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목사칼럼 – 초대
윤현숙 목사
한 자매로부터 “올 한해는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어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고민 없이 평탄한 길을 가고 있어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매의 이야기여서 좀 의외였다. 그 문자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하나는 어린 나이지만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살고 있는 자매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런 고백을 할까 하는 생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태도에 대해 성경에서 죄라고 보기 때문에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데 비해, 이 자매는 솔직해서 좋다는 생각이었다.
사역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 중에도 기도가 안 된다고 속상해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대부분 하나님께 헌신하며 충성스럽게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했지만 하나님께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자신에게 허락하신 일에 대해 탓을 하거나 불평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러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그동안 하나님을 향해 눌러 놓았던 서운한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 감정들을 오랫동안 눌러 놓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메말라가고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삶 가운데서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이해되지 않아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감정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방치해 두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버리는
장애물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기도가 막히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려하지 않고,
기도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다 지쳐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이런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런 상황을 뛰어넘고 돌파해야 하는지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에서 길을 찾게 된다.
이사야서 38장에서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중한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제 죽게 될 것이니
유언하라는 말씀을 전해주신다. 죽음이 임박할 만큼 병세가 중했으니 육신의 고통도 심각했을 텐데, 하나님으로부터 죽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전해들은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왕들 중 다윗, 요시야와 함께 삼대 선왕으로 불릴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자식도 없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억울하고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성경에는 당시에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감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이 간다. 누가 보더라도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불평을 쏟아낼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그는 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온 것을
기억해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한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에도 자신의 마음의 두려움, 원망, 슬픔을 그대로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갔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꺼져가는 기도의 불을 다시 일으키는 불쏘시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간 그의 기도도 감동이지만,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주저앉아 있는 우리를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된다.
유언하고 삶을 정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려달라고 부르짖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무조건 순종하라며
책망하지 않으시고 바로 이사야를 되돌려 보내셔서 응답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솔직한 기도를 기뻐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 간절하게 기도한 히스기야에게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 또한 그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앗수르로부터 구원해주시며 기적적인 징조까지 보여주시겠다는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삶을 누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건짐을 받은 히스기야는 오늘도 위기 속에서 낙심하며 주저앉아 있는 우리들을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고 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나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지치고 상심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동역자들이,
새해에는 마음을 활짝 열고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길 기도한다. 그 간절한 기도에 귀 기울이며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함께 기대하고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