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킹덤라이프 킹덤라이프 상담 아주 작은 차이, 그러나 큰 차이
아주 작은 차이, 그러나 큰 차이

아주 작은 차이, 그러나 큰 차이

370
0

KINGDOM LIFE &
상담
아주 작은 차이, 그러나 큰 차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내가 아는 두 남자가 있다. 나는 그 두 남자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남자 A 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사람은 노래방에만 가면 노래 제목 책을 펼칠 것도 없이 자기가 즐겨 부르 는 노래의 번호를 바로 누른다.
이 사람이 즐겨 부 르는 노래는 우리나라 최초의 댄스가수(?)라고 할 수 있는 박남정의 ‘널 그리며’라는 노래이다
(이 노 래 제목을 보며 머리를 끄덕이는 분은 연령대가 아마도 나와 비슷할 듯하다^^).
이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쓰러져 버린다.
왜냐하면, 해도 해도 어쩜 그렇게 노래를 못하는지 노래와 춤을 따라하느라고 나름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맞는 건 가사 하나 밖에 없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이 사람이 노래만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뒹굴게 된다.
자, 그럼 또 다른 남자 B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사람은 노래방에 가면 주로 발라드풍의 노래를 부 른다.
왜 사람마다 즐겨 부르는 레파토리가 있듯 이 이 사람은 주로 조용하게 전개되다가 클라이맥 스 부분에 고음이 나오는 그런 노래를 주로 불렀 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노래를 시작 하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심조심 잘 부르다가 결 국에는 고음이 나오는 뒷부분에 가서는
일명 ‘삑사 리(네이버 국어사전: 노래 또는 말하는 중 목소리 의 옥타브가 자신도 모르게 순식간에 올라가버리 는 현상)’를 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모두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서로 눈치를 보며 불편해 하 게 된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노래를 마치게 되면 다들 “휴~”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 두 남자의 공통점은 둘 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 이다. 그런데 이 두 남자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남자 A는, 친구들이 노래방 갈 일이 있을 때 마다 꼭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
만약 남자 A가 잠을 자고 있으면 억지로 깨 워서라도 가자고 하고, 돈 없다고 안 간다고 하면 대신 돈 내줄테니 제발 같이 놀자고 한다.
하지만 남자 B는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두 남자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객관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남자 B가 노래는 훨씬 잘 하는데 왜 사람들은 남자 A와는 같이 놀고 싶 어 하면서도 남자 B는 피하는 것일까?
나는 이 두 남자를 관찰하면서 두 사람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남자 A는 주변 친구들이 “야, 너 노래 를 어쩜 그렇게도 못하니?”라고 놀려대면,
이 사 람은 “야, 노래 좀 못하면 어떠냐, 그냥 신나게 놀 면 되는 거지!”라고 하면서 정말 신나게 논다.
그 런데 남자 B에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 사람의 노래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자기도 알고 우리도 안다.
노래 못 한다는 것을. 다만, 모두가 쉬쉬하며 말을 꺼내지 않을 뿐이다.
자, 그럼 남자 A와 B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남자 A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사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 A가 주는 편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 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자신이 노래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이 놀려도 편안하 게 받아넘기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존 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 B는 자신의 단 점을 숨기려고만 한다. 참으로 재미있게도 자기의 단점을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그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일상의 사소한 예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하필이면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이마 한가운데 뾰루지가 났다고 하자.
그럴 때면 뾰루지를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으로 덮기도 하고 또 손을 올려 감추려고 한다. 그럴 때 우리 행동은 무척 부자연스러워진다.
자꾸만 이마에 손을 올리는 행동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이마를 더 주목하게 만들고 뾰루지를 더 잘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남의 얼굴에 그리 큰 관심이 없다(모두들 자기 얼굴에 관심 쏟느라 남의 얼굴 볼 겨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단점이 더 두드러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심리적 원리 하나는, ‘사람들은 내가 나를 받아들인 만큼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즉, 내가 나를 수용한 만큼 상대방도 나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 A는 자신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주변 사람들도 이 사람의 단점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반면 남자 B는 자신의 단점을 숨기려고 애를 썼기에, 이 사람이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은 단점을 주변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아무런 단점도 없는 완벽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점이 있지만 그것을 편안하게 여기며 있는 그대로 내어 놓는 사람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자신의 단점을 이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내어 놓을 수 있다면 나의 단점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자 A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미있는 사람, 유머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결국 그 유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나온다.
못생긴 얼굴로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잘 생긴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쓴다면 어떨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감추려고 애를 쓸 때, 심리적 에너지가 상당량 소모되게 된다.
어떤 것을 감추거나 억압하는데 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면 자투리 에너지로 나머지 일들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여유가 없게 되고 주변 환경이나 상대방을 살필 수 있는 여력이 남지 않게 된다.
에너지가 온통 자기 자신에게 묶여서 자신의 단점을 감추는데 소진되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32:3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시38:8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무언가를 감추려고 할 때 우리는 긴장하게 되고 적절하게 행동할 수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상담을 통해서 내담자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자기 수용’이다.
상담을 통해서 내담자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되면 그 상담은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왜 그렇게도 어려운지…….
우리가 무언가를 감추려하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나의 약함이나 단점이 드러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거나 거절할까봐 두렵기 때문에, 사랑받고 용납 받고 싶어서 애쓰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약점 때문에 배척당하거나 미움 받았던 경험이 너무나 쓰라리게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싶을 때 더 잘 보이고 싶어서 자신의 모자란 점을 감추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러한 노력조차도 무색하게 만든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모든 애씀과 방어를 무너뜨리고 마음의 빗장을 열게 만든다.
크리스천들은 아마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런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시며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고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수치를 가렸을 때에도 우리에게 가죽옷을 해서 입히신 분이시며,
죄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막혔을 때 자신이 생명을 버려 그 길이 되어 주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사랑을 체험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두려움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사랑에 의지하여 두려움을 떨치고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죄를 내어 놓았을 때,
더 이상 하나님께 감추는 것이 없을 때의 그 평안함이 주는 자유를 느껴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걸릴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 내가 더 이상 뭔가를 감추고 내어놓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평강을 느끼고 즐거워하게 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4:18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소망이 생긴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어떠함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나의 어떠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8:35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하나님의 사랑,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거절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해질 때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상황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결론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