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과 오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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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왼손과 오른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혹시, 왼손잡이 인가요 오른손잡이 인가요?

만약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빈 종이에다 자신의 이름을 한 번 써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로 한 번 해보세요. 자, 어떠세요? 느낌을 한 번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평소에 쓰지 않던 손이라 불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에너지가 많이 쓰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간단히 이름 석 자 쓰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입니다. 게다가 막상 써놓고 보니 비뚤비뚤해서 글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 결과물이 썩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원래 자기 손잡이로 이름을 한 번 다시 써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엔 어떤 느낌인가요? 아마도 순식간에 써 버렸을 겁니다. 속도도 훨씬 빨랐을 테고 아주 쉽게 썼을 테고 그리고 그렇게 쉽고 빠르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훨씬 보기 좋을 겁니다. 이게 바로 ‘선천적 경향성’의 차이입니다. 누구도 태어날 때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어진 것이지요. 신체적으로 이러한 선천적 경향성이 있는 것처럼 심리적으로도 타고난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런 걸 심리적 ‘기질’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걸 좋아하고 속도도 빠르지만, 또 어떤 이는 뒤쪽에서 머무는 걸 좋아하고 속도도 느립니다. 어떤 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이는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원합니다.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맞는 상황을 만나면 편합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이 편하기 때문에 오른손을 더 많이 쓰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을 오른손만 사용하고 왼손을 방치하게 되면 왼손의 기능은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균형과 조화가 중요해집니다. 칼 융(Carl Jung)이라는 심리학자는 성격의 완성은 완벽함에 있지 않고 균형에 있다고 했습니다. 즉, 오른손만 쓰고 왼손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과 왼손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루 발달시키는 것이 성격 발달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고난 경향성대로만 살 수 있으면 참으로 편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는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내게 너무 불편한 일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타고난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사람처럼 살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타고난 까만 피부가 싫어서 하얀 옷으로 꽁꽁 감싸서 하얀 피부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때로 자기 자신을 못마땅해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신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성형수술을 하는 것처럼, 어떤 이는 자신의 성격이 못마땅해서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닮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자신을 정죄하는 그 판단의 시선은 부모의 시선이거나 사회의 왜곡된 시선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그럼 도대체 기질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질대로 살지 말라는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질대로 살되, 기질대로 살지 말라”가 될 것입니다.

 

먼저, “기질대로 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만드신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러한 모양으로 빚으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모두 같은
모양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의 선배들도 각기 성격이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온유함은 순종의 사람으로 나타났고, 모세의 정확함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바울의 주도성은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빚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수용한 만큼, 딱 그만큼만 다른 사람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다음으로, “기질대로 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 모양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온전했지만 우리가 죄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세상신이 왕 노릇하면서, 우리 안에는 죄성으로 인한 분노, 두려움, 우울, 이기심 등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기 뜻대로, 자기 기질대로, 편한 대로 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본성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을 찾아야 합니다. 내 유형(my type), 네 유형(your type)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유형(Jesus type)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의 말씀으로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3:1-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이제 우리 안에 사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다시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이제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3:8-10

 

그러하기에 그동안 자기 기질대로 수가 틀리면 분내고 두려워하고 우울해하고 이기적으로 대하던 모든 부끄러운 옛 자아의 행위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들
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옛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새로운 본성, 거룩한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가
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행동은 정체성에서 비롯됩니다. 정체성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행동을 바꾸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정체성 변화가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2-15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새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이기에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불만이 있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즉 내 기질과 달라도 상대방을 먼저 용납하고 상대방에게 맞추고 무엇보다 용서해야 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상처와 쓴 뿌리가 용서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을 자주 보게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통치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강을 위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어찌 보면 어렵지만도 않을 수 있습니다. 제 경우를 잠시 말씀드리자면, 어떤 사람이 정말 맘에 들지 않고 미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내 입장에서 보면 욕을 마구해도 마땅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신 만큼 그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볼 때도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때도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쩌면 우리 안에있는 문제들, 우리 사이에 있는 문제들이 더 이상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속에 우리를 괴롭히는 고민과 미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이 주장하시기를 기도해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님의 사랑
우리를 처소 삼으신 성령님의 사랑
감사합니다.
나도 하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