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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5

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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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장. 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5

 

5. 킹덤빌더의 삶의 요소 – 일(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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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작업)

1. 일
1) 일의 본질적 의미와 변질
일의 성경적 의미
타락후 일의 의미
2) 그리스도인의 이원론적 사고
3) 일과 의식주
4) 일과 문화
5) 일과 능력
6) 일과 소명
7) 일과 교회
8) 일과 안식
9)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7) 일과 교회

비유를 들자면 교회는 더 이상 거대한 호화 유람선이 되지 말고 전투를 위한 항공모함이 되어야 한다. 항공모함은 전투기를 실어 나르며 작전을 수행하는 거대한 군함이다. 항공모함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전투기를 출격시킨다. 그리고 그 전투기는 목표지점에 가서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 항공모함으로 돌아와서 연료공급을 받게 되고 무기를 다시 장착한다.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관계가 바로 전투기와 항공모함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이나 일터에 나아가서 주의 뜻을 이루고 다시 돌아와 기름과 무기를 장착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모든 임무를 교회 안에서 행한다. 오늘날 교회는 마치 거대한 유람선에 있는 수많은 승무원들이 초대된 승객들을 섬기면서 일하는 것과 같다. 마치 세상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주중에), 그 돈으로 유람선에 승선하는 것과 같다(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주일에). 이러한 삶에는 세상에서의 임무는 없고, 오직 유람선에 오를 때부터 임무가 시작된다. 또한 유람선이 너무나 호화롭고 거대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승무원들의 섬김을 받을 수 있다.

 

세상의 삶은 의미가 없거나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곳이고,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이고, 삶의 목적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주중에 흩어진 교회에서 주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고, 주말에 모이는 교회로 돌아와서 예배드리고 교제함으로서, 다시 재충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일”을 단순히 교회 안에서 주를 위해서 일하는 헌신과 예배하는 일 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그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주를 나타냄으로 주의 뜻을 이루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8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132번 공적으로 등장하셨던 사건 중 122번은 시장(marketplace)에서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52개의 예화 중 45개는 일터와 관련 있는 내용이며, 사도행전의 40번의 기적 중 39번은 종교적 모임이 아닌 곳에서 일어났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성직자가 아닌 일하고 있던 12명을 부르셨고, 나머지는 그들의 일터로 다시 보내셨다. 예수님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아담부터 노아, 아브라함,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교회가 아닌 일터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8) 일과 안식

설령 우리가 일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일만이 중요하며, 쉼은 필요악이라는 반대쪽 생각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다.

 

하나님이 주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한다하더라도, 그 일에 묶이면 우리는 일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다. 내 자아를 그 일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그 일이 나를 삼켜 버리고 일중독에 빠져 들게 마련이다. 설령 그 일이 교회사역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셈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6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전4:8

 

하나님께서는 일하신 뒤에 쉼을 가지셨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3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안식을 주셨다. 주의 뜻을 행하면서도 일에 묶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와 관계하는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안식은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휴식하거나 재충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인 안식관이 아니다. 안식일은 평일을 위해 있는 날이 아니라, 반대로 평일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안식은 일 가운데 취하는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날이며, 그 생명을 이 땅에 풀어내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안식은 일을 하지 않거나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것들을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영혼의 상태이다. 한 주 동안 육신을 바쁘게 함으로써 영혼이 핍절하게 된 것을 다시 회복시키는 시간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한 주의 5일을 위해서 2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일을 통해서 5일의 삶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을 통해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해야 할 일들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안식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이 시간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일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며, 삶의 의미를 체득할 수 있게 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1:20-21

 

안식은 일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일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자기 의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을 위해 사역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셨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 일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늘 안식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만큼 일하는 즐거움을 체험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분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한다.

 

왜 일해야 하고 바쁘게 살아야 하나? 그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동기는 자신을 만족시키기 우해서, 보다 풍성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더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는 더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거나 더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만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 삶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다 하려고 하는 삶의 태도를 버리고,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을 버리고 내려놓는 것을 배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 때 물질로 인한 자기만족으로 인한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한 기쁨과 세상의 삶에서 벗어난 자유와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되면, 전 인생에 걸친 하나님과의 관계가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누구도 해치지 못하는 자신만의 자유와 희락을 누리기 위해 안식 없이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종노릇하는 것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9)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오늘은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의 마지막 날이고, 반대로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이고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날을 주신 것에 새로운 소망을 품고 그분을 더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

 

우리가 매일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를 이 땅에서 반드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된 번영신앙으로 인해 결과지상주의, 성공주의에 묶여 있다. 내가 주의 말씀대로 살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은 어떤 성공이나 결과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29

 

세상적으로 볼 때 자신의 삶 동안에 행한 일들이 남들과 비교할 때 하찮은 것이고, 뛰어난 업적을 나타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을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삶을 살 때 무기력함을 느끼고 실패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일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을 하나님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했다면(그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했다면)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이 행한 일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미 존재하는 것의 일부분을 이 땅에 나타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를 위해서 행한 일들은 죽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만, 주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행한 일들은 결코 사라지거나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것의 완전함과 온전함을 보게 될 것이며, 자신이 이 땅에서 행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셨던 일들의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에 감격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58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자신을 부르신 그대로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그 위치에 있으라고 말한다. 이것이 부르심과 섬김에 대한 성경적 관점이다. 단지 그 전과의 차이는 하나님과 함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관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7:17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전7:24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일을 행하지만 그럴 때마다 흔히 세상(세상신)이 방해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분노와 짜증을 내며 “내가 이렇게 선한 일을 행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시키게 되고 그 결과 성령님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 계신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내 뜻에 따라 오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생각 대신에 성령님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도록 해야 한다. 지도를 생각해 보라. 그 지도를 보고 갔는데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도를 바꾸겠는가 아니면 다시 지도를 보고 당신의 위치를 바꾸겠는가?

 

한편, 많은 일을 하고 바쁘게 보내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일 중독에 묶여 있다. 그런 사람은 일이 없거나 바쁘지 않으면 그 마음에 공허함이 있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일을 만들어 낸다. 수고했지만 자유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삶을 사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볼 때 이러한 사고방식 안에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숨어있다. 내 삶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일을 보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와 함께 멍에를 맬 때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예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 반대로 예수님이 행하실 때 나는 내 일을 못하고 주의 일에 동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멍에이다. 우리는 그 멍에를 져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8-29

 

또한 우리는 더 나은 삶, 더 인정받는 삶, 자신의 잠재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기를 원한다. 가능하다면 포기 없이 주어진 일을 다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스케줄의 빈자리에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채워 넣게 되고, 그 결과 항상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살게 된다. 자녀로서 주의 뜻을 행하는 삶은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좋아서거나 가치가 있어서 해야 할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일들을 찾아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녀가 하는 일에는 무엇이 나타나야 하는가? 모든 일은 하나님을 대신하여(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서) 주의 뜻을 창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녀로서(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탁월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 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행하는 일에는 대리인, 주의 뜻, 탁월함 이 세 가지가 나타나야 한다.

 

결론적으로 일은

 

(1)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다.
(2)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데 기여하는 행위이다.
(3)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과 은사를 알 수 있게 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4) 세상에서 볼 때는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 자녀의 존엄성을 세우는데 필요한 것이다.
(5)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가장 놀라운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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