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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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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2016년 5월 3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오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기도에 관한 전부를 말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주 놀랍고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11장 2절에서 13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눅11:2-4

 

누가복음 11장 2절에서 4절의 말씀은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축약해 놓은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하는 기도와는 달리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나라에서 자녀들이 아버지께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눅11:5-8

 

2절에서 4절까지는 새로운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 주셨고, 5절에서 8절까지는 기도할 때에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기도할 때의 태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는 친구 세 명이 등장합니다. 여행 중에 갑자기 어느 친구에게 들이 닥친 친구, 또 그 친구 때문에 떡 세 덩이를 구하려고 또 다른 친구에 간 친구,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떡을 줄 수밖에 없는 친구, 이 세 친구의 이야기가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8절을 읽고 나면 우리는 떡을 주고 싶지 않은 친구라 할지라도 강청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지않는가, 따라서 하나님께도 끈질기고 집요하게 그 다음에 뻔뻔스럽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말씀을 너무나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관점과 하나님의 자녀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구약적이고 율법적이고 신자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보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통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처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비교”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친구는 떡을 주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귀찮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청할 때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구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친구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이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 이 말씀은 비교로 친구가 안 준다 할지라도 강청하면 얻어낼 수 있는데, 하물며 주기를 그렇게 원하시는 아버지께서 강청해야 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아닌 신자적인 입장에서, 저 하늘에 계신 두렵고 우리를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노여워하시지 않도록 재물을 드려야만 그 대가로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청한다는 것은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뻔뻔스럽게 아니면 집요하게 끈질기게 요구해야만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냥은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11:9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두 번째로는 기도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기 싫어하는 자에게도 강청하면 결국은 얻어내지만, 주고 싶어 하는 내가 있는데 그걸 꼭 강청해야 얻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는 계속 구해야 한다, 계속 찾아 다녀야 한다, 계속 두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기 때문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고 우리를 바라보시며 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은 안 주신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구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찾아야 하고 최선을 다해서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찾을 것이다,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약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이 약속은 하나님나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강청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시기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셨기 때문에 그 주시는 것을 이 땅에 이루어내기 위해서 기도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이미 주기로 결정하고 너에게 주고자 하는데 왜 기도하지 않느냐, 왜 찾지 않느냐, 왜 두드리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하셨고, 그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구하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구하라는 뜻은 권위자,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구하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 아버지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내가 받아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다는 뜻입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라는 뜻은 마치 우리가 보물찾기 하듯이 이미 그 안에 있는 것을 우리가 찾으러 가면 그것을 찾게 된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드리는 이유는 사람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에게 열릴 것이다” 이 말씀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없는 것, 주시지 않는 것을 받아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시고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생각을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강청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다는 사실을 믿느냐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실까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기도의 핵심은 어떻게 기도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다 주셨다는 것을 정말 믿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11:10

 

이 말씀은 미래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본래 헬라어로는 현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래적인 일이 아니라 현재! 지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멘!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11-13

 

못난 아비라도 자기 자식한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못 주실 게 뭐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새로운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 기도에 대해서 어떤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 번째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강청해야 되느냐라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미 다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통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이 바로 자녀인 우리가 유업으로 받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지도 않은 것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미 다 주셨기 때문에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즉, 이미 주신 것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가운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넘어지고 맙니다. 포기하고 맙니다. 왜? 강청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 강청해야 주십니까? 얼마만큼 끈질기게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 율법의 저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주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무것도 못 얻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진정한 하나님나라 복음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의 도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하지 않아야 될 고통을 당하고, 앓지 않아도 될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멋대로 살다가 질병이 나면 그 때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영생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혼과 육이 하나님의 영생에 일치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사로잡게 되므로 어떠한 질병도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신성한 건강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심령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치하지 못하도록 자기 멋대로 자기의 구습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다가 질병이 들면 그때야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은 나를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얼마나 더 기도하면 치유해 주실 겁니까?”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진정한 자녀의 삶은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혼과 육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사로잡게 되고 어떠한 질병도 더러움도 우리에게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어왔던 모든 질병들도 녹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로서 당하지 않아야 될 일들을 지금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귀는 바로 그 점을 노려서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심에도 불구하고 떼를 쓰고 강청하고 끈질기게 해야만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약속의 말씀은 오늘 우리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100%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7-8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신자는 “밤낮 얼마나 부르짖어야 되지?”, “내가 정말 택함을 받은 자일까?”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에 방점을 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주시기 때문에 밤낮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주셨기 때문에 밤낮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즉,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세상적으로 변해가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고 복음의 본질이 흐려져서 포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없어지고 강청하는 것을 아예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보다는 사람에 과학에 수단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의술이나 약에 의존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치유의 근원이십니다. 이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아멘!

우리의 마음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안 주시기 때문에 얻어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방법에 열을 올립니다. 좋은 방법, 좋은 테크닉이 뭘까, 기도하는 기술이 뭘까에 관심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다 주셨고 나는 하나님 자녀라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아멘!

현실에서 보면 부족하고 결핍되고 두렵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내 본질이 육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안다면, 본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전부가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만족합니다. 나는 풍성합니다. 나는 깨끗합니다. 나에게 질병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나는 가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풍성함을 위해서 당신께서 가난해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강건케 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보면 부족하고 결핍하고 두려운 것밖에 없지만 내 본질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 때 나는 풍성합니다. 나는 깨끗합니다. 여러분이 그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과 합해서 그때서부터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이 현실에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입술로 선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의 입술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입으로 선포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기를 원하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맞지 않는데, 사람들이 날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내가 너무 이상하지 않을까?” 그 답은 여러분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본질이 현재에 기초한 나입니까?” 아니면 “본질에 기초한 나입니까?” 다른 말로 “하나님이란 신을 믿는 신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결정하십시오. 생각을 바꾸십시오. 여러분의 입술의 선포를 바꾸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루시고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의 상황에 묶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강청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기 전에 진짜로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는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가 영적 존재인가, 하나님께서 다 주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을 때부터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삶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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