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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첼로의 성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I
미국 인디애나 음악대학원 졸업 / 현 서울과학기술대학 출강 김애엽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성서”라고 불리는 곡들을 여러 곡 작곡하였다. 피아노의 성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바이올린의 성서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 첼로의 성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이다. 심오한 음악의 깊이와 방대한 길이, 절대적인 완전성과 지극한 음악의 아름다움 등으로 후대의 사람들이 존경의 마음으로 “성서”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보다도, 바흐는 성령에 이끌려 살았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작곡을 했고, 그의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강력하게 끼치며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음악의 성서”라는 이름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889년의 어느 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헌 책방에서 13세의 어린 소년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색 바랜 악보뭉치를 발견하게 된다. *1그 악보는 바로 오늘날 “첼로의 성서”라고 불리며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고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인 것이다. 이 악보의 발견은 파블로 카잘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일 뿐 아니라, 근대 음악 역사상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파블로 카잘스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와 나는 부두 근방의 오래된 악보 상점에 들어갔다. 나는 많은 스코어들을 여기저기 훑어보기 시작했다. 불현듯 낡고 색이 바란 한 묶음의 스코어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첼로를 위한 무반주 모음곡>이었다! 나는 놀라움으로 스코어를 읽었다. <첼로를 위한 여섯 개의 모음곡> 그 제목 속에는 어떤 신비한 매력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결코 모음곡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아무도, 나의 선생님들조차 그 곡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 발견은 내 생애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커다란 계시라고나 해야 할 사건이었다. 나는 그 모음곡들을 마치 왕관에 달린 보석들처럼 가슴에 꼭 안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 방에 들어가 그 음악에 빠져 들었다. 나는 그 음악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그 곡을 억누를 수 없이 흥분하여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 12년 간 매일 매일 그 곡을 연구하고 공부했다. 정말로 12년이 지나고 내가 25살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중의 한 곡을 청중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 때 나는 13살이었지만, 그 후 80년 동안 그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라움은 언제나 생생하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 곡은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내가 그 모음곡을 하나하나 연구해 나감에 따라 그 곡집에 들어있는 위대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가 내 눈 앞에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그 곡은 이제 나의 가장 귀중한 음악이 되었다. 이 오랫동안의 연구과정을 거쳐 경험한 감동은 예술가로서 내 생애에서 가장 순수하고 숭고하며 강렬한 것이었다.”
[*1 파블로 카잘스가 발견한 악보는 “그뤼츠마허 판본”인 필사본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18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출판됐고, 카잘스가 발견하기 전에도 이렇게 인쇄가 되어 종종 연주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을 발견하여 현대의 첼로로 연주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대중에게 널리 알린 사람이 카잘스이다. 그러므로 이 곡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 파블로 카잘스의 존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과 함께 독주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 중 음악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역사적인 명곡은 바흐가 죽은 뒤 200년가량이나 묻혀 있다가 소년 카잘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져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카잘스는 40년 가까이 그 곡을 연습하고 연구한 끝에, 1936-1938년에 걸쳐 전 곡을 녹음하여 음반을 냈다. 그의 역사적인 레코딩은 오늘날까지도 무반주 첼로 모음곡 해석에 기초를 놓은 가장 모범적인 해석으로 전해지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이며 합창 지휘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 노래, 바이올린, 플륫 등을 배우고 다룰 줄 아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천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카잘스는 첼로를 특히 좋아해서 11세에 당시 유명한 첼리스트였던 마드리드의 호세 가르시아에게 가르침을 받고 곧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첼로를 배우는 한편, 음악이론, 피아노, 작곡, 실내악에 대한 연구도 체계적으로 익혀 나갔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첼로연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과 생활을 했다고 한다. 12세의 어린 나이에도 카잘스는 그 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첼로주법의 결함을 깨닫고, 새로운 주법을 연구개발하고 새로운 활을 사용하는 법도 개발하여 많은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활 쓰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합리적이고 예술적으로 놀랍게 활을 잘 사용하여 후에 “활의 왕자”라고 불렸다. 또한 “현대 첼로 주법의 완성자”라는 별명도 주어졌는데, 현대의 첼로 주법은 대부분 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며, 현대 연주계에서 첼로가 차지하는 높은 지위 역시 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카잘스는 25세까지 활발한 작곡 활동을 하였고 선생님들도 작곡가의 길을 가기를 바랐지만, 25세부터 연주가로서 크게 성공하여 첼리스트로서의 길을 갔다고 한다. 종종 그는 그가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바흐 자신의 자필악보는 소실되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서 작곡연도가 정확하게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바이올린의 성서”라고 불리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독주곡>과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모음곡은 바흐의 자필악보가 현존하고 있는데, <통주 저음*2이 없는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독주곡 제1권. 요한 세바스찬 바흐 작곡, 1720년>이라고 적혀 있어 분명한 연도가 밝혀져 있다. 또한 바흐의 두 번째 부인인 안나 막달레나가 사보한 악보는 <제 1부 통주 저음이 없는 바이올린 독주곡. 요한 세바스찬 바흐 작곡>과 <제 2부 통주 저음이 없는 첼로 독주곡. 라이프치히 합창장이며 음악감독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작곡. 그의 아내인 바흐 부인에 의한 필사>라고 기록된 악보가 모두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곡은 1720년대에 작곡되어 1권과 2권으로 기재하여 묶여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가 많다.
