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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요리의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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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요리의 레시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여러분 지금 잠깐,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쉰 후에 꾹 참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참으셨나요? 아마 사람마다 숨을 참을 수 있는 정도는 다를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길게 참든 짧게 참든 모든 사람이 끝까지 숨을 참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다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지요. 어쩌면 오래 참았던 만큼 더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분노가 아마 이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깊이 들이마신 숨을 무한정 참을 수 없는 것처럼 화도 무한정 억누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억눌렸던 화는 조만간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퍼붓고 나면 우리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분노의 파도는 어김없이 다시금 밀려옵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나의 삶과 재산을 다 바쳐 행복하게 해주려고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엄청난 폭언을 쏟아내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몹쓸 말을 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들에게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그런 말들을 퍼붓고 그런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이처럼, 분노감정은 쫓아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노를 덮어놓고 억누르기보다는 건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심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겉으로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것은 호의가 아니라 위선입니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시38:8

 

분노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무작정 화가 나는 대로 퍼부으라는 것이 아니라 격한 감정의 기세를 완화시키고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분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마음 상함’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피터 베마이어(Peter Wehmeier)는 마음 상함을 세단계로 이야기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마음을 심하게 다치고 충격을 받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이 상한 상태이고 세 번째는 상한 마음을 추스르는 단계입니다. 그럼, 한 단계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단계인 마음을 심하게 다치는 단계는, 사실 사건이 일어난 직후로, 대략 처음 한 시간 가량은 마음을 심하게 다친 상태여서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거나 또는 정반대로 무력감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때는 사고기능이 매우 떨어지게 됩니다.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머리나 심장과 배에 이상 현상이 감지되거나 실제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 상태에서는 심리적 에너지가 매우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아직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방향이 명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2단계는 마음이 상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마음이 상한 사람이 인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분노, 화, 절망, 또는 실망 등입니다. 사실 이 때 느끼는 분노의 이면에는 버림받거나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노는 거부당할 것에 대해 겁내는 마음이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정서는 다층적이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정서 그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정서를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초보 상담자일 때는 상담을 하면서 만난 우울한 사람들이 그저 무기력하기 만 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점점 깨닫게 된 것은 우울한 사람들의 우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분노가 숨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우울한 사람을 그저 힘없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버럭버럭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서 에너지 레벨이 높고 두려울 게 없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칠 것 없어 보이는 분노 이면에는 그만큼의 커다란 두려움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하튼,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화가 나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누워도 잠도 오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수도 없이 떠올립니다. 정작 상처를 준 그 사람에게 가서 직접 따지거나 또는 차라리 내가 양보해 버리고 깨끗이 잊어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택하게 되는 것은 접촉을 피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주로 다음과 같은 비합리적 신념들이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게 됩니다.항상(“넌 언제나 그랬어”, “넌 항상 네 생각만 했어”), 모든 것(“이제 다 끝나버렸어”, “앞으로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거야”), 절대 다시는(“다시는 널 안 볼 거야”, “다시는 말 하나 봐라”) 몽땅(“다 망가져버렸어”, “끝장났어”, “다 없애버릴 거야”) 등 극단성을 띠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단계에 머물러 있을 위험성이 꽤 높습니다.

 

