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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7 속사람으로 말하라

내적치유 7 속사람으로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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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7 속사람으로 말하라

2016년 7월 9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2014년 니카라과 집회에서 니카라과 국민 CCM 가수가 집회 전에 찬양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8천 명에서 만 명 정도가 모였는데, 10만 명을 감당할 수 있는 스피커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한 곡을 부르기로 한 약속과 달리 네 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다가 다른 팀들도 올라와서 자신들이 준비한 순서를 다 한 번씩은 진행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래 목적은 <치유집회>인데, 이들이 주어진 시간을 모두 다 써 버린 것이었습니다.

 

한 시간을 죽기 살기로 복음을 전해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정말 힘든 상황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통역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트럭에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되질 않았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님, 한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전해도 아무 기적도 안 일어나는데, 여기서는 저에게 시간도 충분히 주질 않고, 도대체 이게 무슨 치유집회입니까?” 제 마음 속에서는 막 난리가 났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임재도 느껴지지 않고, 마음은 타들어가고…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습니다.

 

강단에 올라가기 한 2, 3분 정도 전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야, 철! 너, 너의 삶을 사냐, 내 삶을 사냐?”, “당연히 주님의 삶을 살지요! 제가 저의 삶을 살면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은 “너의 일을 하냐, 내 일을 하냐?”, “아이, 주님 일을 하지 제가 무슨 제 일을 합니까?” 세 번째는 “그러면 너는 내 말을 하냐, 너의 말을 하냐?”, “주님 제가 어떻게 제 말을 합니까? 주님 말씀을 전해야지요.” 그러자 마지막에 “그러면 뭐가 문제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에 결국에는 주님께서 “문제없습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문제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기름 부으심이 임하고 강단에 올라가서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통역을 통해서 한 20분 정도 선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부터 니카라과에 있는 목회자들 800여분이 오셔서 한 주 동안 계속 세미나를 했었는데, 마지막 집회 다음 날 전국에서 모인 800명의 목회자들이 둘씩 짝지어서 마을로 전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TV도 전등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밤에는 완전히 적막합니다. 그런데 이 스피커가 10만명이 들을 수 있는 출력이 되니까 온 동네, 수 킬로에 걸쳐 퍼져 나갔습니다. 할 일도 없고 해서 집에 누워 있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귀를 기울이다가 사람들이 치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책에서도 이런 일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고 나쁜 점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시고 저한테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밤에 수 킬로에 걸쳐 스피커가 울리도록 해서 집에 누워서 듣다가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사역자였지만 사실은 올라가기 전에 겉사람으로 생각했고 겉사람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세 가지의 질문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단상에 올라가서 선포할 때는 겉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속사람으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의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지난 몇 주 동안 계속 참석하신 분들은 겉사람과 속사람, 나와 내 마음이 분리된 것을 아마 충분히 이해하고 경험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거짓자아에 속아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육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생,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녀의 삶이 아니라 신자의 삶이겠지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겉사람의 삶, 육적 존재의 삶이 아니라 영적 존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내가 아니란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저는 마태복음 16장 24-25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놀랍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26

 

나는, 내가, 내 생각에는, 나의 것은 이렇게 말하며 나와 마음을 동일시하는 육적인 존재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너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서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육적인 마음으로 생각하여 내 자신을 포기하고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진다고 이해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후에야 나를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졌지만,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가 새로운 자기를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어서 25절에 보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 목숨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나타내는 헬라어로써 “프쉬케”라는 뜻입니다. 영은 “프뉴마”로 표현돼 있고 또 우리의 영혼, 우리의 마음은 “프쉬케”로 주로 표현을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목숨, 자기의 생명, 어떤 영에 속한 그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고, 내가 내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잃어버릴 것이고,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이 마음을 포기하면 즉, 예수님을 위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체험하기 위해서 자기의 마음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에 그제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자기 목숨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교묘하게 이 현실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마음의 상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경험이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과거의 상처와 쓴 뿌리들까지 자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또 타락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봐주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에는 늘 불안함과 공허함 그리고 무가치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 안에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했을 때에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남으로 하나님의 영 안에서 누렸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는 늘 결핍이 있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구로써 늘 뭔가를 밖에서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애쓰며 살아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만족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미래 언젠가는 성취하고 미래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으리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갖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타락한 존재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죽는다는 의미이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내 미래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주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미래를 주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이지요. 결국에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 과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또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지금 이 순간에 자기의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면서, 그 행위의 결과까지도 자기가 책임지고 컨트롤하고자 하는 그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뜻입니다. 그 마음의 허망한 생각들, 잡다한 생각, 불필요한 생각들 이러한 것들이 사라질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나가 발견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희락과 평강을 체험하게 될 때에, 성령 안에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가득함으로 우리 입술로 선포함으로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여러분! 마귀들은 날마다 우리 주위를 돌면서 우리의 틈을 노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틈이 잘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돈과 물질로, 사람과 관계로, 질병으로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듭니다. 결국 마귀들은 우리가 거기에 묶여 들어가서 염려,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 미움, 증오, 원통, 분노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에 우리가 평상시에 가졌던 그 수많은 감정적인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고, 그 스트레스가 자율신경계, 내분비계,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고 약한 부위로 뚫고 나와 암이며 각종 질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 안에 일치될 때에 우리 육신에 하나님의 영광이 운행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신성한 건강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리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이 나라고 믿는 거짓자아에 속아서 사는 겉사람의 삶을 포기하시고, 바로 그 겉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라야만 그제야 내 속사람이 뭔지를 체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멘!

