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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10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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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장. 신유사역에 대한 성경·신학적 견해

 

4. 신유에 대한 번영복음과 하나님나라 복음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함으로 일어나는 우리의 구원에는 죄, 저주, 질병, 가난, 마귀의 묶임, 영원한 죽음 이 모두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하고 있다.

– 죄로부터의 구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저주로부터의 구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3
-마귀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2:15

In this way, he disarmed the spiritual rulers and authorities. He shamed them publically by his victory over them on the cross.
–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우리의 구원은 패키지이지, 이것들 중 어느 하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구원의 의미로 사용되는 ‘소조’(sozo: to heal, to save, to make whole, to deliver)의 뜻에서도 알 수 있다.

 

2) 십자가와 나

흔히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가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았고, 이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그분이 약속하시고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고, 마침내 영생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죄를 짓든지 우리가 주님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신 그분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복음의 진리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진리의 일부분일 뿐이지 복음의 진리 전부는 아니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에만 익숙해진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왜곡된 복음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주님께 회개하면 언제든지 항상 주님이 용서해 주신다면, 그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더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죄를 더 지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이미 죽었는데, 이미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그 죄 안에서 계속 죄를 더 지으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십자가는 단지 우리가 지은 죄의 속죄뿐만 아니라 죄를 지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이 말은 예수님은 단지 우리가 지은 죄만을 사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죄지은 우리(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뜻이다. 할렐루야!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계속 사해 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아담 이후전적으로 타락하고 완전히 부패한 존재이다. 한마디로 구제불능인 것이다. 죄인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죄사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여 죽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놀랍게도 자신의 죽음 없이(자신의 구원받음 없이) 단지 자신이 지은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거나 죄사함만을 받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죄가 죽는 곳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에 대해서 죽기 위해서는 당신이 죽어야 한다. 즉, 다른 말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곳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나타내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롬6:4-7

 

복음이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신 그 십자가를 단지 믿는 것만이 아니라, 내 육체의 생명(자존자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의 육체에 기초한 모든 삶의 태도)을 포기하고 그 십자가에 동참함으로(죽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의 삶이 아니라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우리를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주는(changing)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exchanging). 그 일은 그 무엇도 아닌 죽음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바로 죄, 저주, 질병, 마귀의 묶임, 영원한 죽음, 가난 등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2)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이 행하신 일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를 누린다고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는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분을 단지 내 관념으로 믿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부활, 승천하시고 내 안에 오셔서, 그분이 그분의 삶을 사실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모든 일들의 주체는 그분이시지 우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A라는 사람에게 1억 원을 빌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A는 채권자이고 나는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이다. 지금 나에게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 그런데 B라는 사람이 내가 빌린 돈 1억 원을 A에게 주었다. 그럴 때 만약 내가 A에게 “내가 빌린 돈을 B가 당신에게 주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채무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A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 돈 액수는 맞지만 그것은 B가 나에게 준 것이지, 당신이 나에게 준 것이 아니잖으냐? 그러니 그 돈이 B가 당신을 위해서 나에게 준 것임을 증명해 보라!”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나는 B가 당신에게 1억 원을 준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더 이상 돈을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는 “나는 B가 나를 대신해서 당신에게 1억 원을 준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B가 A에게 나를 위해서 1억 원을 준 것이라고 증명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잘못 믿고 있는 복음을 비유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왜곡된 복음에 속고 있다. 즉,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따라서 우리는 오직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는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라는 형통복음일 뿐이다.

지금 마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를 위해서 죽으신 것은 진리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분의 죽음이 당신을 위한 것인지를증명해 보라!”고 말이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여러분은 어떻게 이것을 증명할 것인가? “나는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이야기일 뿐이다. 진실은 예수님이 당신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당신의 주인이 되셔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대신하여 “내가 죄와 저주를 받은 것은 이 자녀를 위해서 갚은 것이야!”라고 마귀에게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마귀에게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바란다. “이 자녀의 모든 죄와 저주, 질병, 문제를 내가 대신 진거야. 너는 이 자녀에게 아무런 권세도 영향력도 미치지 못해! 이 자녀는 자유해!” 여러분이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순간, 죄와 저주와 질병이 여러분으로부터 떠나가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부여해 주신 십자가의 지위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만이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이제 단순한 객관적인 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실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나의 옛사람은 항상 십자가의 죽음에 머물러 있게 하고,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새롭게 된 내가 주님과 연합하여, 언행은 물론 내 육신의 모든 삶에 그분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전적으로 아버지를 의지하고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하신 예수님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삶을 살 때는 나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내 이름이다. 이름에는 인격이 있고, 그인격에는 그 인격에 해당하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며,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에 그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은혜의 삶이란 바로 그분의 죽으심 위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말한다.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8:17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다. 우리가 질병의 치유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친히 담당하신 그분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며, 나의 삶이 아니라 그분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을 살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질병아. 떠나갈지어다!

 


Ⅰ장. 신유사역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
Ⅱ장. 신유사역에 대한 성경·신학적 견해

1. 신유에 대한 부정적 견해
2. 신유에 대한 기적종식론과 은사중지론에 대한 이해
3. 신유의 성경적 근거
4.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신유
5. 신유에 대한 번영복음과 하나님나라 복음
6.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의 신유
7. 치유사역과 하나님의 역사만을 좇는 것이 옳은 일일까

Ⅲ장. 신유와 치유
Ⅳ장. 성경적 신유사역
Ⅴ장. 신유사역의 분석
Ⅵ장. 하나님 자녀 관점에서의 치유
Ⅶ장. 신유사역의 실제
2014년 3월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HTM 지상세미나」 섹션에서는 손기철 장로의 저서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두란노)에
소개된 치유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그동안 「월요말씀치유집회」, 「치유사역자 스쿨」, 「치유세미나」, HTM 뉴스레터 『헤븐리터치』의 「신
유」 섹션 등을 통해 듣고 보고 배웠던 신유와 관련된 방대한 내용들이 총망라될 것입니다. 신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
했음을 증거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모든 독자들의 열독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