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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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힐링시네마
블랙 Black

 

작가 이애경

 

영화 <블랙>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짐승처럼‘어둠’속에 살던 한 장애인 소녀가 한 선생을 만나, 단어들의 의미를 깨닫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빛’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인도판‘헬렌 켈러 스토리’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볼리우드 영화는 음악과 춤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느끼하다고 느껴지지만, 이 영화는 잔잔하고 깊은 메시지가 숨어있는 휴먼 드라마로 인도 영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대중적인 취향을 보여준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우리는 필사적으로 빛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실낱같은 한 줄기 빛조차 찾을 수 없을 경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모든 사물은 공포의 존재이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온 몸을 휘감는다. 유일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길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손을 더듬어 사물들을 느끼고 소통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옴짝달싹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블랙>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어둠’속에 살던 한 장애인 소녀가 한 선생을 만나, 단어들의 의미를 깨닫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빛’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인도판‘헬렌 켈러 스토리’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볼리우드 영화는 음악과 춤으로 구성되어있어 다소 느끼하다고 느껴지지만, 이 영화는 잔잔하고 깊은 메시지가 숨어있는 휴먼 드라마로 인도 영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대중적인 취향을 보여준다.

시각청각 장애아가 스승을 만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처음부터 결말이 보이는 뻔한 스토리 라인이지만, 단순함 속에 반복되는 ‘빛’과‘어둠’ 이라는 화두는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확실히 각인된다. 산제이랄라 반실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볼리우드의 여왕으로 불리는 라니무케르지가 여주인공 미셸역을 맡았고, 아미타브밧찬이 스승 사하이역을, 아예샤 카푸르가 어린미셸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가 개봉된 뒤 입소문을 타다가 결국 2009년에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는데, 특히 두려움과 공포,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장애아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소화해야 하는어린 미셸역의 아예샤 카푸르의 천재적인 연기는, 그녀가 실제 시청각 장애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게 만들 정도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미셸은 한 살 때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미셸은 여덟 살이될 때까지 홀로 갇힌 어둠속에서 짐승처럼 살아가고, 아버지는 미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 이 때 농맹아들을 가르쳐온 사하이 선생이 미셸을 가르치기 위해 이 집에 들어오고, 그에게 주어진 단 20일동안 단어와 의미의 관계를 깨우쳐 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짐승처럼 살아온 그녀에게 사하이 선생은 익숙해진 삶을 방해하는 요소로 다가오고, 이 둘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전쟁 같은 훈련을 시작한다. 자신이 출장을 가있는 동안 몰래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미셸의 아버지는 결국 사하이 선생을 쫓아내는데, 그가 쫓겨나가기 직전에 미셸은 기적적으로 ‘물’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배움을 시작한 미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단어들을 배우고 익히고 날갯짓을 시작한다. 사하이는 20여년을 헌신하며 그녀를 대학까지 진학시키고, 보고 듣지 못하는 그녀의 옆에서 귀와 눈이 되어 함께 공부하며 그녀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느 날 사하이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서서히 잊어버리기 시작하고, 미셸이 갇혀있던 암흑으로 그 자신이 들어가게 된다. 자신을 기적으로 이끌어준 사하이 선생이 자신조차 알아 볼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된 미셸은 사하이에게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애쓰고 결국기적을 이끌어낸다.

 

인내와 사랑으로 이뤄낸 기적

영화는‘신에게서 불완전함을 받은 두 사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의 이야기’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딸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려는 남편에게 ‘자기의 어둠에서 질식해 죽기일보 직전인 아이’라며 미셸을 보호하는 어머니는 말 그대로 미셸의 유일한 안식처다. 어머니는 미셸에게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한다고 가르친다. 장애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딸이 배울 수 있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다는 것에100% 믿음을 갖지는 않았지만, 미셸의 삶에서 언제나 안식을주며 그녀를 감싸 안았다.

