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킹덤빌더다
나는 킹덤빌더다
주세훈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경영이사)
KBS 9, 10, 12, 15기 수료
직업을 가진 성령사역자로의 부르심
부르심
“허~억! 으~~ 주니~임~~”
2010년 12월의 어느 날. 제 사무실에서 손기철 장로님의 동영상을 처음 보던 날 “아멘!” 대신 제 입에서 나왔던 말입니다. 그날의 강력한 임재 안에서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전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컵라면에 물을 붓고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담임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왕의 기도』라는 책을 사 보라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책을 주문하기 위해 온라인서점을 접속했습니다. 우연히 『왕의 기도』를 쓴 저자의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HTM 홈페이지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라면이 모두 익기까지 남은 시간인 2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HTM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 중 아무거나 하나를 클릭했습니다. 정말 저는 2분만 보다가 창을 닫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때
는 그 2분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동영상이 시작된 지 2분이 지날 무렵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느껴지기시작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영적 느낌을 무시한 채 영적으로 무지한 저는 다 익은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5분 쯤 지날 무렵에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동영상은 감히 컵라면을 먹으면서 볼 수 있는 영상이 아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영적 권위 앞에서 저는 순종 말고는 다른 길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저는 먹던 컵라면을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옆으로 치워놓고 동영상에 집중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내내 깊은 감동 안에서 전율이 일어났으며, 때로는 내 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이 피부로느껴지기도 했습니다. 2분만 보려고 재생시켰던동영상은 3시간이 넘게 진행되고 있었고 저는 그렇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처음 들었습니다.
신앙관의 전환 (로마서 7장 20절)
그날 제가 HTM 홈페이지에서 아무생각 없이 재생시켰던 손기철 장로님의 동영상은 2008년 5월 5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라>라는 제목의 동영상입니다. 5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동이 생생하기 때문에 동영상 날짜도 잊어버려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손장로님께서 설교 중에 로마서 7장 20절을 말씀하셨는데, 지금까지도 이 말씀은 제 신앙의 가장 밑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 신앙의 모든 기초는 이 말씀 위에서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든 가치, 즉 사랑, 믿음, 충성, 봉사, 희생 등을 다 빼놓고 제 신앙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 보면 로마서 7장 20절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이 말씀이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20
그날 저는 죄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죄를지었을 때 느껴지는 정죄감의 실체도 깨달았습니다. 마귀는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어 정죄감이 들게 하고 종교적 형식 속에서 회개하는 삶을살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마귀는 제게 “죄를 지을 것인가? 짓지 않을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고 살도록 나를 속인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날 이 후 저는 한 번도 죄를 묵상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묵상하고 살아갑니다.
동영상 설교를 들을 때 내 안에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강렬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서 나를 속이던 죄의 본질인 마귀가 빠져나간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비추어주시는 말씀 앞에서 마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를 사로잡은 이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항상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만 충만함을 느끼다가 길어야 15일 정도가 되기 전에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에 저는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손 장로님의 설교말씀처럼 “죄를 지을 것인가? 짓지 않을 것인가?”를 묵상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돌리지 않을 것인가?”만 묵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피부로 느낄 만큼 마귀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마귀는 나를 넘어뜨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지을 때 마다 어김없이 정죄감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로마서 7장 20절을 꺼내들고 죄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기 때문에 마귀가 나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제 회개는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마귀 안에서 회개하면 종교적 형식 안에서의 “고백”이 될 뿐이고, 성령 안에서의 “회개”는 합당한 열매를 맺는 진정한 회개가 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을 가진 성령사역자로의 초대
현재적 하나님나라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날”(오순절 성령역사) 이후부터 시작된 것처럼 제 개인 인생에서의 현재적 하나님나라도 “그날(사무실 성력역사)”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왕의 기도』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를 알고 나서 『왕의 기도』라는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손기철 장로님이 이 책을 쓰게 되신 배경이 궁금하여 『왕의 기도』 이전의 저서들을 모두 샀습니다. 손기철 장로님 이라는 분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목사님도 아니고 선교사님도 아니고 현직 교수님이 어떻게 저런 깊이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 그게 너무나 궁금해졌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램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성령사역을 하고 계신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름다워 보였다”라기보다는 “충격적 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 영적 충격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라지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고 뚜렷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직업을 가진 성령사역자”가 되는 것을 꿈꾸며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왕의 기도 세미나」로부터 시작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세미나」를 통해 내 믿음을 새롭게 하였고, 아내와 함께한 「킹덤빌더스쿨(KBS)」 8기를 수료하면서 <킹덤멘탈리티>를 배웠습니다.
