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영혼

사랑과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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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힐링시네마
사랑화 영혼 Ghost

 

작가 이애경

 

1990년 개봉되어 데미 무어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영화 <사랑과 영혼>. 죽음을 뛰어넘는 한 커플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데미 무어를 백허그 한 채 물레질하는 두 사람의 로맨틱한 장면은 ‘Unchained melody’라는 곡과 함께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물론 이 영화의 구성과 등장인물은 복음적이지 못하고 뉴에이지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서 마음 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사랑, 특히 성령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샘(패트릭 스웨이지)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비즈니스맨이자, 도예가인 몰리(데미 무어)의 연인이기도 하다. 한 눈에도 아름답고 잘 어울리는 이 커플은 맨해튼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모든 삶이 순조롭게 돌아간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 샘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는데, 그 시작은 샘의 은행구좌에 턱없이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였다.

새로운 집에서 함께 동거를 시작하며 안정을 찾은 몰리는,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샘에게 결혼을 하자고 한다. 망설이는 샘에게 몰리는 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몰리는 샘으로부터 ‘동감’이라는 대답만 듣는다. 뉴욕 뒷골목 어디선가 이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갑자기 괴한이 샘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필사적으로 싸우던 샘은 안타깝게도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그리고 현장에서 사망한 샘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다.

샘이 하늘에서 환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던 중, 자기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몰리를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되고,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진다. 샘은 그날 이후부터 계속 몰리 옆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샘의 친구 칼은 몰리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칼이 그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 사이 샘을 죽였던 괴한이 그 집 문을 열고 들어오고, 집에 남아있던 샘은 동료인 칼과 이 남자가 그 의문의 돈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샘은 영매를 직업으로 삼아 사기를 치고 있는 오 다매(우피 골드버그)를 우연히 찾아 가게 되고,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오 다매는 몰리에게 전화를 걸고, 또 찾아가서 샘의 부탁대로 그녀가 위험에 처해있음을 알리려고 한다. 그러나 몰리는 쉽게 오 다매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샘은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려는 칼을 막기 위해 오 다매를 설득해 먼저 돈을 빼내고, 그 사실을 안 칼이 몰리를 죽이려 할 것을 알고 몰리를 보호하기 위해, 오 다매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찾아 간다. 여전히 오 다매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몰리는, 샘과 자신 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녀로부터 듣자 눈물을 터뜨린다. 그리고 샘이 지하철에서 만난 유령에게 배운 물체를 움직이는 방법으로 동전을 움직여 그녀의 손에 쥐어주자 마음의 문을 연다.

자신을 죽이려는 칼과 괴한이 몰리의 집으로 들이닥치고, 샘은 최선을 다해 그들로부터 몰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사고로 칼과 괴한은 죽게 되고, 어둠의 영들이 땅에서부터 올라와 그들의 영혼을 끌고 들어가 버린다. 자신의 임무를 다한 샘에게 다시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오고, 샘은 몰리와 마지막 작별을 한 뒤 떠난다.

 

촉각의 의미, 만지심(being touched)와 만져주기(touching)

몰리는 도예가로 물레를 돌려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촉감은 상당히 중요한 감각기관 중의 하나다. 손끝 하나하나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표현이 상당히 디테일하게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손의 촉감, ‘만짐’의 장면이두드러지게 많이 등장한다. 만지거나 만져지거나 이 두 가지로 구분되는 ‘만짐’ 의 행위는, 사랑을 인식하고 또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처음에 두 사람이 함께 손을 겹쳐 물레질을 하는 로맨틱한 장면이나, 몰리가 샘의 품에 안겨 샘의 몸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만지는 장면, 샘이 죽은 뒤 몰리를 만지려고 하지만 만질 수가 없어 좌절하는 장면, 오 다매의 몸을 통해 들어간 샘과 몰리가 두 손바닥을 맞대고 촉감을 느끼고 춤을 추는 장면 등에서, 강한 영상미를 가진 ‘만지기’의 행위들이 전개된다. 샘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 소원도 “그녀를 다시 한 번 만질 수가 있다면”이었다.

