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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뜨기 전

아침에 눈뜨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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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킹덤빌더다

 

 

 

박승철

c factory 대표
「킹덤빌더스쿨」7기수료
서울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출강

 

 

 


 

아침에 눈 뜨기 전 내 입술이 먼저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입니다!’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말인지 모른다. 충남 금산이 고향인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을 체험하며 누구보다도 더은사받기에 욕심을 부렸다. 새벽예배와 말씀이 송이꿀 보다 달게 느껴져 성경책의 옆면이 손 때로 지저분해진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교회 학생회장과 봉사활동, 전도 등 주님과 뜨겁고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며 중고등부를 거쳐 대학에 입학했다. 오랫동안 내 의지와 열정으로 버텨왔던 몸과 영혼은 교회일로 많이 지쳐 있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갈망함 마저 바닥까지 드러났다. 광고디자인을 전공하며 대학생활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어느새 세상 친구들과 다를 게 전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술과 나이트클럽, 담배를 즐기게 됐고, 예배 빠지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던 내가 주일성수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캄캄한 상태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의 시간을 보내다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생활 하던 중, 그래도 주일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지금 다니는 명륜동의 명광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한 자매의 권유로 여름휴가 때 거제도에서 열린 성결청년연합회 농촌 봉사활동에 참석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갈팡질팡하던 나를 만지기 시작하셨다. 농촌의 믿지않던 어르신들이 청년들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접하는 모습을 볼 때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었고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유했던 그 자매다. 예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거제도 봉사활동을 하며 더 깊이 알게 된 자매의 모습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교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TV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자매의 아버님의 극심한 반대가 내게 일어났다. 수석 장로님이셨던 아버님은 나의 직업(잡지디자이너)에서부터 출신학교, 시골에서 자란 환경 등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더구나 자매가 나에게 마음 문을 열기도 전인지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었다.

나는 자매에게 같이 기도해보자고 제안했고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눈물로 시작했다. 하지만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너무나 절박한 마음에 3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자매는 서서히 나에 대한 마음이 열렸지만 아버님의 마음은 전혀변화가 없으셨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주님의 은혜로 4개월 뒤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준비의 모든 과정은 살얼음판과 같았다. 아버님께서는 상견례 장소에 참석을 거부하시고, 결혼식장에 가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진행시키셨고 만삭되지 못해 태어난 아이 같은 나에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우리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 생각하던 중 특별히 주시는 마음이 선교사님들에 대한 재정적 후원이었다. 선교의 ‘선’자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막연히 주시는 생각을 조금씩 구체화하며 나아갔다. 매월 10만 원씩 선교헌금으로 드리고 매해 두 배로 늘리기로 작정하고 지금까지 동일한 마음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2녀2남의 네 자녀를 선물로 받았다. 첫째(12살)가 딸이고, 가운데(7살, 5살)가 아들 둘, 그리고 막내(4살)입니다. 막내 보은이가 9개월이 되었을 때우리 가정에 큰 변화의 사건이 일어났다. 아내가 출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집회가 있다고 하며 월요말씀치유집회를 이야기했다. 순간 중고등부 때 은사에 대한 사모함으로 축사나 신유, 성령부흥회에 많이 참석하며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는 교만함과 그런 집회에 가서 이상한 신비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았던 터라 한마디로 반대하며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계속된 아내의 부탁으로 딱 한번 만 참석한다고 투덜거리며 따라 나섰다.

처음 집회에 참석한 날, 어디 한마디라도 성경에 어긋난 게 있으면 바로 나오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손 장로님 말씀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오직 복음만이 선포되고 매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는 참 예배와 치유의 능력이 나타남을 볼 때 놀라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한편으로는 ‘짜고 하는 거 아냐’하는 유치한 의심이 올라왔다. 이렇게 헤븐리터치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고, 다음 주에는 내가 먼저 아내에게 한 번 더 가보자고 제안했다. 두 번째 집회 때에 손 장로님을 통해 나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껏 내가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음을 분명히알게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롬3:23-24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킹덤 빌더인 내 삶의 사명이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혜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18-19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는 놀라운 복음이 내 삶전체를 송두리째 바뀌게 하신 것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가야 미디어’라는 잡지사로 세계 유수의 라이선스 잡지를 출판하는 곳이다. 그 중에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의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 헤븐리터치 센터가 있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랍고 반갑던지 점심식사 때 마다 근처를 한 번 돌아보곤 했다.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회사 마감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하지 못하다가 마침내「킹덤빌더스쿨」7기로 참여하게 되었다.

세미나의 첫 시간부터 들려지는 복음이 어찌나새롭고 귀한 말씀인지, 또 마음만 먹으면 손 장로님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수있고 이런 분과 동시대를 살아가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점심 식사 후 다시 수업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스텝 한 분이 나에게 와서 집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며 나오라고 하셨다.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음소리와 섞여 흘러나왔다. 둘째 준서가 온 몸이 움직이지 않고 의식도 흐릿하다는 말이었다. 내가 세미나에 참석한 토요일 오후는 아내에게는 전쟁터와 같았다. 넷째를 등에 업고 셋째를 손으로 달래는데 둘째가 누워서 칭얼대니까 엉덩이를 발로 살짝 건드렸는데 그다음부터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택시를 타고 가는 30분이 3시간처럼 느껴졌다. 계속해서 내 입술에서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었다. 처음에는다급하고 초조하던 마음속에 점차 평안이 찾아왔고 하나님께서 아무 일 없이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집에 도착하니 둘째 아이는 마루에 힘없이 누워 있었고 아내는 얼굴이 눈물로얼룩져 넋 나간 사람 마냥 막내를 업고 기도하고있었다. 둘째 아이를 무릎에 올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아들 박준서 온전케 될지어다. 완전히 회복될지어다!’그리고 얼마 후 아이가 손을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도 돌리고 눈동자도 또렷해졌다. ‘아버지, 감사합니다!’휴~