[*2 통주 저음(Basso Continuo): 17-8세기 바로크 시대에 쓰였던 반주 형태로 첼로나 비올라 다 감바 같은 저음악기와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같은 건반악기가 함께 독주악기를 반주해 주는 형태를 말한다. 또한 그렇게 반주 할 때 건반화성 악기가 즉흥 연주로 화성을 만들어 주는데 그런 즉흥 연주 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바흐에게 1720년은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가 갑자기 그의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 해이다.그 해에 바흐는 극심한 슬픔 속에서 아내를 그리며 그가 작곡한 곡 중에서 가장 비탄에 잠긴 곡으로 해석되는 곡으로, 작곡가 브라암스가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극찬함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6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을 작곡했다. 따라서 그 곡과 함께 쌍을 이루며 편집되어 있고, 아무리 연주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할 만큼 심오하며,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과 회한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는 비슷한 분위기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바흐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움을 당했을 때 창작된 곡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바흐는 자신에게 닥친 큰 고난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그의 재능인 음악으로 승화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고, 그 음악으로 후대의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위로를 선사하고 있다. 1717년부터 1723년까지는 바흐가 쾨텐의 레오폴드 공의 악장으로 있던 시기로, 주옥과 같이 아름다운 기악 걸작들을 많이 작곡했던 시기이다. 쾨텐의 궁정악단에는 바이올린의 명수 시피스가 있었고, 또한 아벨이라는 명 첼리스트가 있었다고 한다. 바흐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기악곡들을 썼고, 그 중에서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 6곡은 시피스를 위해, 무반주 첼로 조곡 6곡은 아벨을 위해 썼다고 전해진다.
이 첼로 조곡은 그 당시까지 독주악기로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던 첼로라는 악기의 연주기법 개발과 가르치는 교법을 위해 쓰여졌다는 주장도 있다. 바이올린 같이 화려한 기교도 구사하기 어렵고 다양한 음색을 가지지도 못한 첼로는 당시에 독주용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단지 합주에서 저음을 보강하고 다른 악기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바흐가 이 무반주 모음곡을 작곡함으로써 독주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며 그 위상을 높여, 첼로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이 첼로 모음곡은 독일 음악의 전통양식과 함께 여러 나라의 새로운 양식을 도입하고 바흐의 신앙의 깊이까지 더해져, 그 내용과 형식의 절대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늘날 모든 첼리스트들이 반드시 정복하고 싶어 하는 필수적인, 그리고 가장 최고의 목표가 되는 곡으로 여겨지고 있다.