모든 것이 암흑이었던 미셸이 빛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중요한 인물은 스승인 사하이다. 그는 미셸에게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유일하게 가르치지 않으며, 불가능이라는 개념자체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에게 모든 것은 가능한 일이고 ‘넘어져도 일어서면 더 강해진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어렵게 단어들을 배우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깨달은 미셸은 대학에 진학하고 수업을 들었지만, 그녀가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세상 밖으로 풀어내는데 또한 한계가 있었다. 낙제는 계속되었고 같은 수업을 몇 년씩 계속 들어야 했지만, 미셸과 사하이는 실패를 슬퍼하기는커녕 언제나 축하했다. 그들은 실패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오랜 노력을 쏟아 부었고, 미셸은 결국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그것이 나에게참 생명을 주는 것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난폭하고 귀신들린 사람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살던 어린 미셸에게 사하이는 단어와 의미의 관계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그것만이 그녀를 암흑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강조하면서. 미셸은 가시에 찔려 아픔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신다는 것은 알지만, 단어와 의미의 관계를 깨닫지 못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에게도,그것을 가르치는 스승에게도, 그 관계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깨달음은 어느 순간에 온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던 사하이는 지치지 않고 단어와 의미의 관계를 가르치려하고, 미셸은 어둠속에 침입해 손을 잡아끌어 빛으로 인도하려는 스승에게 거칠게 반항한다.

어린 미셸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물이었다. 그리고 스승은그 두려움과 정면승부를 한다. 사하이는 반항하던 미셸을 분수대로 밀어 넣어버리고, 미셸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물과 마주한다. 미셸은 물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미친 듯이 두려움에 떨며 포효하다가, 서서히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손으로 느끼며 물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찰나를 놓치지 않은 사하이가 자신의 입술에 미셸의 손을 갖다 대며 ‘워터(water)’라고 발음하며 단어를 알려준다. 그렇게 난생 처음, 미셸은 ‘물’ 이라는 단어를 배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알츠하이머에 걸려모든 것을 잊어버린 사하이에게 기억을 되살려주려는 미셸의 노력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간다. 스승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자신을 암흑에서 빛으로 이끌어준 스승을, 이번에는 자신이 그 암흑에서 빛으로 이끌어 줄 때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가운을 입고 스승을 만나러 온 날, 쏟아지는 비를 맞게되고 사하이는 기적적으로 ‘물’ 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낸다. 스승의 손을 맞잡고 ‘물’을 깨달았던 때처럼, 이제 그 곁에서 미셸이 그에게 기적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어둠에 머물지 말고 빛으로 나와!”

“사하이는 빛의 흔적을 찾는사람이야. 농맹아들을 위해, 자신의 빛을 잃어버린 아이들을위해.”
“우리의 인생의 시작이 어머니의 자궁이든 대지이든, 그 여정은 어둠에서 시작되어 어둠으로 끝납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어둠을 지나서 광명에 이르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번개처럼 와요. 초에 불을 켜듯이 일단 불이 붙으면 온 집안을 빛으로 채우게 되죠. 믿으세요. 그런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절대 잊지 마. 어둠이 필사적으로 널 집어삼키려고 할 거야. 하지만 넌 항상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해.”
‘블랙’이라는 타이틀을 내건영화 내내 감독이 집중하는 단어는 바로‘빛(light)’이라는 단어다. 이는 블랙이 검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빛이 존재하지않음으로 생기는 두려움, 공포,무지함, 차가움 등의 다양한 속성들을 내포한다는 이야기다.

빛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구원, 안전함, 따뜻함, 지식, 미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빛이었다. 사람과 동물을 만드시기 도전에,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은 빛을 먼저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인 어둠상태에서 인간을 먼저 만드셨다면, 인간은 어둠(죄, 두려움,공포, 무지함)을 먼저 경험하고나서 빛을 경험하게 됐겠지만,빛을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우리에게 빛의 속성이 먼저이며 언제나 근본적으로 빛을 인식하고 기억해야한다는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순서를 정하신 게 아닐까 싶다.

이것은‘눈으로 볼 수 있는 빛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더 중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눈을 뜨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암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개를 꺾이고 날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지. 감독은 우리들에게도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가라고 도전장을 던진다. “이 어둠속을 뚫고 지나갈 거야. 네가 살아온 이 어둠을… .그 어둠속에 남아있지마. 빛속으로 들어와!”

