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목사칼럼 – 꽃피는 봄
윤현숙 목사
봄은 우리 집 창가에서부터 왔다. 길고 추운 겨우내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했는데, 화초들이 일제히 꽃을 피운 것이다.
아직 밖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창가에는 보라색, 노란색, 흰색 꽃들이 꽃망우리를터뜨렸다. 집안에 꽃이 피니 기분이 좋아져서, 사진도 잘 안 찍는 내가 사진을 찍고 시간만 나면 가서 들여다본다. 어릴 때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서 집에서 화분을 많이 키우셨는데, 꽃이 피면 우리를불러 보라고 성화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본체만체 관심이없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도 누가 오기만 하면 와서 보라고 자랑을 한다. 마냥 좋아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신기했다. 우리 집 거실에는화분이 열다섯 개 남짓 있는데, 오래전부터 기르던 것이나 얼마 안된 것이나 한번 지고 나서 다음해 다시 꽃이 피는 경우는 이제까지거의 없었다. 예전에 시간여유가 있을 때는 찬바람이 불면 화분을실내에 들여놓고 겨울에도 늘 비슷한 온도를 맞추어주려고 애도 썼건만, 그때는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에나가 밤늦게 들어올 때도 많고, 계절이 바뀌는지 봄이 오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생각날 때 물과 양분을 겨우 주었을 뿐인데 꽃이 핀 것이다.
꽃을 피우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식물을 늘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며, 식물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거실의 낮의 뜨거운 햇빛과 밤에는 유리창 하나사이로 스며드는 냉기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었나보다. 생명을 피우는 데는 겪어야 할 과정이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겨우내 생명을 키우고 가장 아름다운 때를 준비하는 작업이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 신비스럽다.
거실에 핀 꽃을 들여다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이 순환하듯이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 춥고 긴 겨울같은 시기도 있고 꽃 피는 봄도 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봄날만 좋아하고 추운 날을 견디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늘 평안하고모든 일이 잘되며, 혹시 문제가 생겨도 속히 해결되어 온실 같은 환경에서 살기를 바란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강하게, 힘든 것도 견딜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도 그러지를 못한다. 사랑하는 자녀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어려운일은 어떻게든 부모가 다 대신해주고 모든 비바람을 막아주려 애쓴다. 그러나 온실의 화초같이자란 아이는 고난이 오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나 역시도 늦게 낳은 딸을 온 정성을 들여 돌보고 키우다 유학을 보내게 되자 엄마 없이잘 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는 내 생각과달리 홀로 있으며 많이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늘따뜻한 환경이 화초에게 좋은 것이 아니듯 사람에게도 때로는 겨울 같은 시간이 꼭 필요한가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위에는 꽃을 피우기 원해서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 퍼시 셸리가‘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했던가. 지금은 겨울이지만 봄을 기대하며 그 시간을 잘 이겨낸 분들에게 머지않아 봄이오고 꽃이 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추운 겨울은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의 계절이고, 생명을 잉태하는 귀중한 시간인 것이다. 고난은 분명 아프고힘들지만 잘 통과했을 때 큰 유익이 있다. 우리가고난의 시간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않는 우리 내면에서 봄꽃을 피울 준비를 하신다.우리는 꽃대가 올라오고 꽃망우리가 벌어질 무렵에야 비로소 봄이 온 것을 알아채지만,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일하시는 그 손길,그 작업을 보는 것이 믿음이고 소망이 아닐까….전도서 3장 1절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때’는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원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살면서 추구하고 열망하는 것이 기쁨과 즐거움인데, 그것이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달렸다는것이다. 아무리 강한 소원을 품고 열심히 노력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기한이 있고 그때가 되어야 이루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겨울을 보내며 지치고 두려워하는 집사님에게꽃사진과 함께 봄이 왔음을 알렸다. “내 인생에도 다시 봄이 올까요?”라는 답에 가슴이 시렸다.꽃이 져서 다 말라버린 밑둥에서 다시 꽃이 피는것을 보면 참 놀랍다. 겨울 뒤에 봄이 오고, 겨울이 아무리 길고 추워도 봄이 반드시 오는 것처럼,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인생에도 다시 봄이 오고 다시 꽃이 필 수 있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인생에 그런 날만 있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꽃피는 봄을 예비하셨다. 아름답게 피어 봄소식을 전하는 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내가 너희의 삶에도 이런 아름다움과 영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지금의 혹독한 추위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시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