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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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목사칼럼 – 주님의 사랑

윤현숙 목사

요즘 들어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 가게 이름들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여기고 넘어가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점점 더 기억력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80세 이상 노인 다섯 명중 한명은 치매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기억이점차 없어져서 애쓰고 눈물 흘리는 스토리가 많이나오는데, 무엇보다 좋은 추억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오래전 미국 병원에서 근무할 때 환자 중에 신학대학 교수출신인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다. 그분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한눈에도 선하고 지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셔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가끔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하루는 아침방송이 나오자 오늘 나를 목매단다는 방송이냐고 질문하셔서 경악을 하였다. 그렇게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가르치신 분이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고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되었고 나도 나이 들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었다.

얼마 전부터 신명기를 묵상하면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자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받을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앞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할 시점이었는데 광야 40년을 돌아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진취적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야하는 시점에 케케묵은 과거, 종살이하던 시절을 기억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기적을 잊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삶의 풍요와 평화를 지속적으로 누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치를 드러내려 하시거나 생색을 내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지속되길 간절히 바라셨다. 신명기 8장 1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될 때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한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똑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을 잊고 황폐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볼 때 감추고 싶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애굽에서의 고통스러웠던 삶은 잊고 싶은 시간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고 종살이하던 때는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깊은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해 신실하게 일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기억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치 않는 기억은 자꾸 생각나서 고통당하고, 기억해야 할 일들은 잊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라고 명령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누워서도 말씀을 강론하며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문에 기록하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자 그대로 말씀을 넣은 상자를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다니는 풍습이 생겼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서 하나님도 성구갑을 매신다고 믿었다. 또한 메주자라고 신명기 말씀을 적은 나무상자를 문에붙여 놓았다.

그렇지만 말씀을 지니고 다닌다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단순하게 몸이나 문에 붙여놓으라는 뜻이 아니라 일상의 삶 가운데서 자주 기억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보고 말하라는 의미이다. 반복해서 암기한 말씀은 오래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도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예수님의 열두제자 이름이나 성경의 순서는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 자주 반복해서 마음에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 부지런히 설교말씀을 듣는 습관, 자녀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도하고 설명해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애써야 한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힘써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중요한 일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을 만났던 기억, 하나님과 친밀했던 시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간절히 구할 때 도우셨던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에서에게 쫓겨서 홀로 광야에서 돌베게 베고 누운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과의 강렬한 만남인 벧엘의 경험 같은 그런기억들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붙잡고 은혜 베푸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승리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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