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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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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저자 : 티머시 R. 제닝스
옮긴이 : 윤종석
출판사 : CUP
발행년도 : 2015년
 책소개 : 이익재

 

작가 티머시 제닝스는 1997년부터 개인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로서 미국 소비자연구위원회로부터 미국 최고의 정신과 전문의 중 한 명으로 여러 차례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본서는 정신과 전문의인 작가가 그를 찾은 한 외래환자와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울지 마십시오.” 작가가 가만히 말합니다. 그녀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 한 채,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털어 놓았습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무엇이 말입니까?”
“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오, 하나님!”
“그게 왜 당신 잘못이라는 거지요?”

“제가 아이를 살해했으니 하나님이 그 벌로 평생 제게는 아이를 주지 않으실 거라고 우리 목사님이 그랬어요.”

작가는 경험 많은 외과의가 환부에 메스를 대듯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정교하게 해부합니다. “그녀가 절망하는 근본원인이 난임 문제 자체일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벌하시는 거라고 믿는 그런 믿음이 그녀의 건강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도 그녀를 벌하시는 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울고 계심을 믿는다면, 그런 믿음이 그녀에게 유익과 치유를 가져다줄까?”

여러분은 상충하는 하나님 관(觀) 때문에 좌절이나 혼란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혹은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불순종에 대해서는 벌과 고통을 가하시며(징계로 구속하시기 위함이 아닌) 고통과 파멸을 주시는 분으로 배운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실체라는 것이 마귀가 주장하는 대로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대로입니까? 이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답해야하는 질문입니다.왜냐하면 이 질문의 결론으로 우리의 구원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인용한 자료에 의하면 성경에는 그런 두려움을 격발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속죄(贖罪)의 초점이 노하신 하나님을 달랜다든가 그분의 자비로움을 얻는데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오류로서, 노하신 하나님을 속죄로 달래야 한다는 개념 또한 성경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예배드려야 할 신은 예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과 ‘사랑이 아닌 다른 신’ 둘 중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신으로부터 자비와 용서와 은혜를 얻어내려 한다면 우리 쪽에서 행위로 자격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잘못된 종교의 핵심 오류는 왜곡된 하나님 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세상 종교의 신은 너무 바빠 우리를 돌볼 겨를이 없는 존재이거나, 무심하게 멀찍이 떨어져 있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절대 권력으로 잔인한 압제를 일삼아 우리 쪽에서 달래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뇌에 대한 다양한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자료에서 입증되었듯 어떠한 하나님을 예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뇌가 달라집니다. 치유는 ‘사랑의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만 가능하며, ‘거짓 하나님’을 고수하면 치유의 길이 막혀버리고 맙니다.

잠시 뇌에 대한 상식을 공부하고 가기로 하겠습니다. 출생 직후 어린아이의 뇌 신경세포는 8세 때에 비해 수억 개나 더 많습니다. 즉, 생의 첫 8년간 우리의 뇌는 수억 개의 신경세포를 제거합니다. 얼핏 신경세포가 줄어든다는 것이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는 마치 대리석이 거장의 손으로 놀라운 예술 작품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뇌의 전두대상피질(양 미간 안쪽)은 신경계의 “마음”으로 통하는 부위로서 동정심, 타인 중심의 사랑, 긍휼 등에 관여하는데 두려움, 불안 등에 따른 과도한 대뇌변연계의 활동에 의해 세포가 손상되는 반면,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묵상하고 이타적 행동을 하면 강화된다고 합니다.

