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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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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목사칼럼 – 주님의 사랑

윤현숙 목사

난 팔주 동안 팔복의 말씀을 묵상하고 새벽예배때 나누었다.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이셨을지 느껴보려고 애를쓰면서 하나하나를 묵상했는데,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때로는 말씀이 부담이 되어서 무거운 돌 하나를 어깨에 얹어놓은 듯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팔복의 삶이 진정으로 복된 삶인 것을 고백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복의 개념이있어서 예수님께서 아무리 이것이 복되다 하셔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다음에 바로 팔복을 말씀해 주신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의 복이나 보장을 약속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를 위해 박해받고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내세에 백배나 받을 것이라 약속을 주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들도 이 땅에서 높아지고 잘되는 것에 더 관심이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복인 의를 위하여 박해받은 자가 복 있다 하신 말씀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고난 중에도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주님께서 형통한 삶, 더 나은 삶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견디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했더니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축복하셨다는 간증에 박수를 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으로 주님 뜻대로 살면세상에서 욕을 먹고 억울하게 악한 말을 들을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박해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라고까지 말씀하신다.
물론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박해가 진정으로 의를 위한 박해인지 분별해야 한다.
자신의 부주의와 이기심, 사랑 없음으로 인해 미움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위해 박해받는다고 말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박해를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심일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과 삼년을 동고동락했음에도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다 버리고 떠났었다.
주님으로 인해 자기들도 박해받을까 두려워서였다.
박해받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지며 자원해서 핍박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된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부르시고 소명을 주셨을 때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복을 누리고서 비로소 자원하는 마음으로 박해받고 순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매를 맞거나 갇히고 죽임 당하지는 않지만, 주님으로 채워질 때 주를 위해 박해받는 자리까지 따라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 복은 너무 중요해서 주님이 두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주님으로 인해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거스려 악한 말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 큰 상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 박해한 사람이나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을 바라보면 즉 땅의 것들에 마음이 집중되어 있으면 기뻐할 수 없겠지만, 예수님의 약속과 상급을 바랄 때 기뻐할 수 있다.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인데, 첫 번째 복인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 받을 상급도 똑같이 천국이다. 그러고 보니 팔복의 말씀은 천국에서 시작해 천국으로 끝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은 천국에서 시작해 천국으로 끝나는 것이다. 세상은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에 충실하라고 하지만, 하나님나라는 현재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미래를 바라게 한다. 주님의 약속은 이땅의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크고 깊은 약속이다. 그렇게 약속을 믿음으로 주를 위해 박해받을 때,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영광의 영으로 우리 위에 임하여 계신다고 말씀한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 본 하늘의 영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동역자들이 계시다면 신실하신 우리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그 길을 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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