2011년 제8기 「킹덤빌더스쿨(KBS)」
–사업의 정리와 법조계로의 부르심
특히 아내와 함께 했던 KBS 8기 수료는 제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 커다란 기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 2막이 시작되기 전에 KBS를 통해 저희 부부의 재정의 묶임에 대한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재정의 묶임 끊기 – “주님! 천만 원 이라니요?”
KBS 4주차에 수업했던 “성경적 재정관리” 강의가 진행될 때의 일입니다. 손 장로님께서 “재정에 묶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물질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냄으로써 그 묶임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봉투를 놓고 성령님께 어디에 얼마를 흘려보내길 원하시는지 기도해 보면 성령께서 말씀해 주실 거라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저희 부부는 기도해 보았습니다. 기도 중에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만 원을 흘려보내라. 어디로 흘려보내야 할지는 매일매일 이야기해 주겠다.” 당시 저희 부부는 전세금도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때였기 때문에 천만 원이라는 금액은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분명 잘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 부부는 천만 원이 없습니다. 얼마를 흘려보낼까요?”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은 같았습니다. “천만 원을 흘려보내라.” 결국 저희 부부는 순종하기로 결정하고 천만 원을 “빌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살 떨리는”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아도 너무 안 맞았습니다. 헌금이란 없으면 안하는 것이지 빌려서 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드리기 위해 길을 가던 때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식의 관점에서 보면 빨리 아브라함을 잡아다가 정신병원에 강제로라도 잡아넣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상황과 상관없이 순종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라 이야기한 것입니다.
저희 부부도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믿음으로 상황과 상관없이 순종하기로 결정하고 천만 원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가난의 묶임을 끊고 재정의 기름 부으심을 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주님과 동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소리쳤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할 때 내 안에서 나도 알 수 없는 기쁨이 솟아 올라왔습니다.
한 번도 드려본 적 없는 금액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빌려온 돈인데도 말입니다. 준비한 돈이 든 봉투를 들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출 때 저의 재정의 묶임이 끊어져 버렸음을 믿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올려드리고 손 장로님이 재정의 축복을 위한 안수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수료식이 끝나고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마다 천만 원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성령님, 오늘은 어디로 흘려보낼까요?” 이렇게 기도할 때 그날 흘려보내야 할 곳을 매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만 원을 모두 흘려보내는데 꽤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지금 제 기억으로 한 달 이상 걸렸던 것 같습니다. 하루에 흘려보낼 금액을 10만원도 말씀하시고, 5만원도 말씀하시고, 100만원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천만 원을 다 흘려보내는 기간 동안 저는 순종을 배웠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내 삶의 공급자는 하나님임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관리하는 청지기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매일 돈을 흘려보내는 동안 내 재정의 모든 묶임들이 온전히 끊어져 나갔습니다. 흘려보낼 때 마다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빌려온 천만 원은 어떻게 갚았냐고요? 천만원이 다 흘러가기 전에 사무실 수입으로 천만 원 이상이 들어왔습니다. 이는 더 많은 재정을 나를 통해 흘려보내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돈에 종노릇하고 살지 않습니다. 돈을 다스리며 사는 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좀 아까운 생각도 있었습니다. 매일 순종하며 재정을 흘려보내는 동안 인색한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천만 원을 흘려보내는 동안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을 머리로 이해한 수준을 넘어 온전히 몸으로 경험되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6:38
더 많이 주심을 경험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 신뢰는 경험하지 못한 채 머리로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리라”고 말하는 “다짐”하고는 차원을 달리 하는 신뢰입니다. 잠시 후에 이야기할 “살 떨리는” 믿음의 행보들은 모두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