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목사칼럼 – 하나님의 선물
윤현숙 목사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딸이 대학을 졸업하였다. 혼자 지내면서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 한 번도 울거나 짜증내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서 미국아이들과 함께 졸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미국에서는 졸업이 큰 가족행사라서 그런지 졸업식에는 많은 가족들이 와 있었다. 식순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는데, 대학원이 아니고 학부 졸업식인데도 한 사람씩 강단에 올라가서 총장님과 악수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긴 시간동안 참석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기다려 주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미국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학생들 모두가 매우 기뻐한다는 점이었다. 질서 있게 순서를 기다리는 중에도 이따금 환호성을 지르고 가족들을 향하여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흔드는 모습이 졸업이 기뻐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기쁨이 넘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안정된 미래가 준비되어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졸업생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기쁜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학생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가 문득 “저 많은 학생들이 다 일자리를 잘 찾아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높은 실업률 때문에 고통 받고 있고, 특히 대학을 막 졸업해서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신문기사에서 취준생들이 방황하거나 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문제를 겪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자살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말할 수없이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딸이 외국에서 혼자 대학을 졸업하는 것만도 고맙고 기뻐서 마음껏 격려해주어야지 했는데, 막상 졸업식을 마치니 “이제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들어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한편 졸업생들이 졸업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사고와 가치가 우리와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들도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 알고 있고 염려가 될 텐데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을 준비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곧 바로 졸업 후의 취업이나 시험을 준비하면서 즐거움을 유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학창시절의 귀한 과정을 누리지 못한다. 그렇게 준비하여도 미래가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도 또 다른 일들을 준비해야 해서 늘 걱정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나 역시도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치관 하나가 달라도 그렇게 삶이 다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쁨과 자신감이 넘치는 미국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물론 미래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칠 수 있겠지만,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졸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디 취업뿐이겠는가? 한 가지 목표를 이루면 다음 단계가 있고 어쩌면 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인생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인생길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삶에 대해 좀 더 의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대하고 살아가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올라갈 때는 누리고 내려갈 때는 여유를 가지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딸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돌이켜보니 처음에 어린 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실 것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염려가 될 만한 일들이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잘 마치게해 주셨다. 이제 다시 한 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길을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생각해보았다. 전도서 3장 13절을 보면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또한 알았도다”라고 고백한다. 우리의 삶에서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일 상적인 작고 사소한 일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향한 선물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누리도록 기회를 주신 것들을 즐기는 삶을 살면서,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오늘도 모든 동역자들이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진정한 만족을 누리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