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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집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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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ing & Building
집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산부인과 전문의 메디플라워 산부인과·자연출산센터 원장 정환욱


『킹덤빌더』 매거진의 「킹덤라이프-Birthing & Building」 섹션에 ‘자연주의 출산(nature- centered birth)’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한지가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보실 때는 이미 2015년 새해가 되었겠지요?
저는 지금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는 ‘별다방’에서 글을 쓰면서, 지나가는 한해를 차분히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2015년의 첫 「킹덤라이프-Birthing & Building」 섹션은 새해 아기를 갖고자 소망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행복하게 아기를 낳았던
산모들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덧붙여 산부인과 의사로 훈련받은 제가 어떻게 ‘그들만의 출산’에 초대를 받아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새해 부모가 되기를 소망하시는 분들은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를 통하여
여러분의 출산의 감동을 미리 맛보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 만일 아는 사람 중 누군가가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 진지하게 얘기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기는 병원에서 낳는 건데… 살기가 어려운가? 위험할 텐데…”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집에서 건강하게 아기를 낳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 얘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결혼을 준비하는 자녀를 둔 세대라면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집에서 아기를 낳고 ‘경사 났다’고 기뻐하던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여러분의 자녀가
어떻게 아기를 낳기를 원하십니까?

과거에 기근이 심하게 들거나, 역병이 돌 때를 제외하곤 출산은 위험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요즈음은 병원에서 아기를 낳지 않으면 위험하다거나 비정상이라고 여깁니다. 생명 탄생은 태초부터하나님께서 부부를 통하여
가족 안에서 대를 이어가도록 마련해주신 은혜인데, 우리는 의사와 병원을 더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두려움 없는 출산을 할 수 있는 은혜가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그래도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첫 아이 낳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둘째부터는 서넛까지도 쉽게 아기를 낳던 때에는 출산은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기를 낳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한 생명을 바라보며 축복하기보다는,
매우 가능성이 적은 질병과 죽음을 바라보며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출산의 축복으로 행복해 하는 이야기보다는,
아기 낳다가 잘못 되거나 고생한 이야기가 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적은 수임에도 그런 이야기들은
방송이나 SNS에 올리기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사람들 안에 있는 두려움을 공명하여 빠르게 전파됩니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불행한 이야기들은 미디어의 위력과 우리 안의 두려움을 타고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아기를 낳는 과정은 위험하다’라고 결론이 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아이를 낳으려면 당연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이상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일 힘든 첫 출산에 성공하고 나면,
그 수고로 인해 그 이후에는 쉽게 낳을 수 있는 기회가 자동으로 주어지고 가족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받는 은혜가 주어지는데,
그런 좋은 것들을 누리지도 못한 채 다 포기하고 삽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분리된 아기는 엄마의 품을 쉽게 잊게 되고, 그렇게 느슨하게 형성된 애착관계는 발달과정에서 결핍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자녀수가 적은 부모는 가족 안에서의 삶보다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각자의 자아성취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삶을 삽니다.
숙제 하듯 경쟁하듯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고 합니다.
형제자매와 또래가 적은 아이들은 친구들과 경쟁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웃은 돌보고 사랑을 나눠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늘 경쟁과 경계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삶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아닐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1987년에 우리나라는 국민 전체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잘 살아보자는 소망 중 하나를 이룬 것이지요.
그 때는 낮아진 병원 문턱 덕에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있어서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수명은 길어졌는데
병의 종류는 더 많아졌고 병원 갈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혹시나 하고
각종 검사를 하면서 병을 찾아내느라 시간과 비용을 많이 씁니다.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건강한 사람이 병 날 것을 걱정합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은 어떤가요? 건강하게 임신하고 출산하려고 그렇게 많은 검사를 받아야 하고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할까요?
산모들은 특히 병원이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곳인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건강하게 스스로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는 산모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고통에 대한 과도한 평가와 잘못된 믿음 때문에
임신하기 전부터 의사와 병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합니다. 잘 지어진 병원이 집보다 더 안전하고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만,
병원과 의사가 자신의 출산을 도와주기보다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필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1995년 이후 12년간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가장 많이 받는 병원에서 ‘아기 받는 일’을 원 없이 했습니다.
매달 6~700여명의 아기가 분만실에서 나와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엄마는 병실에서 두 밤 자고 아기를 찾아가는 그 직장을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아기 낳는 공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많은 아기를 낳아도 거의 대부분의 출산은 수술 등의 전문 치료기법을
훈련받은 전문의가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산모는 사실 병원시설과 의사가 없었어도 간호사나 분만을 돕는 인력의 도움만으로도
잘 낳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적은 수의 산모들만이 약물과 수혈과 제왕절개수술이 필요했고,
일부의 조산아나 힘들게 출산한 아이들만이 중환자실을 필요로 했습니다. 산전관리 중에 합병증이 있거나 전치태반 등의 문제가 있기 전에는
출혈로 위험에 빠지는 산모는 아기를 잘 낳는 산모에 비하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산모와 아기를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있는 환자’로 취급하여 전문의가 모든 출산에 관여하였고,
우리는 늘 긴장된 상태에서 일을 치르듯 분만을 했습니다. 그들의 행복과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과 그들만의 출산 방법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진통실과 병실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느리게 출산이 진행되는 산모를 구분하려는 노력도 없이 대부분의 산모들에게
쉴 틈 없이 촉진제를 사용하였고, 고통스러워하는 산모에게는 무통분만을 권유하며 분만을 재촉하였습니다.
결국 진행이 느리면 ‘제왕절개분만’으로 종결이 되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분만이란 하나하나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일이었습니다.