너무 놀란 아내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잠시 아내를 진정시키며 내가 은혜의 자리에 나가니까 원수의 방해가 장난이 아니라며 웃으며 말하고 다시 HTM센터로 돌아와 기름부으심 기도를 받았다. 내가 전화를 받고 나간 후 헤븐리터치 스텝들도 우리 아이를 위해 중보기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잘 알겠지만 한 순간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으면 우리의 삶과 주변에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들이 널려있는지 알 것이다. 둘째아이 사건 후 마귀는 아이들을 향해 또 공격해 왔다. 회사에서 한창 마감중이던 저녁 무렵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지금 막내를 데리고 응급실로 가고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아이 넷을 키웠지만 응급실에 간 적은 거의 없었다. 남자아이 둘을 위해 이층침대를 사 주었는데 막내가 한창 기어 다니기 시작해서 미끄럼틀을 타고 이층으로 올라간 후 난간에 기대어 놀다가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침대의 높이는 약 1m 50cm 이상 되었고 그 높은 곳에서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은 마룻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총알처럼 달려 나갔다. 골목을 뛰어 내려가다가 앞에 주차된 차의 문이 갑자기 열리는 바람에 내 몸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엉덩이부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다행이 아무 탈이 없어서 상대방에게 괜찮다고 말하고는 바로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막내는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눈동자의 초점을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의식도 약하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너무나 응급한 상황이라 그 복잡한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서 바로 CT 촬영을 하게되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장차 하나님의 군대로 성장 할 아이들입니다. 특별히 보은이는 보혈의 은혜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살려주세요!’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수요일이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많은 분들도 우리 아이를 위해 함께 중보기도 해 주셨다. 촬영을 기다리던 도중 의사가 다시 진료를 하였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섣불리 CT 촬영을 하면 많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성장했을 때 암 발병률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소견을 말했다. 12시간 경과 후 이상 징후가 보인다면 그때 CT 촬영을 하자고 했다. 다행히 막내는 의식도 돌아오고 몸도 자유로워지고 특별한이상이 없었다. 아이는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신기하게 머리에 부딪힌 흔적도 없었고 온몸을 살펴보아도 멍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차 문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어느 곳 하나 다치지 않았고, 막내도 그 후로 더 이상 아픈 곳이나 이상한 징후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와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체험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때의 상황은 정말이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다.

그 후 성령세미나를 통해 성령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고, 내가 킹덤 빌더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재정을 흘려보내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쓰임 받는 방법을 알게 하셨다. 또 내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고 더 큰 기름부으심으로 나를 통해 주변에 선한 영향력과 기름부으심이 흘러가게 됨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던 중 작년 5월에 회사를 그만두고‘c factory’라는 편집디자인 회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2년 전부터 가정의 기도제목으로 사업의 윤곽이 드러나기를 기도는 했지만 아무 준비 없이불과 15일 만에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중앙일보 계열사인 제이콘텐트리에서 이탈리아 남성지를 창간하는데 나에게 개인 신분으로PT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세곳의 디자인 회사와 경쟁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디자인 시안과 제안서를 만들고 발표준비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해야했다. 회사의 업무가 끝나고 매일 새벽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을 나에게 붙여주시리라는 믿음을 마음에 심으며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믿음으로 취했던 말씀을 붙잡고 즐겁게 준비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수14:11-12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부터 나에게 이 일을 준비시키고 계셨다. 두 달전 지인의 소개로 서울예술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에게 두 시간 동안 특강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130여명의 학생들에게 디자이너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었다. 그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PT를 진행했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차별된 접근방식을 좋게 평가해 주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회사인‘c factory’가 세워졌다.

‘c factory’는 디자이너 4명의 작은 회사로 이제 갓 1년이 지났다. 나는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며 기도한다. ‘하나님의 회사에 오늘도 출근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 머리위에 영광으로 임하소서. 내가 서있는 바로 이곳이 선교지이자 사역지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킹덤 빌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군사로 온전히 서게 하옵소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3

 

 

4년 전 부목사님께서 개척교회로 떠나며 맡고계시던 단기선교팀 리더의 자리를 내가 섬기게 되었다. 그때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아웃리치를 떠난다. 두 달여간의 준비기간은 아이들이나 우리 부부에게 깊은 연단의 시간이다. 하지만 보내신 곳에서 해마다 부어 주시는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는 이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하신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가족 모두가 집근처인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캔 커피를 나누며 예수님 사랑을 흘려보낸다. 명동의 김길 목사님의 사역을 듣고 시작한 일이 두 해가 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주일 낮 예배 후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이 일본에서 중학교 때 했다는 노방전도를 듣고 ‘어린 나이에도 복음을 전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주님께 너무나 부끄러워서 시작하게 되었다.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매주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나를 위축시킨다. 술 취한 사람이 달려들기도하고 뒤에서 조롱하는 소리가 들릴 때면 ‘아, 예수님 내가 제대로 가고 있군요.’하며 기쁨으로 기도한다.

올해로 매달 열 세 곳의 선교지로 재정을 흘려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소망은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생활터전을 제공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나 재정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심을 믿음으로 심는다. 이 계획을 나와 아내를 통해서 이루실지, 아니면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 이루실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손기철 장로님을 통해 막대기 같은 나에게 다시 복음으로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을 마시게하셨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내가 세상 끝에 거할지라도 독수리 날개 치는 새 힘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