 

동생 사라와의 관계의 회복과 치유

영화를 이루고 있는 작은 줄기중의 하나는 미셸과 동생 사라와의 관계 회복이다. 사라는 ‘특별한’언니를 둔 덕택에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다. 엄마의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 언제나 미셸을 찾고, 파티에서도 언니는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는다. 장애가 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밝고 명랑하고 유쾌하게 자란 미셸은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작은 딸은 계속해서 상처를 받는다. 무엇을 해도 특별한 일이 되어버리는 언니 앞에 자신의 노력이나 자신의 존재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그녀의 상처는 사라 가족과 피앙세 가족이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니에 대해 섭섭했던 마음과 미움을 고스란히 토해놓지만, 자신을 향한 언니의 진실된 마음, 장애를 극복하고 단련된 아름다운 마음 앞에서 동생 사라의미움과 상처는 치유된다. 사라와 미셸은 함께 손을 잡고 결혼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고 언니는 동생을 위해 들러리를 서게된다.

 

깨달음은 생각을 바꾸는데서, 즉나를 내려놓는데서 온다

사람들의 생각은 고정되어 있어 어떤 사물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미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셸은 지팡이를 쥐어주는 사하이에게 지팡이에 의존하고 살지 않겠다고 반항한다. 하지만 사하이는지팡이가 그녀를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미셸은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혼자 바깥세상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일을 시작한다. 그녀를 의존하게 만들 것이라고 여겼던 사물이 실질적으로는 그녀에게 자유와 독립성을 심어준 것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지팡이는 내가 자유롭게 다닐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기도 하고, 나를 장애물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또한 나를 훈계해 내가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준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팡이를 싫어한다. 왜냐면 우리들 또한 미셸처럼 지팡이와 함께 다니면 의존하게 되고,자유가 사라지고 내 맘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는, 우리들 모두에게 진리의 지팡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팡이에 의존해야 우리에게 참된 자유가 허락되는 것이다.

20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된 미셸은 졸업식장에서 이렇게 연설한다. “내겐 모든 게 검지만, 선생님은 검은색의 새로운 의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검은색은 답답함과 어둠이 아닙니다. 그건성취의 색이고 지식의 색입니다. 졸업가운의 색입니다”

그녀는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자신의 스승에게 맨 처음 보여주기 위해 병실에 있는 사하이를 만나러 간다. 사하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이 하얗게 채색되어있다. 아마도 간절하게 빛을 바라고 있다는 표현을 하기 위한극적인 장치인 듯하다. 그래서 미셸이 검정색 졸업가운을 입고 병실로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블랙 앤 화이트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 장면에서 미셸의 졸업장에 묶여있는 빨간색 리본이 유일하게 빛난다. 이 장면은 흑백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쉰들러가 유태인을 돕기로 마음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역할을 했던 빨간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블랙과 화이트로만 이뤄진 장면들속에서 한 순간 유일하게 등장한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등장하는데, 이후 그 아이의 죽음을 목격한 쉰들러는 방관자적인입장에서 유태인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친구로 변화하게 된다.

빨간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며 구원이며, 생명이다. 미셸은 자신을 무지함에서 배움으로 이끌어준, 즉 어둠과 빛이 나뉘는 그 자리에 붉은색 리본이 묶인 졸업장을 들고 나타난다. 그건 마치 암흑에서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끈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게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적을 선포하게 하려하심이라 벧전2:9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태어난 미셸, 그리고 그녀를어두운 곳에서 불러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만들어준 스승 사하이. 미셸은 자신의 스승을 이렇게 표현한다.

“지식은 영혼이며 지혜이며 용기이며 빛입니다. 성경이며 하나님이며 나의 스승입니다.” 라고 말이다. 기독교 영화는 아니지만 어둠과 빛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깊은 의미를 부여한 영화 <블랙>. 불가능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서의 눈물겨운 스토리, 제자를 위한 스승의 헌신적인 사랑이야기도 볼만하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깊게 생각하게 함으로써 남겨주는 여운이 더욱 분명한, 웰메이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