또한 뇌의 ‘경보기 역할’을 하는 중추로서 두려움과 불안감을 관장하는 대뇌핵의 편도체는 이기적 행동, 죄책감 등을 통해 활동이 증대되며, 하나님 사랑의 묵상, 이타적 행동 등으로 활동이 진정된다고 합니다. 만약 뇌의 두려움 중추(편도체)가 활성화되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으면 어찌될까요? 그것이 연달아 가성(苛性: 피부, 조직에 심한 작용을 나타내어 침식시키거나 썩히는 성질)을 유발하여 몸과 뇌를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간의 뇌에는 본서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신경가소성’이라는 능력이 있어 뇌의 많은 부위가 평생 ‘가변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 특히 전전두피질이 그렇다고 합니다. 즉, 건강한 ‘뇌 회로’는 많이 쓸수록 신경회로가 더 발육, 강화, 팽창되지만, 쓰지 않고 그냥 두면 그런 신경회로는 뇌가 스스로 제거해버린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따라서 우리가 뇌의 건강과 정신적 안정을 위해 진실, 사랑, 자유라는 ‘하나님의 치료법’을 사용하면 전전두피질의 뇌 회로가 더 강해지며, 손상되었던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치유가 될 수 있음을 과학이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뇌에 미치는 뇌신경세포 수준의 구조적 변화와 치유효과 등을 과학과 임상 사례들로 증거함으로써 ‘말씀’에 기초한 ‘말씀치유사역’이 ‘치유에 유효함’을 임상의학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또한 작가는 의학과 신학의 접점에서 본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이해에 더하여 우리가 반드시 풀고 가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레24:20)라는 말씀과 같이 용서와는 거리가 먼 함무라비(?)의 전형처럼 보일 수도 있는 말씀들을 비롯하여,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깨끗하여 지지 아니하리라(겔24:13)고 그분의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하시며 죄와 악을 멸하심으로 ‘벌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일 수 있는 많은 구약의 기록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합당한 설명과 그에 대한 ‘도마’의 경우와 같은 ‘수긍에 따른 믿음’ 없이는 누구라도 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불법 난입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열 명인데, 그들 중 다섯은 스무 살이 넘었고 다섯은 아직 일곱 살이 안 됐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위로 다섯은 반항아, 폭력범, 치한, 마약중독자, 살인자로 늘 동생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회개로 이끌고자 하지만 오히려 여러분을 무시하고 공격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만일 불순종하는 그들을 냉동시켰다가 (죽이는 것이 아니고 어린 자녀들이 장성할 때까지만 잠재움) 나중에 깨어나게 할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구약의 징치(懲治)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음에도 “속이는” 사탄은 하나님의 그런 모습을 “복수의 화신”이나 혹은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높으신 경찰관’ 쯤으로 곡해함으로써, 사람들의 불법을 지켜보시다가 불순종에 대하여 ‘공의롭게’ 벌을 가하신다고 사람들의 마음에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 관을 성공적으로(?) 심어놓은 것입니다.

현대과학은 거짓된 믿음의 결과 ‘사랑과 신뢰의 서클’ 이 깨어져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면, 대뇌변연계가 자극을 받음으로 전전두피질의기능이 저하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잊어버린 놀라운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벌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 이라는 것이 작가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가르치고 치유하고 회복시킬 목적으로 훈육(징계)을 가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방법과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11:11-14

 

 

생명과 죽음의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에서의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 위의 말씀을 본다면 예수님은 영락없이 거짓말을 하고 계시는 것이 됩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27:52

 

 

성경이 이르는 ‘불의 메타포’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말4:1-2

 

 

‘동일한 성령의 불’이되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뜨거운 용광로의 불로 임하시지만,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는 치료의 광선으로 임하심을 선지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멘!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사33:14

 

 

많은 설교자들이 위의 말씀을 악인들은 타오르는 불 속에서 영원히 끔찍하게 고통을 당하며 살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영원한 불 속에서 고통 중에 살아갈 자들인지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도록 하십니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사33:15

 

 

‘공의를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들’이 불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자들이라니! 오랜 선입견으로 진리에 눈이 가리워졌었음을 고백하는 작가는 성경 전체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탐색함으로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증거’로 자신의 결론을 삼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았음(출3:2-4)을, 또 시내 산에서 강림하셨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맹렬한 불”로 표현되었으나 아무 것도 녹지 않았음(출24:17)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불의 강가에서 살고 있었으며(단7:9-1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었음에도 불 속에 에워싸여서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으심(마17:2)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생각합니다. 이 불(삼키는 불, 정화하는 불, 끌 수 없는 불)의 메타포가 혹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이 아닐까라고. 그러다 마침내 작가는 계시록을 읽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조차 비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필요한 모든 빛이 하나님의 임재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계22:5). 할렐루야! 마침내 작가의 깨침이 고백됩니다. 자기 마음 구석구석에 그토록 오랫동안 꽁꽁 숨어있던 사탄의 거짓말이 이제 만천하에 폭로된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의 사유와 의식이 얼마나 어두워져 있었던 것인가!

사탄이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을 속여 두려움의 굴레에 묶어 두었던 거짓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삼키는 불이 영원히 타오르는 그곳은 우리가 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임재 자체입니다. 의인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불꽃같은 임재에 에워싸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인간가족의 일원이시지만, 한 번도 사랑의 법을 어긴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뇌로 온전히 사랑한 유일한 인간이십니다. 서로 적대관계인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아를 내세우고자 하는 마음’의 두 원리가 ‘예수님의 뇌’ 안에서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격이 뱀의 머리를 부수어버립니다(창3:15, 마4:11).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눅4:1)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으되, 오로지 ‘사랑’으로 두려움과 이기심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작가는 이 모든 일이 인간이신 그분의 뇌 속에서 벌어졌음을 현대과학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설계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빚으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왜곡되었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창조주(하나님)와 창조자(예수님)뿐이십니다. 아멘!

작가가 인용한 커트 톰슨 박사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분은 승천해 온 세상의 주(主)가 되셨고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우리의 전전두피질을 온전히 회복할 능력을 주셨다. 이 새로운 신경망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고 대변한다. 그 나라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되지만, 그분의 그림자와 전조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고 있다. 아멘!

하고 사려 깊은 정신과 전문의이며 치유사역자인 제닝스 박사를 길라잡이로,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빚으신 당신의 뇌(The God-Shaped Brain)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더욱 분별케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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