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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평안, 짝퉁 평안

진짜 평안, 짝퉁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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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진짜 평안, 짝퉁 평안

 

한양의대 교수 김석현

지난 호에서 우리는 불안, 두려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평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우리 안에 늘 평안이 있으면 바람직한 상태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포인트가 바로 그 평안이“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평안”이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안에는 진짜도 있고, 짝퉁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평안만이 진짜 평안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5:3

 

 

이 말씀에서 멸망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평안이라는 감정 위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안은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평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심리적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억압(repression)’과‘부인(denial)’입니다. 억압은 잠재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고 부인은 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 두 가지 모두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보호적, 방어적 기능을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견디기 힘든 기억이나 환경에서도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되므로 그 마음속에 평안이 유지되게 합니다. 그렇지만그것이 결코 “완벽한 평안”을 주는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평안은 짝퉁입니다.

이런 짝퉁으로부터 평안을 취하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해야 하는 타락한 인간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짝퉁을 진짜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안이 정말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평안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두 가지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기도할 때이고 둘째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분별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던 사람이 마음에 평안이 깃들거나 지속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평안”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평안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적어도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그 부분이 분명해 질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원하신다고 믿어버리려는 경향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기를 원합니다. 늘 그런 태도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도 짝퉁 평안에 속을 수가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때문에 그런 함정에 빠질 수있습니다. 특히 내 삶에서 어떤 돌파가 필요할때, 또 당면한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어떤 도움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현재하고 있는 일보다 더 보수가 나은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하여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일자리를 줄 만한 친척과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부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평안 가운데 잠잠히 있습니다. 그 때 전화해 보고 싶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고 자신과 같이 일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보수도 충분히 주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그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그의 마음에는 평안뿐만 아니라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더큰 평안을 느낍니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그 일을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간증이 될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성숙한 크리스천의 모습이 보일 뿐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아마 그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정말 맞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친구가 같이 하자고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한번 더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앞서 보여준 삶의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틀림없이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짝퉁 평안에 속아서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그 분의 상황에 있었다면 친구의 제안에 대해 내 마음 속에 가득한 평안을 넘어 한 번 더 확인했을까요? 그 평안이 정말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평안인지 확인했을까요? 물론 여러분들도 그 사람처럼 하셨을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렸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고 점검해 보십시다. 그 사람은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친구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것을 느낍니다. 그 때 그 사람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의문을, 아직은 자신 가운데 가득한 평안으로 누르며 그 일을 계속 하기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말원하시는 것이 아닌지 여쭈어 보기로 결정해야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조금씩 깨져가고 있는 마음의 평안을 모른 채 하고 그대로 그 일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응답을 자신의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필요를 이미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이 일을 통해서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이 아닐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통해 그 일을 멈추게 하기를 원하신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문제는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새롭게 부딪힌 문제 앞에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어버리고 그 안에서 평안을 느끼며, 그 평안으로 자신의 필요가 지금이 순간에 채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타의 가능성을 덮어버린 것입니다. 그 평안은 가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바라볼때 그것을 ‘정도와 기간’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유무’를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에 더하여, 평안에 대해서도 그평안이 나를 어디로 향하게 하느냐를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평안이 나를 하나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진짜 평안이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느슨해지도록 하는 평안이라면 그것은 짝퉁 평안입니다.

그런 분별이 우리 삶에서 더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진리를 마음판에 새겨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무한한 사랑으로 세상 끝날 까지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삶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된 나의 요구에 반응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녀된 내가 아버지 하나님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