미각, 후각, 시각, 청각, 촉각 등 사람들에게 주어진 다섯 개의 기본 감각 중에서, 영화는 몰리가 ‘촉각’을 중심으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알게 모르게 심어준다. 어쩌면 촉각이라는 것이 자의적으로 만지거나 혹은 타인에 의해 만져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각은 눈을 뜨고 있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되고, 청각이나 후각 또한 장애가 있지 않는 이상 살아있는 내내 일방적으로 감지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촉각은 그 감각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더 많이 요구되는 감각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본능에 충실한 전형적인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의지로 결정해 만지고, 느끼고, 그리고 인식한다. 그래서 몰리는 ‘만져지지 않으면 믿지 않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인간상으로 다가온다.

만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을 실제라고 받아들인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만져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실제라고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공기는 있지만 만져지지 않고, 사랑도 존재하지만 만져지지 않는다. 때문에 이 영화는 내내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소재를 ‘만짐’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해낸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고 싶습니다. 내 손으로 만져지는 사랑을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더 가까이 가고 싶고 하나님과 더 친밀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만질 수 있는 사랑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만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성령님의 만지심과도 연결될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져주실 때 치유된다. 성령님이 만져주실 때 위로를 느끼고 평안을느낀다. 도예가인 몰리가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사랑을 표현해내듯이, 그분의 만지심은 창조이자 위로이고, 은혜이고 또 사랑이다.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아5:5).”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는 몰약이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의 손가락에 흐르며 여인을 만진다. 몰리는 죽음을 가르고 현실로 들어온 샘의 사랑을 손끝으로 계속해서 느끼고 믿음에 이르게 된다.

 

사랑한다는 그 말, 쉽지만 어려운 말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상황에 자기의 감정을 이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샘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몰리는 그 사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왔다. 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그녀는 “동감이야!”라는 대답만 들어왔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숙제로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이 사랑에 대해 설명한다. 몰리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 샘의 마음,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필사적으로 그녀를 구하려고 하는 샘의 행동들, 그녀와 소통하기 위해 영매를 찾아가는 등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 ‘모두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던 샘의 말처럼, 샘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로 하지 않고 표현해내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읽는 목사의 메시지에도 이 사랑은 한 번 더 언급된다. 영화를 아우르는 큰 주제가 숙연한 장례식장에서 펼쳐진다. “우리가 영생으로 들어갈 때 사랑 또한 영원함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이 말은 장례식 장면에서 강조되지는 않고 조용히 그냥 흘러가듯 지나가지만, 샘이 마지막에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몰리에게 하는 고백이 되어 다시 관객들에게 들려진다. “참 놀라워. 마음 속 사랑은 영원히 갖고 갈 수 있으니 말이야.” 장례식장에서 샘을 위해 마지막으로 했던 기도가 결국 이루어진 셈이다.

 

몰리를 통해 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여정

샘의 영혼과 공존하며 살아가게 되는 몰리의 감정, 이성적인 판단, 행동을 보면,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와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영혼으로 남아 그녀의 주변에 맴도는 샘을 인식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자기의 삶에 초청하고 인식하게 되는 과정과 비슷한 패턴을 띤다. 어떤 면에서는 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의 삶에서 흔히 겪게 되는 믿음의 단계들을 동일하게 밟아나가고 있다.

우선 가장 강조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믿으려는 자신을 바보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도, 경찰도, 몰리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았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모두 몰리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세 번째, 단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오 다매라는 영매만 샘을 인식할 수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귀신이나 영에 관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귀신이 존재한다고 교육받고 자랐거나 혹은 그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시골에 가면 보게 되는 서낭당이나 미신들을 통해, 귀신 혹은 영의 존재를 알게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민족이다. 귀신을 쫓아낸다고 굿을 하거나 부적을 붙이고, 점을 보러가는 일이 흔하다. <전설의 고향> 같은 납량특집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고, 여름만 되면 <여고 괴담> 같은 귀신 이야기를 다룬 공포영화가 인기를 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어두운 영’ 의 존재에 대해서는 쉽게 믿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좋은 영’, 특히 성령님에 대해서는 그 믿음이 인색하다. 그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몰리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바뀐다. 샘의 영혼이 자기 옆에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한 몰리는, 믿기지 않는 것들을 믿어가는 길을 걷게 된다. 처음 오 다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억들을 꺼낼 때다. 샘과 몰리만 알고 있는 일들, 사건들, 추억들, 그리고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몰리의 마음이 조금 움직이고 열린다.