1721년 5월 24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바흐의 자필로 브란덴부르크 변경의 크리스천 루트비히 백작에게 헌정한다고 적힌 이 협주곡의 악보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죽은 뒤 겨우 10센트에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음악가들은 이 협주곡들을 바로크 시기의 모든 협주곡 중 가장 위대한 최고봉의 협주곡으로 평가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의견일치를 본다. 우리를 신선하고 새롭게 하는 이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을 값없이 공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마음과 눈으로 누리며, 귀로는 바흐의 음악선물을 듣고 누림으로 참으로 기쁨이 넘치는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이 모음곡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반주라는 것이다. 첼로 한대가 멜로디를 나타내는 선율악기이면서 동시에 반주인 통주 저음의 역할을 모두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발상은 오직 바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후대의 음악가들은 말한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선율악기는 일반적으로 화성을 넣어주는 반주가 필요한데, 그러한 악기를 이렇게 무반주로 작곡하는 것은 바흐의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며, 최고의 모험이자 그의 창조적인 정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선율미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화성적인 음들을 내야하고 나아가 음악의 내용을 채워야 하므로, 이 곡은 연주자의 높은 음악성과 연주기량이 요구되는 곡이다. 한대의 첼로로 선율과 반주(통주 저음)의 효과를 모두 내기 위해 바흐는 여러 선율이 한꺼번에 연주되는 대위법(폴리포니)적 방법과 중음 주법을 사용하였다. 중음기법(Double Stops)은 어떤 음의 움직임에 화성적 기능을 넣기 위해서 동시에 여러 음이 울리도록 하는 것이다. 바흐는 인접한 사용 가능한 모든 현을 총동원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어 2중, 3중, 심지어 4중까지도 동시에 연주하도록 작곡되어, 마치 여러 대의 첼로가 동시에 연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기법 때문에 이 곡이 첼로로 연주하는 곡 중에 가장 어려운 곡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모음곡 제 6번은 현대 첼로로는 연주하기 곤란한 고 음역으로 씌어진 곡도 포함되어 있다.*3 그러나 파블로 카잘스는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모음곡의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오랜 시간 연구와 연습 끝에 기교적 난제를 해결하고 처음으로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내 놓은 파블로 카잘스의 업적은 너무나 중요하며, 현재 우리가 이 명곡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현대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카잘스의 평생에 걸친 필사의 노력 덕분이다.
[*3 첼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16,7세기까지는 모양과 크기, 현의 숫자 등이 저마다 달랐다. 그래서 이 무반주 첼로 조곡도 그 당시에 있었던 첼로의 조상이라고 하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무릎사이에 놓고 연주하는 비올라)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했다고 하는 설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첼로보다 5도 높고 5줄의 현을 가진 ‘비올론 첼로 피콜로(Violon cello piccolo-작은 비올라)’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했다는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그 외에 ‘비올라 폼포자(Viola Pomposa)’, ‘비올론 첼로 다 스팔라(Violoncello da Spalla-바이올린처럼 어깨에 얹고 연주하는 첼로)’라는 악기들을 위해서 작곡했다는 학설들도 있다.]
이 곡은 연주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감상도 힘든곡이라서 소개하기를 아주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바흐가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당한 유족들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헌정한다면 바로 이 곡을 헌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들어보면 바흐가 자신에게 닥친 큰 슬픔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그 슬픔을 이기고 어떤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살았는지를 음악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그 곡을 발견한 파블로 카잘스의 삶은 자기에게 재능을 선사해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눈물겹도록 충성된 삶을 살았는지, 믿는 자로서 우리가 어떤 청지기적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34:18-19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Six Suites for Violoncello Solo, BWV 1007-1012>은 모두 춤곡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무반주 조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6개의 모음곡이 다시 각각 6개의 춤곡으로 구성되어(총 36곡) 있는데, 알레망드-꾸랑트-사라방드-지그 등 4개의 기본적인 춤 곡 외에 제일 앞에 자유로운 악곡인 프렐류드를 먼저 놓아서 6개 모음곡 각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사라방드와 지그 사이에는 갈랑뜨 형식으로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춤곡들을 끼워 넣었는데, 갈랑뜨에 모음곡 1,2번은 미뉴엣(Minuet), 모음곡 3,4번은 부레(Boure), ´ 모음곡 5,6번은 가보트(Gavotte)가 들어가 있다. 파블로 카잘스는 무반주 첼로 조곡의 전 6곡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제1번-낙관적, 제2번-비극적, 제3번-영웅적, 제4번-장엄함, 제5번-격정적, 제6번-목가적. 그는 이러한 특성이 전주곡인 프렐류드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6곡을 모두 들으면 약 150분의 시간이 걸린다. 워낙 방대한 양의 곡이라 제 1번만 소개한다. 그러나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모두 감상하면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첼로라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음색과 풍부한 울림, 극치의 기교들과 넓은 표현범위, 춤곡에 바탕을 둔 다양한 형식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곡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제 1번 G장조 BWV 1007 (Suite for Cello Solo)
프렐류드(Prelude)
4/4박자 – 전주곡이라 하며 가장 유명한 곡으로 멜로디가 귀에 익숙한 곡이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성격을 지닌 곡이다.
알레망드(Allemande)
2/4박자 – 독일풍의 춤곡으로 비교적 빠르고 힘차다.
