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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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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쪽을 찾아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여러분 앞에 칠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칠판에 제가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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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제가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원” 또는 “동그라미”라고 답하실 겁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위의 그림은 도형의 정의에 비추어볼 때 “원”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연결이 끊어진 부분을 발견하고 무언지 모를 어색함으로 말미암아,
연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스스로 비어있는 부분을 연결하여 온전한 형태를 만들어 ‘동그라미’라고 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프리츠 펄스(Friz Perls, 1893~1970)가 창안한 게슈탈트 심리치료(Gestalt Psychotherapy)에서는 이러한 것을 ‘게슈탈트’(Gestalt)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형태’ 또는 ‘전체적 모양’이라는 의미를 지닌 독일어인데,
사물을 볼 때 부분과 부분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로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여러 부분을 어떤 관계성을 지닌 통합된 전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아무 의미 없는 그림에서도 우리는 형태(Gestalt)를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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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지각적 특성의 하나인 게슈탈트 개념을 심리치료 영역에 확장시키는데
우리가 게슈탈트를 형성하는 이유는 우리의 욕구나 감정을 하나의 유의미한 행동으로 만들어서 실행하고 완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심리치료에서 말하는 게슈탈트는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해소되는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다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은 것이나 친구를 만나 대화하고 싶은 것과 같이,
우리의 크고 작은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들이 바로 게슈탈트입니다.
게슈탈트를 형성한다는 말은 어느 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욕구나 감정을 전경으로 떠올리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전경과 배경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우리의 의식의 초점이 되는 것을 전경(前景, figure)이라고 하고,
초점 밖에 놓이게 되는 인식대상을 배경(背景, background)이라고 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검정색에 초점을 맞추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의 옆모습이 부각되어 보이고,
흰색에 초점을 맞추면 꽃병이 전면으로 떠오르고 검정색은 배경으로 물러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전경과 배경의 변화에 따라 젊은 아가씨가 보였다가 나이든 할머니가 보이기도 합니다.
전경과 배경의 변화에 따라 그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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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은 매 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게슈탈트를 선명하고 강하게 형성해서 전경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배경으로부터 전경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고,
행동목표도 불분명해지고 매사에 의사결정을 잘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게 됩니다.
우리가 분명한 게슈탈트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또는 게슈탈트를 형성했지만 해소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게슈탈트는 배경으로 사라지지 못합니다. 게슈탈트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결을 요구하면서 계속 전경에 떠오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오면 회사에 가서도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미해결 과제’라고 합니다. 미해결 과제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해소하는데 실패하게 되고,
마침내 심리적, 신체적 장애를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전경과 배경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알아차림”과 “접촉”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전경과 배경을 교체하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awareness)은 개체가 자신의 유기체적 욕구나 감정을 지각한 다음 게슈탈트로 형성하여 명료한 전경으로 떠올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접촉”(contact)은 전경으로 떠오른 게슈탈트를 해소하기 위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제는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이러한 메커니즘을 우리의 영혼에 적용해보기 원합니다.
인간은 온전함을 추구합니다. 온전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원래 우리에게 온전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온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하지만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영광이 떠나간 그 빈자리로 인해 우리는 결핍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온전함을 다시 찾기 위한 습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렘2:13

 

어릴 적 읽었던 책 중에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그림책에서 이 빠진 동그라미가 자기 짝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데
, 세상을 다니면서 이것도 끼워보고 저것도 끼워보지만 다 맞지 않아 고심하다가 결국은 자기에게 맞는 짝을 찾아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빠진 동그라미는 잘 굴러가지 못합니다. 그렇듯 주님의 영광이 없는 우리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영광의 빈자리로 인해 생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돈을 쫓기도 하고 명예를 추구하거나 사람의 관계에 안주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빠진 부분을 온전하게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원래 있던 것으로 채우는 것뿐입니다.
육체에 배고픔의 욕구가 올라올 때 게슈탈트를 선명하게 형성하는 것만큼, 영혼의 결핍,
성령의 임재가 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결핍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접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빵이 먹고 싶은 건지 밥이 먹고 싶은 건지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영혼의 결핍도 그렇게 민감하게 알아차리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영광의 부재로 이가 빠져버린 동그라미 같은 나의 영혼을 다른 무엇으로 메꾸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서 이 빠진 동그라미가 온전한 동그라미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