우리도 광야에 있을 때, 고독하고 외롭고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힘든 시기에, 동일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이 곁에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억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때는, 성령님이 과거 나와 하나님 사이에 가졌던 친밀한 기억들을 다시 되새겨 주시는 때다. 하나님이 내게 하셨던 일들과 크고 작은 간증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기억들과 그 징표들을 생각나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때다.

 

샘을 통해 성령님의 모습을 보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샘으로부터 성령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첫 번째는, 샘은 계속 이야기하지만 몰리는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오 다매만 샘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샘은 성령 하나님과 닮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곁에서 계속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이야기를잘 듣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또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오 다매가 말했듯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그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성령님은 결코 억지로 행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 다매가 그 돈을 수표로 찾아 나오는 장면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것은 샘과 오 다매의 ‘밀당’이었다. 샘의 계획을 통해 수표를 가지게 됐지만, 오 다매는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샘은 4백만 달러짜리 수표를 수녀들에게 헌금하라고 시킨다. ‘나를 보호하는 길은 그것을 버리는 것’이라며 살 길을 제시해 준다.

샘과 오 다매의 밀당, 그리고 오 다매 자기 자신과의 밀고 당기기. 수표를 내어주려던 그녀는 받아든 수녀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듯, 수표를 꼭 쥐고 내어주지 않고 좀 더 만져보겠다고 한다. 샘은 손을 떼라고 옆에서 계속 말한다. 난 못한다고 부들부들 떠는 오 다매의 희극적인 대답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왜냐면 우리들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인상적인 것은 샘이 오 다매가 수표를 잡고 있는 손을 치거나 뺏어서 수녀들에게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그 시점에 물건을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익혔기에, 오 다매의 손을 치는 등의 방법으로 수표를 놓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샘은 그저 옆에서 말만 한다. 주라고. 내려놓으라고. 그리고 마침내 오 다매가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 잘했다고, 자랑스럽다고 칭찬해 주고는 웃는다. 그 모습은 꼭 성령님의 모습을 닮았다. 억지로 행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말씀하신다. 우리가 할 때 까지. 우리가 깨닫고 행동에 옮길 때까지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말이다.

세 번째 닮은 점은 그 안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샘이 몰리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험에 처해있는 그녀를 보호해주기 위함이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곁에 머무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이유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너무도 아끼시기에 늘 함께 하시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분을 믿지 않거나 늘 밀어내려고 하는 건 우리들이다.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한다

칼은 밤중에 몰리에게 찾아와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빼내기 위해 그녀를 위로하는 척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몰리는 그의 행동만 보고 적의 없는 태도로 그를 대한다. 칼은 “내가 친구라는 것을 알아 달라”고 몰리에게 호소한다. 가장 깨어지기 쉬운 시기에 사단은 이렇게 거짓말로 늘 우리들에게 접근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 진심을 속이고, 거짓된 행동으로 우리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고 안타까운 사건들이 생긴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을 봐야하고, 상대방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행동이 어떤 것에서 나왔는지를 분별해야 하며, 그 영이 어떤 영인지를 끊임없이 성령님께 여쭈어봐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 때 주님이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은 순간순간 육의 지배를 받고, 육의 것을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성령님과 모든 순간을 동행하지 않으면 언제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 나에게도 거짓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을 대할 경우도 생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고, 나 또한 성령님을 거스르지 않도록, 순간순간 동행하도록 기도하는 일이다.샘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 몰리에게 샘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늘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특별한 능력이 생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몰리에게 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하게 그와 소통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평생 듣고 싶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그에게서 듣고, 덧붙여 ‘영원한 사랑’ 을 약속으로 받는다. 평생 그녀를 사랑해 왔고, 또 그 사랑을 영원히 가져갈 것이라는 고백이었다.

그 영원함이란 어쩌면 으스스한 영화 첫 장면에 나왔던 전선, 철근으로 상징되는 1차원의 ‘선’과 천, 벽으로 상징되는 2차원의 ‘면’, 그리고 ‘공간’이라는 3차원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사랑. 깊이나 넓이를 재거나 만지는 것으로 측량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