마귀의 핍박, 박해, 유혹과 더불어 그러한 것들이 우리 마음에 드리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3-15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욕심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여 죄를 낳게 하고 악(동일한 죄를 계속적으로 짓게 하거나 더 큰 죄를 짓게 하는 마귀)에 묶이게 되고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되는 것이다.

시험을 받는 우리는 흔히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첫째는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시험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시험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내면의 욕심에 끌려 마귀에게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한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시험이 없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 시험을 만나지 않게 해 주시거나 시험을 없애 주시기를 원한다.
시험이 없는 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죽거나 또는 마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때뿐이다. 마귀가 살아있는 한 시험이 없을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성령충만함을 받고 광야에 나아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예수님을 시험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눅4:13

 

따라서 우리에게 시험은 얼마든지 올 수 있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시험을 당하고 당하지 않고는 우리의 몫이다.

 

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우리가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동안 시험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에 들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시험을 주는 마귀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욕심에 달려 있다.
시험이 와도 욕심이 발동(반응)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시련이며 이 시련을 견디면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유혹을 이기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탐욕을 다스리는 것이며,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1: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 안에는 여전히 구습이 남아있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롬8:6-7)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체험할 때,
우리는 이러한 육체의 소욕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의 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육체의 소욕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대상이지 이미 죽은 자기(옛 본성에 기초한)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가(마치 겉사람이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여) 이것을 이기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고 할 때 시험을 받는 것은 우리 육체이지 우리의 거듭난 자신이 아니다.
육체의 일은 겉사람에 대한 것이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육체가 시험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의 참뜻은 “우리의 겉사람(육신의 생각)이 시험을 이기려고 애쓰지 않게 하시옵고”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유혹이 올 때 자신의 육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육체를 통제함으로써 육체의 욕심을 이기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러한 애씀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2:23

(These rules may seem wise because they require strong devotion, pious self-denial, and severe bodily discipline.

But they provide no help in conquering a person’s evil desire,) NLT

 

우리가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룩한 본성에 기초한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3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첫째, 죽을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며,
둘째,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이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4:1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모든 시험은 마귀가 주는 것이며 우리의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들게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가 시험을 참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성령 안에 거할 때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유혹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온갖 은사와 선물을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야고보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6-17

 

결국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는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지닌 존재로 거듭났지만,
과거 옛사람으로 살았을 때 남아있는 겉사람(육신의 생각)이 마귀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속사람(영의 생각)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인지를 아는 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영적 전쟁의 진수이다.

 

4) “악(惡)”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에서 “악”은 본래 정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그 악”이 된다.
일반적으로 악은 마귀로 볼 수도 있고, 죄나 악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은 마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것이 보다 합당한 해석이라고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이미 앞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에서 이미
자신이 지은 죄나 악한 행동에 대해서 회개했기 때문이며,
둘째,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에서 시험을 주는 근원이 바로 마귀라는 악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마귀를 “악한 자”로 여러 번 규정하고 있다(마13:19, 막4:15, 마13:38, 엡6:16, 살후3:3).

 

5)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이 기도는 시험이 왔을 때 단지 그 시험에 빠져들지않는 것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시험을 주는 마귀로부터 자유롭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시험은현실세계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인 것이며,그 뒤를 조정하는 것이 바로 마귀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갖가지 시험들뿐만 아니라 뒤에서 그 시험들을 통해서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하는것이 마귀임을 알고,
그 마귀로부터 원천적으로 자유함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중 권세를 잡고 우리가운데 행하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 풍조를 따르게 했던 장본인이다(엡2:2).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뿐만 아니라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께서 성령충만함을 받고
광야로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의 일이다. 40일간을 굶주리신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마귀가 주는 유혹,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귀를 대적하셨던 방법을 생각해 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굶주림)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사는 것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고 말씀하심으로,
또한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와 경배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을 때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이 세상 삶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권능에 대해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것은 마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심으로, 모든 시험에 들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마귀의 통치로부터 자유함을 얻으셨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뜻은 시험이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시험이 올 때라도 자신의 새롭게 된 본질(정체성)이 무엇인지, 겉사람에 속해있는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 때 시험에 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험을 주는 마귀의 공격을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으로 대적함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주의 뜻을 이루어가고자 할 때 마귀로부터 이러한 시험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마귀는 예수님께 죄에 대한 시험을 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나 살았으며 구원을 얻었지만 여전히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이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에, 마귀가 죄에 대한 유혹을 끊임없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모든 죄의 삯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러한 시험뿐만 아니라
그 시험을 주는 마귀의 궤계와 능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악을 멸하시옵소서”라고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지 않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다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기도를 가르치셨을까?
그것은 아직 미래적 하나님나라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적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그 하나님나라가 완전치 못한 시대를 말한다. 생각해 보라. 예수님께서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귀의 능력이나
거짓을 단지 무력화 시키기만 하셨지 그 마귀를 멸하지는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비로소 천년왕국이 시작되고
마귀를 옥에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귀와 악한 영은 여전히 흑암의 권세를 가지고 우는 사자들처럼 돌아다니며 우리들에게 시험을 주고 있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패배적이거나 소극적인 기도가 아니라,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거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악으로부터 자유함을 받는 최상의 기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는 마귀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본질과 궤계를 깨닫고 주의 말씀과 능력으로 그들의 권세와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갖가지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도리어 그 시험을 주는 마귀로부터 해방, 자유케 해 달라는 이 기도의 참뜻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the devil one)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17:15

 

하나님의 자녀는 좋든 싫든 알든 모르든 영적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공격 무기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이고,
우리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어 무기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이다.
우리가 매일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지 않고는 결코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