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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고 싶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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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목사칼럼 – 주님의 사랑

윤현숙 목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묵상하면서 가난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랄 때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집안 형편을부끄러워했던 적이 있었고, 대학을 갈 형편이 못되어서 상업고등학교를 갈 뻔했던 일이 대학 진학후에도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었다. 결혼 후에도가난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맞벌이를 했지만 집 한 칸 없이 아들을 키우면서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리느라 힘에 부치는 삶을 살았다.

한번은 가난으로 인해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께 질문한 적도 있었다. “하나님, 저를 그렇게 사랑한다 하시면서 왜 이렇게 가난한 채로 두시는지요?”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과거의 상처들이 아물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더 이상 가난하지않아서 편안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가난은 내게 힘겹고 어려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역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이 가난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고 또 축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징계로 여기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된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피해가고 싶거나 가난했던 기억을 떠 올리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가난은 어려움이나 결
핍으로 다가오기에 가난이 유익하다거나 가난이라는 단어가 복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 진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팔복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첫 번째 복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복 있다고 말씀하신 자는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자로 의지할 데가 없어서 하나님께 빈손 들고 나가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갇힌 자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다는 이사야서 61장의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주시고 세상사람들에게 거절당한 이들을 받아주시며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는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가난이 영적으로는 겸손한자세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만든다. 가난한 자는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전혀 없기에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라며 주님만 바라보면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 가난한 마음에 대해 묵상하다보니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치유사역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모든 일이 자신없었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그 순간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인 저녁 집회를 위해 일주일 내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만 붙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말씀도 많이 알게 되고 이런저런 경험이 많이 생기니까 사역은 훨씬 편해졌지만, 가끔씩 ‘내가 내 힘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여유가 있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을 향해 가난한 심령이었던 그 시간은 분명 유익한 시간이었으며 다시 회복하고싶은 마음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영적으로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마음을 갖고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복된 나라이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당당하였다.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세리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저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스스로 세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면서 바리새인처럼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는가 돌아보아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야 가난한 심령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이야기가 많다.
하나님의 보좌환상을 보면서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고 고백한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때 자신이 영적으로 파산한 자임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가난한 심령을 되찾고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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