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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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목사칼럼 – 초대

2015_09_clom02

윤현숙 목사


지난 20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살다가 최근에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어서 여러 가지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유학중인 딸에게 전화가 와서 곧 이사 간다고 알려주었더니, 언제 가는지 그 동네는 어떤지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딸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두 살 때 이사 와서 계속 이 지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정이 들어서인지 꼭 가야하느냐고 물으며 많이 서운해 했다. 처음에는 딸이 이곳에 추억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나도 오래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는 것이 참 서운하기는 매한가지다. 바빠서 쳐다보지도 않던 창밖의 풍경이 갑자기 정겹게 느껴지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동안 이사를 많이 다녔어도 그다지 서운했던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는 왜 다를까….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이 집에서 특별히 하나님과의 추억이 많아서인지…. 창밖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이제까지의 이사는 우리 집 형편이 좀 더 나아져 살기 편리한 곳으로 다녔던 이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낯선 곳으로 갈지라도 막막함이나 막연함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하나님께 삶을 헌신했지만 평범하게 평신도로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2008년도에 시작된 HTM 사역이 7년 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신대방동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사역지를 따라 집을 옮기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도하면서 기대했던 대로 하나님께서 마음껏 사역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해 주셨는데, 새로운 곳에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새로운 사역에 대한 기대감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부담감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임을 늘 기억하려 했고 한때는 선교사로 가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었건만, 같은 서울에서 정든 동네를 떠나는 것일 뿐인데도 이렇게 아쉬워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말씀을 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여정에 대해 새롭게 묵상하면서 공감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 떠났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가 부르심을 따라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에 그의 마음이 얼마나 막연하고 막막했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 부딪쳐온다. 사도행전 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손바닥만 한 땅도 주지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장차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 히브리서 11장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가야할 곳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고향을 떠났다고 강조하는 내용을 보면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결국 그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러한 삶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보장되고 안정감이 있는 환경과 여건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9절에서 말씀하듯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가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정든 집과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길을 떠나기로 결단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나아갔다. 최근 중보모임에서 그동안 함께 기도했던 소중한 동역자들이 이곳저곳으로 떠나게 되어 잘 정착하기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보내면서 참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느꼈었는데, 그 일들을 통해서도 깨달은 것은 결국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익숙하고 정든 곳을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변화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연약함을 보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에만 집중하며 나아갔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잔잔한 감동과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삶이 주님께 칭찬받고 많은 후대 사람들에게 믿음과 순종의 귀감이 되었듯이, 작은 일이지만 내가 씨름하고 약속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았다고 인정해주시고 격려해 주실 날을 기대해 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면서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먼 훗날 믿음으로 약속을 따라 살아온 삶이라고 인정해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담대히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작은 변화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연약함을 보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에만 집중하며 나아갔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잔잔한 감동과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삶이 주님께 칭찬받고 많은 후대 사람들에게 믿음과 순종의 귀감이 되었듯이, 작은 일이지만 내가 씨름하고 약속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았다고 인정해주시고 격려해 주실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