쿠랑트(Courante)
2/4박자. G장조 – 쿠랑트라는 뜻은 “달리는”, “빠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옛 춤곡 형식으로 힘차고 생동감 있는 주제로 전개된다.
사라방드(Sarabande)
3/4박자 – 스페인 춤곡으로 느리고 장중하며 품위가 있는 곡이다
미뉴에트(Minuet)
3/4박자 – 장조에서 단조를 거쳐 다시 장조로 돌아오는 3부 형식. 지방에서 시작되었으나 궁중의 춤곡으로 바뀌었으며 우아하고 매끄럽다.
지그(Gigue)
6/8박자 – 영국에서 시작된 춤곡 형식으로 빠르고 경쾌한 곡이다.
파블로 카잘스 외에 세계적인 훌륭한 첼리스트들이 모두 이 곡을 필생의 역작으로 연주하고 있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는 10대 때 이미 이 곡을 전 곡 연주했지만, 평생 자신이 원하는 음향을 갖춘 장소를 찾아다니다가 60세가 되던 해인 1991년 프랑스 마들렌 성당에서 전 곡을 녹음했다.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중국계 천재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는 1985년 이 곡으로 그래미 어워드 최고 기악 연주가상을 수상했다. 부드럽고 순수하며 우아하게 연주하는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urnier), 원전악기 연주의 거장 안너 빌스마(Anner Bylsma)의 연주도 매우 유명하며 아름답다.
우리나라 연주가로는 파리 국립 음악원과 인디애나 음대를 졸업한 첼리스트 양성원의 훌륭한 음반이 EMI에서 나와 있다. 양성원은 파블로 카잘스를 깊이 이해하고 매우 존경하며 카잘스가 늘 앵콜곡으로 연주했던 “새들의 노래(Song of the Birds)”를 연주하곤 한다. 세계 유수의 평론가들로부터 웅장한 사운드, 빛나는 테크닉,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정확한 음정, 강력한 연주력의 소유자이면서도 추호의 음악적 허영을 찾아볼 수 없는 음악가라는 극찬을 받는 첼리스트 양성원의 연주도 유투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무반주 조곡 전체를 처음에 다 듣기에는 누구에게나 매우 힘들다. 유투브에 첼리스트 양성원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 동영상 레슨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서 설명과 함께 조금씩 맛보기로 나온다(이 동영상은 양성원이 1년간 유럽에 머물면서 집중 탐구하여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무려 35시간에 걸친 대작이다). 양성원과 요요마의 여러 조각들의 연주를 먼저 듣고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의 전곡 연주를 들으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유투브를 검색하면 수많은 연주자들의 다양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첼로 뿐 아니라 많은 악기 연주자들이 이 곡의 연주를 시도했다.
Pablo Casals-Bach Cello Suite Nos.1-6 Full Album
매우 열악한 녹음환경에서 녹음해서 음질이 좋지 않지만, 그의 자유롭고 풍성하며 압도적인 연주 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전 곡을 다 감상할 수 있다.
Rostropovich-BACH(DVD)
마들렌 성당에서 녹음한 전 곡을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Yo-Yo Ma-Bach, cello Suite
전 곡 녹음도 있고 다양한 장면의 동영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Bach, Cello Suite No 1-6, Pierre Fournier, cell
Archiv에서 나온 음반을 제 1번부터 6번까지 분리해서 간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올려놓았다.
Anner Bylsmar : Bach Cello Solo No.1 BWV 1007
노 첼리스트의 무르익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제 1번부터 6번까지 각각의 영상 뿐 아니라 44분짜리 긴 영상도 있다(Anner Bylsma plays Bach로 검색).
첼리스트 양성원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 동영상 레슨
클래식 팟이라는 회사에서 동영상강의를 판매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음악을 너무 짧게 보여주지만 이해에 도움이 된다.
