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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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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새로운 이야기 쓰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어릴 적 나는 이 다섯 글자가 시작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하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어디로 가게 될까? 공포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기쁨과 행복일까? 이야기하는 할머니 앞으로 바짝 더 다가가며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이야기든 좋았다. 이야기는 그렇게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의 내용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지만, 그 경험은 친근함과 즐거움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부인으로서 살아온 고통의 세월들을 담고 있는 에피소드 들이었다.
그 이야기들로 인해 그분들을 보다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삶에 스며있는 슬픔과 또한 그 것을 품고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인내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이라는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우리가 죽을 때 남기는 것은 이야기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태어나고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기도 하고 우리 삶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렇게 이야기는 우리 삶의 흔적이기도 하고 또한 삶을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상담의 여러 가지 방법 중 ‘이야기 치료(narrative therapy)’가 있다.
이야기 치료의 전제는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만들어 내고 해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삶의 사건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혼자,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항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이야기는 개인의 삶을 반영하는 도구이자 개인의 삶 자체를 만들어 내고, 더 나아가 정체성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여러 가지 사건들 중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정한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특정한 사건을 이야기할 때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특정한 주제를 염두에 두고 줄거리를 만들어서이야기한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내가 어릴 적에는 말이야…….” 또는 “내가 시집와서 말이야…….” 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말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경험을 해석하거나 나름대로의 의미를 붙이고 삶을 그려내고,
또 그렇게 그려진 이야기의 삶은 우리 자신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몇 가지 기능이 있다. 일어난 사실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이 흐른 후에도 삶의 여정에서 그 이야기는 다시 떠올라서 그 때의 감동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여러 종류의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의 다양한 역할이 있지만,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야기의 치료적 효과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기억의 조각들을 조직화된 정서적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게 되면 증상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상에 대한 사고와 감정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인지적 회피를 통해 재경험의 고통을 피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이렇게 그 감정을 회피하게 되면 외상을 장기기억 저장소에 통합할 수 없게 되고, 만성적 침투를 감소시킬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외상과 연합된 사고나 정서를 반복적으로 그리고 통제할 수 없이 경험하게 되고,
이것이 만성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서 현재의 관계와 활동을 방해하게 된다. 정서적 이야기 만들기는 외상 기억들을 다른 경험에
통합시키는 기능을 하게 함으로써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 외상을 상기시키는 자극들이 무력감을 촉발하더라도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루었던 다른 상황에 대한 기억들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대당했던 기억을 사랑받고 지지받았던 다른 관계의 기억들로
상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경을 겪었지만 그 역경의 공격에 무력하게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며 이겨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행위는 유대관계를 강화해주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사건이 촉발한 상실감, 소외감, 희생감 등을 해독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글쓴이나 화자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욕구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글을 쓰고,
멀리 떨어진 친구나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지, 그리고 인터넷 채팅방이 왜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치료의 가장 큰 어려움이 가해자나 가족들이 희생자가 실제로 겪은 일을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그 이야기를 믿고 지지해주는 경험을 하는 것이 치유를 위한 선행조건이 된다.
암환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진단 결과를 가족에게 말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공감적인 지지는
투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32:3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만난 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작업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내 삶의 이야기를 내어 놓는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그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내 삶의 이야기를
하나님은 내어 놓게 하셨고, 내가 토해내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셨다. 그렇게 나의 삶의 이야기,
내 마음의 이야기를 내어 놓을수록 하나님과 나의 유대감은 깊어져갔다. 그래서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공감대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형성되었을 때,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139:1

 

나 혼자, 나의 이야기를 머금고 살다가 하나님께 나의 이야기를 터트리기 시작했을 때, 그 시절의 나는 시편을 아주 좋아했었다.
시편 기자가 하는 삶의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공감하며, 비탄의 구절에서는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원수로 인한 두려움 속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구절에서는 나의 불안과 공포를 맡기기도 했다. 그렇게 시편의 이야기에 기대어,
또한 기도 시간을 통해 그분과 마주 앉아 내 삶의 이야기를 내어놓음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분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성경 말씀은 그분의 이야기였다. 나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소망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62:8

 

흔히 가족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 대화는 “밥 먹었니? 숙제는 했니?” 등의 사실적 질문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유대감을 느낄 수 있고 다시금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갈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치료의 메커니즘은 문제로 구성된 ‘지배적 이야기(dominant story)’를 해체하고 해결로 나아가는
‘대안적 이야기(alternative story)’를 새롭게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4:8

 

올해는 나의 삶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하나님과 마주앉아 하나님께 나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떨까?
그동안 슬픔과 불안, 질병과 고통의 이야기를 써 왔다면, 우리 삶의 문제로 얽혀서 우리를 억눌러왔던 그 지배적인 이야기를 내어 놓아
성령님께서 해체하시도록 하고, 이제 기쁨과 평안, 치유와 소망의 대안적 이야기를 새롭게 써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가족들이 서로의 마음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감,
가족의 유대감이 회복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2:16-17

 

1월이 좋다. 소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