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고 일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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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딛고 일어서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한 때, 나는 우리 사회와 기독교계에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을 초청한 강연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했다.
우연히 어떤 영상을 틀었는데,
어째 강연자의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화면이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는 젊은 여성인데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사람들 앞에 강연자로 섰을까?” 그 분의 강연을 듣고 난 후,
난 바로 그분의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 씨는 화목한 집안에서 유명 대학을 다니던 예쁜 여대생이었다.
그런데 귀가하던 길에 음주운전자가 낸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어 의사들마저 치료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지선 씨는 7개월간의 입원, 3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과 재활치료를 이겨내고 코와 이마와 볼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살아났지만 예전의 그 고운 얼굴의 여대생은 없고 온몸에 화상의 흔적이 뚜렷이 남은 추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이지선 씨는 ‘삶은 선물’이란다.
이지선 씨의 강연을 들으면서 저 정도 사연이면 나름 신파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지선 씨의 목소리와 표정은 너무나 밝고 환했다.
강연 내내 시종일관 청중들을 웃겼다. 그 사람 자신이 밝고 맑아서 듣는 이들도 너무나 편안하게 웃게 된다.

강연이 끝나갈 무렵,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미스코리아 이지선이 나올 테니 자신과 혼동하지 말란다.
궁금해서 강연이 끝나고 바로 이지선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동명이인의 이지선이 먼저 나왔는데 미스코리아인 만큼 외모와 몸매가 정말 훌륭했다.

그런데 그 외모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아무런 감동도 없었다.
오히려, 얼굴이 괴물 같은 이지선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일그러진 이지선의 얼굴이 오히려 더 예뻤다.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는 궁금해졌다. 이지선 씨는 어떻게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러한 고통을 딛고 일어설 수있었을까?
왜 어떤 사람은 고통 앞에서 주저앉아버리고 왜 또 어떤 사람은 다시 우뚝 설 수 있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심리학에서는 부정적 사건을 겪었을 때 남들보다빠르게 효과적으로 평소 상태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특성을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탄력성이란, 개인이 스트레스 상황으로부회복하여 스트레스 이전의 적응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이나 능력으로서,
변화된 상황적 요구에 대해, 특히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상황에 마주했을 때 경직되기 보다는 유연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말한다.
최근에는 긍정심리학의 영향으로, 외상(트라우마, trauma)과 상실 등의 위협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을 겪은 후에 오히려 성장하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일컫는말로 ‘상실과 역경을 통한 성장(GTLA: Growth Through Loss and Advers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들과 같이 여러 가지 위험요인에 노출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부정적인 정신 건강 상태로 진행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방법들이 연구의 관심이되고 있다.
삶에서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적응해나간다는 연구결과,
또한 실패나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잘 기능하며,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사람보다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게 된다는 연구들, 아동기 성학대,
강간 및 성폭력 등을 겪은 피해자들이 외상을 경험한 이후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지니게 될 경우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 등이 발표되고 있다.

성경은 온통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브라함, 모세, 야곱, 기드온, 다윗, 바울, 베드로….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우리에게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날 모델이 있다. 그것도 너무 많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그렇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정도 인생을 겪은 사람들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통이 주는 선물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또 다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고통을 겪은 후에 어떤 이는 그 고통이 독이 되어 쓰디쓴 삶을 살게 되고, 또 어떤 이는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해 오히려 보석같이 빛나게 된다는 것을.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9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신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139:1

 

우리는 부모로부터 태어났지만, 우리의 생명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139:13-14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이미 보셨고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셨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139:16

 

하나님은 해변의 모래보다도 더 많이 우리를 생각하신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139:17-18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오랫동안 생각하셨다. 그렇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통에 눌러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룻밤의 산물이 아니다.
1년의 결과도 아니며 10년의 결과도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91:14

 

그렇기에 삶의 여정에서 원하지 않는 때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고 어떤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참된 지식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야 한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눅6:4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29:11

 

고통의 한 가운데서 오히려 고통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럴 수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