3단계는 상한 마음을 추스르는 단계인데, 이때 필요한 시간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또 소화하는 방법도 사람들마다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틀어박혀 잠을 자야 풀리고 또 어떤 사람은 밖으로 나가야 풀립니다. 상담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혼자 있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혼자 산책이나 운동을 하거나 해서 일단 그 일이나 그 사람에게서 잠시 떠나고 거리를 두어야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여성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마음 상한 그 일에 대해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하거나 그게 안 되면 그냥 울어버리기거나 그것도 안 되면 욕이라도 실컷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대청소를 한다든지 유리창을 닦는 다든지 하면서 자기 몸을 힘들게 만들어서 지치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이러한 마음 상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것이나 자기 마음을 상한 사람이나 양쪽 모두 다 놀라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 다 어안이 벙벙해지고 깜짝 놀라고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이 왜 그렇게 화를 벌컥 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이해받지 못하고 갑작스런 공격을 당했다고 느낍니다. 그런가 하면 상처를 받은 사람은 순간적으로 너무 크게 마음을 다쳐서 모욕을 당하고 박대당하고 거부당했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프게 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이나 양쪽 다 서로를 비방하고 원한과 거부감에 차서 서로를 대합니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친밀감과 일치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관계가 너무나도 순식간에 돌변해버려서 상대방이 지금까지 내가 알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 전혀 다른 친구, 다른 배우자가 된 것 같이 느끼게 됩니다. 이제 이러한 충격 상태가 되면 관계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부정하고 밖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상한 마음을 드러냈다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는 마음이 상한 것, 즉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이렇게 마음 상함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에 대항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동안 모든 것의 출발이 “나는…”, “내 생각에는…”이었다면 나에게 사로잡힌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가…”로 주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어찌 생각하시는지… 사실 예수님은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몹쓸 사람이라고 미워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피 흘리셨다는 것을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를 어찌 생각하시는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내 문제를 보게 될 때 상황을 새롭게 보면서 그 상황에 처한 나의 모습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의해낼 힘을 얻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상담자(counselor)이십니다. 그동안은 마음을 다친 것에만 골몰하던 데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차츰 나아가게 됩니다. ‘내가 바라보는 그 사람, 그 상황’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바라보는 그 사람, 그 상황’으로 관점이 바뀌게 되면, 상대방의 모습도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내 눈에 영락없이 타고난 악당으로 비쳤던 그 사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었던 그 사람, 가혹한 벌을 받아야 마땅한 단 한 사람의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다르게 보이기시작합니다. 감정적으로 그렇게 격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상대방이 나에게 가한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예민한 기질도 한몫을 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면서 해결책을 나에게서 찾아볼 여지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

 

다음으로 마음 상함에 대처하는 두 번째는 관계를 끊는 대신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끊고 안전선 뒤로 물러나서 복수할 방법을 궁리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상황에 대한통제력을 되찾으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계를 끊어버리면 오히려 현재 겪는 마음 상함을 극복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단절하고 회피해 버리면, 마음이 상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어서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에 계속 매여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완전히 털어버릴 수 없는 관계인 가족이나 직장 내에서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마음이 상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다양한 행동을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떫은 감씹은 표정을 한다거나 경멸로 가득 찬 표정을 짓기도 하고 비웃음 섞인 말로 우월감을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난할 수도 있고 아주 쌀쌀한 표정으로 무시하고 지나가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마음이 상한 사람과 건설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를 풀어나가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비유적으로 보자면, 탱크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몸을 숨긴 채 사격 구멍을 통해 총을 쏘아대는 사람을 당해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은 관계를 끊는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웬(M. Bowen) 가족치료의 주요개념 중에 정서적 단절(emotional cut-off)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먼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접촉을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분화나 독립과는 다르게 오히려 미해결된 융합에 대한 과장된 독립의 표현일 뿐입니다. 이러한 과도한 단절이 아니라 적절하게 거리를 둔다는 것은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이 상한 상황으로부터 내외면적으로 잠시 물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힘이 들어서 이 상황과 관계를 잠시 떠나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즉, 거리를 둔다는 것은 맥락에서 잠시 물러나는 것,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는 것,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감정을 적당한 수준으로 축소시키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마음 상함에 대처하는 세 번째는 자기 고유의 심리적 주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마음 상함이라는 현재 사건 뒤에는 그 이전의 원초적인 마음 상함, 다시 말해 어릴 때 경험한 퇴짜, 거부, 무서운 충격과 같은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마음 상함이 계기가 되어서 그것과 결부되어 있던 내사와 불안, 채워지지 않는 욕구 등이 되살아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기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주제를 알아두는 것도 현재의 마음 상함은 물론 과거의 근원적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각자 자기만의 마음 상함의 거리를 확실히 짚어낼 때까지 우리는 똑같은 유형의 상황에서 거듭해서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마치 백설 공주가 목에 걸렸던 사과조각이 튀어나와서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도 소화시키지 못한 내사를 뱉어 내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2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이자 킹덤빌더로서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작업은 일반적인 상담심리학과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상담심리학은 모든 것의 출발이 ‘나’에게 있고 모든 것의 중심에도
‘나’가 있지만, 우리의 출발은 세상 신에 의해 형성된 ‘옛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 사람, 새로운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3-24

 

이제 우리는 마음이 상할 때 옛사람의 습관을 따라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맞딱뜨려 마음 상함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분노의 상처에서 용서의 꽃을 피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유 월절 어린양의 피로 새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이제, 우리는 그 분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할렐루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4:18
(위의 내용은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내용을 일부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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