간혹 건강했던 산모들의 자궁수축력이 떨어져 출혈이 많아 수혈도 많이 하고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이해 할 수 없는 일들도 생겼습니다.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그런 일들을 바라보니 그것이 정상적인 분만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한 의료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병원이란 환경과 관련이 있는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언제나 아기 낳는 것이 원래 위험한 것이기 때문으로,
그리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산모와 아기에게 문제가 있는 걸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빨리 잊기를 바랐습니다.
아기 받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기억들을 빨리 떨쳐버리지 않으면 그 일을 계속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에게 아기 받는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너무 힘들 때는 ‘저주 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거에 산부인과 의사가 돈도 잘 벌고 잘 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기 받는 일은 3D 업종 중 으뜸일 것입니다. 요즈음은 좀 운영이 되는 산부인과가되려면 산부인과 전문의 한사람이
한 달에 40-50명의 아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룻밤에도 두세 번씩 병원에 불러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기 받는 고귀한 일이 거룩한 콜링(calling, 소명)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콜링(calling, 호출)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경제 상황과 환경 때문일까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병원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선택과 관계없이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을
‘분만이라는 위험한 행위’로 먹고 살아야 하는 ‘잘못 선택한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늘 그 일에 대해 원망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2006년부터는 ‘아기 받지 않는 부인과 의사’만 하기로 하고 아기 받는 일로부터 도망을 갔습니다.
생명의 탄생 현장에서 멀어지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행복은커녕 더 힘든 삶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무대와 배우만 바뀌었지 고통의 삶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복귀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기 받기 위해서 더 이상 밤에 출근하지 않으면 운동도 하고
그동안 못 했던 고상한 취미 생활도 하겠다는 다짐도 잊고 ‘매일 한 잔의 술’로 세상에 찌들 때쯤,
2007년 11월 27일 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라고 부르셨습니다(『킹덤빌더』 매거진 2014년 1월호 참조). 자신의 집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고집했던
나탈리의 가정출산은 산부인과 의사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진통 시작부터 출산까지 아무 도구 없이 무기력한 상태에서 산모와 꼬박 같이 하룻밤을 보낸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병원 침대에 묶여 괴롭게 진통을 하고 있는 산모가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의사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진통과 출산을 지켜봐야 했던 시간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나탈리 스스로 호흡과 이완, 진통의 모든 과정을 잘 해냈는데, 당시는 그것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출산을 잘 하는 여인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진통을 지켜보는 내내 아기의 심박동 한 번 확인 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은 마치 총도 없이 전쟁터로 내몰린 군인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루 꼬박 진통을 한 후 나탈리는 그녀의 작은 욕조에서 아기를 낳고 스스로 건져 냈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건져 올린 모세의 이름을 따서 ‘모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계속 자연출산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탄생 과정을 통해서 과거의 두려움과 계속 직면하게 하셨고,
태어나는 아이의 첫 호흡, 그리고 부모가 함께 흘리는 기쁨의 눈물을 통하여 조금씩 제 상한 마음을 치유해주셨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더 아기를 잘 낳는 것은 산부인과의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인에게 주신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는 드디어 예수님께서 제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고, 서구 여인들을 통하여 알려주신
자연출산의 비밀을 이 땅에서 우리 자녀를 낳는 엄마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자연출산센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이라는 것을 개원하던 날 한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태어날 때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를 축복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부인과 의사와 조산사,
그리고 출산을 돕는 사람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출1:20-21

 

오늘날 아무리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약이나 수술기구 그리고 분만대가 없이도 아기를 잘 낳던 산모들까지
지금처럼 모두가 다 똑 같이 병원분만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병원은 한 생명과 여인 그리고 가족을 돌보는 것보다
‘비즈니스에 의해 돌아가는 룰이 있는 거대한 세상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까지도 수가 많았던 조산원이 하나둘 문을 닫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 산모 100명 중 99명이 병원에 가서 병원분만(hospital delivery)을 합니다.
아기와 모성 건강의 지표가 우리나라보다 좋은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 집에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고,
이를 병원과 조산사들이 잘 협력해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너무 빨리 좋은 것들을 버리고
새 것으로 바꿔 버린 것은 아닐까요? 물론 얻은 것도 있겠지만 잃어버린 것도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빠르게 도입된 현대의학은 육체적인 건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건강의 정의에 따르면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까지 안녕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검사의 결과나 의사의 전문성만으로 건강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육체 즉, 하드웨어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건강은 스스로 지키고 믿음에 따라 살 때 얻어지는 총체적 결과물입니다.

‘출산은 질병이 아니다’라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과거에 넉넉지 않던 시절에 아기를 낳던 때와 지금 병원서 아기를 낳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건강한 출산일까요? 감기에 심하게 걸려도 아기 때문에 약도 안 먹고 버티던 산모들이,
아기를 낳을 때는 병원에 가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마약류의 진통제와 자궁수축제에 노출되게 되고,
병으로 수술을 받을 때나 하는 척추마취를 다 받게 됩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약과 의학에 의존하게 될까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출산을 소망하고, 꿈꾼 대로 믿음을 갖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병원 안에서나 집에서나 이러한 출산을 돕는 문화가 생겨야 합니다. 아기를 낳는데 필요한 것들은 그것이 전문성을 갖는
의학이든 아니면 삶의 지혜든 모두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1:7

 

출산은 부부의 사랑으로 인하여 선물로 받은 생명을 낳는,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여성만의 매우 특별한 능력이 표현되는 성(性)적인 일입니다.
누구의 것이 어떻다고 비교할 만한 일이 아닌, 모든 여성과 그 가족이 갖는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생은 했지만 축복을 받아야 할 행복한 축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탄생의 현장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의 능력과 사랑이 우리 가정 안에 넘치도록 제대로 첫 단추를 끼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