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

적자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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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목사칼럼 – 초대

2015_09_clom02

윤현숙 목사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써온 기도일기나 다이어리를 들춰보며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일 년이참 빨리 지나갔고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저런 내용을 기록해둔 메모를 보면서 어떤일은 그 일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큰 감동을 받아서 평생 잊히지 않을 특별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애써 더듬어보지 않아도 모든것이 잘 기억되던 젊은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사역을 하면서 시간을 정해 상담을 하는데 어떤 날은 약속이 겹쳐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런 실수를 몇 번 경험하면서 대가를 치르고 나니 이제는 만나야 할 사람들과의 약속시간을 잘 적어놓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황동규 시인의 <삶의 향기 몇 점>이라는 산문집에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적는 자만이 승리한다’라는뜻이라고 해석해 놓은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작가도 적어놓지 않았다가 시적인 감동을 잊어버리는 대가를 지불하고 배웠다고 한다. 일찍이 선조들도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는 둔필승총(鈍筆陞總)이라는 사자성어를 쓴 것을보면이부분에 대한 지혜를 터득하게된것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너무 바쁘고 분주하기 때문에 나이든사람들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자신의 기억력에만 의존할 수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적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었고, 적자생존이 원래의 의미보다‘적는 자만이살아남는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교회 안에서도 영적인 유익을 위해 말씀을 묵상하거나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적으라는 것을 강조해서 가르친다. 한 교회에서 전교인이 영성일기를 쓰게 되면서 영적유익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고, 그 후에 다른 교회들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 잊어버림을 아시고 여러 곳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신명기 11장 18-20절에 보면“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삼으며… 또 네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고 말씀하신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말씀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반복해서 말씀을 봄으로써 그것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셨을 것 같다.

예전에 이와 관련된 유머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적는 것을 잘하는 민족이기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후세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우스갯소리이지만 날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기록하기를 좋아해서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말씀으로 일찍부터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을 손목에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까지 기록하라 명령하신대로 순종하다보니 기록하는 좋은습관이 길러지게 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그들도 일찍부터 적자생존을 체득하고 실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적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자꾸 적다보면 요령이 생겨서 잘적게 되고 습관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세미나, 「말씀묵상」세미나를 인도할 때 다른 여러 가지에 대해서도 강조하지만, 묵상하다가 받은 감동이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나 격려,앞으로 되어질 일, 환상들을 보여주실 때 기도노트를 만들어 적으라고 권한다.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거나 격려해 주시고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시간이 지난 후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던일들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검증할수 있는 유익이 있다. 매번 그렇게 권면하면서도, 정작 나는 귀찮아서 나중에 적어야지 하고 미루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정확하게 생각나지않아서 안타까워하는 일들을 여전히 경험하면서살아가고 있다. 올해에도 작년 기도노트를 보면서 어떤 일은 적어 놓지 않았다면 감격을 잃어버리거나 기억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적어두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다시 감사하고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소중한 기억들을 붙잡을 수 있게 해 준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또한 신명기 말씀을 보면서 기록의 유익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는 적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은것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기억해내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좀더자주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들을 기록해놓은 것을 보았다면 더 풍성한 삶을 살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4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기도나 묵상 중에 주신 것들을 기록해서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보는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행하실 약속들을 기대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