“현대 첼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잘스는 위대한 음악가로서만 아니라 위대한 인간으로서도 많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11살에 처음 첼로를 대중 앞에서 연주한 이래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86년 동안 첼로와 함께한 카잘스는, 음악을 통해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구현하고자 힘썼던 음악가였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일을해서 돈을 벌며 살아왔던 자신도 예술가이지만 육체노동자라고 말하며, 1920년부터 자신의 사재를 털어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스스로 지휘도 하며 많은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1달러짜리 티켓”연주회*4를 개최하였다. 1936년 조국 스페인의 프랑코 군부는 내란을 일으켰고, 카잘스는 그의 독재정권을 공공연히 반대하여 프랑스 국경근처인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 ‘프라도’라는 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그는 항의의 표시로 은거하며 모든 연주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조국이 독재자 프랑코 네로의 손에 넘어가자 귀국을 거부했다. 프랑코 정부는 그를 잡기만 하면 양쪽 팔을 잘라버리겠다고 공식선언을 하여, 1939년부터 그는 조국을 떠나 죽을 때까지 망명생활을 하였다. 그 후 1950년 그의 망명지 프라도에서 바흐 서거 200주년 기념 음악회를 계기로 다시 연주를 시작하여 여러 나라에서 연주하였으나, 스페인과 군부 독재정권을 도왔던 파시즘 이탈리아,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는 절대로 연주를 하지 않았다.
[*4 한 달 월급이 백 불 미만의 노동자들이 일 년에 1달러만 내면 자신이 운영하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악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화적인 혜택을 나누는 배려를 하였다.]
망명 중이던 1961년에는 조국의 상황을 슬퍼하며, 원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곡이며 고향인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민요인 “새들의 노래”를 편곡하여 미국의 백악관에서 연주하였다. 그는 “내 고향의 새들은 하늘을 날며 ‘평화, 평화’라고 노래한다. 우리는 모두 한 그루의 나무에 달린 잎새들이다. 한 그루의 나무란 바로 온 인류이다. 우리는 다른 잎새들 없이는 살 수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고 연주를 하였다. 1962년에 카잘스는 그가 전쟁 중에 작곡한 평화의 오라토리오 “El Pessebre”를 발표하며 평화운동을 시작한다고 공표하고, 타계할 때까지 그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음악으로 평화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제 1차 세계대전, 에스파냐 내란, 제 2차 세계대전까지 20세기의 격동들을 모두 겪어낸 사람이었다. 망명 생활을 하며 수많은 인생의 역경을 헤치고 나온 카잘스는 불의에 항거하고, 자기 민족인 에스파냐 난민들을 돕고, 또한 조국의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해 힘썼던 훌륭한 음악가였다. 그는 일생 동안 그의 바램대로 음악으로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며 살았다.
카잘스는 매일 아침 이 <무반주 첼로 조곡>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연습했다고 한다. 그는 테크닉적으로나 음악적 표현력에 있어서 최고의 완성도를 이루어냈다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완벽하게 연주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하니 이 곡의 깊이를 짐작할 만하다.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곡은 폭 넓은 시적인 광휘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 특징들은 바흐의 본질 그 자체이며 또 바흐는 음악의 본질입니다.” 눈을 감고 이 곡을 들으면 마치 성경을 읽는 것처럼 마음과 영혼이 맑고 깨끗해진다고 한다. 역경을 극복한 선율이 주는 감동에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한다. 카잘스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제자가 연주하는 바흐의 곡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가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산 살바도르의 바닷가 그의 집에는 “바흐의 정원”이 있다. 바흐를 존경하고 사랑하여 평생 바흐의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그는, 죽는 날까지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살다가 갔다. 위대한 천재이면서도 늘 겸손했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에게는 따스한 손길을 베풀었고, 불의한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게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투쟁했으며,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다간 그의 삶은, 잔인한 대학살이 이어졌던 20세기에 인류에게 내려준 하나님의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나는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내 첫 번째 사명은 동시대인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준, 언어와 정치와 국가들의 경계를 초월하는,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그 사명을 다하도록 나는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세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세월호” 사고는 깊은 회개와 함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 시대의 크리스천이란 나만 잘 살다가 천국에 잘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겠다는 욕심쟁이들은 아닌지…. 물에 빠져 죽어간 학생들 부모의 터질 듯한 슬픔과 통곡이 내 하늘 아버지의 통곡이 아닌지…. 예수님의 간절한 마지막 부탁을 우리가 얼마나 귀담아 듣고 있는지…. 이 세상에서의 육신적인 죽음보다 영원한 영혼의 죽음이 몇 백배, 몇 천배 중요한데, 그 영혼들의 죽음을 그냥 방치한 채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그 파렴치한 인간이 바로 내가 아닌지…. 우리는 수많은 영혼들의 영원한 죽음에 얼마나 절박하게 가슴 아파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부르짖으시는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
우리의 가까운 형제이니 이 생명줄 누가 던지려나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