 

겉사람 안에서 마귀들이 놀고 우리를 묶고 들어갈 때마다 내어드림을 해야 합니다. “주님! 이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 마음의 허망한 생각일 뿐입니다. 오래된 습관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습관의 자동반응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생각일 뿐이고, 상상일 뿐입니다. 주님! 이 현실을 치유하고 이 현실을 해결하는 것은 주님이시지 내 마음이 아닙니다.” 아멘! 현실을, 상황을, 질병을 부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있지만 내 마음이 그걸 바라볼 때에는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심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마음, 오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고 자기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서 추론하고 생각하고 그걸로 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실은 상황은 있고 문제는 있고 질병은 있지만,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필요하고 허망한 생각들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겁니다. “주님! 이것은 내 마음일 뿐입니다. 이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있는 것이 사라질 때 내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체험되어질 것이고, 바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리 기도했지만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말씀은 바로 새 생명 안에 있는 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지 “내가”가 있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살 때에 이제는 내 이름, 내 신분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 주께서 역사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속사람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로서 3년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잡이 밖에 할 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구약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 베드로 안에 들어오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이 임할 때까지 이 성을 떠나지 말고 유하라”하셨고, 마침내 오순절 날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이 베드로 안에 들어온 이후에 그는 첫 단독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믿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열심 있는 신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는 신자로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자기 마음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정말 수십 년 동안 깨달으면서도 우리 마음속에는 지금은 아니지만 또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거룩해지고 조금 더 열심히 헌신하고 하나님 앞에 더 기도하면 될 거라고 믿는 어리석은 삶을 계속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나라 자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가지고 무슨 노력을 하느냐, 극기 훈련을 하고 자신을 학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우리가 지난 시간에 “속사람으로 기도하자” 할 때에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아야 됩니다.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불러봐야 그곳에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 때는 내 마음은 내 믿음을 갖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 우리 마음이 나라고 생각할 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미래를 십자가에 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를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할 때에 그 기도 자체보다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훨씬 더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할 때에 손은 얹는 건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 낫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우리가 컨트롤하고 우리가 통치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행위의 결과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 공간이 은혜의 공간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을 자기가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얻은 줄로 믿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정신력이나 우리의 의지력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치유자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의 의지력으로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받아내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때, 포기하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할 때에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행위의 결과, 그 결과는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만 관심을 갖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순간에 내 생각이 사라지고 그리스도께서 행하십니다. 아멘!

 

겉사람의 말과 속사람의 말을 이렇게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에 접속된 자들입니다. 아멘!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고 있어요. 그러나 내 마음을 잠시라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진 자는, 순간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의 기도생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겉사람의 말로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 감정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서 만들어집니다. 과거의 경험에 자기의 이성을 더해서 그 제한성, 한계성 안에서 자기의 입술로 주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부분 하는 기도는 결국에는 자신의 경험, 자신의 배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초로 해서 말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기도에서 무슨 능력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온 우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영광에 우리가 접속돼 있고 우리는 영생을 가진 그분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죽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고 난 다음에 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바로 거짓 자아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기를 두려워해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을 부인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끝장을 내어버리세요. 그제야 새로운 자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그리스도의 희락과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포기하고 나면 이 모든 말씀이 너무나 쉽게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고 삶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질병 때문에 집회에 오신 분들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베드로전서 2장 24절의 말씀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면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하셨지만,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요한복음 15장 7절의 말씀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 안에”라는 뜻은 내 마음에 있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자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을 통해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 말씀에 따라서 선포할 때에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있는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방탕한 모든 것을 다 구해도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것은 죽음이 뭔지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약속의 말씀이 있을 때 그 말씀에 따라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무엇이든지”의 의미가 너무나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말씀이 이 땅에 주의 뜻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질병을 치유하는 것도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 내 질병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여러분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 이 기도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이런 관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 때 천지만물을 지으신 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3:6

 

내가 말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베드로가 말했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에 영적인 힘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겉사람의 말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이 나타나면 여러분 육신에 묶여 있고 악하고 추한 감정들, 그 독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기 때문에 속사람의 말의 능력은 겉사람의 수만 배, 수백만 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자입니다. 내가 가는 곳이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이고 내가 서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서 계신 곳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꿈을 꾸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8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3

 

우리 마음에 가득한 것은 우리 겉사람이 주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현시된 세상이라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현시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입니다. 그것이 위의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가르쳐주시고 기억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말씀을 공부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레마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아멘! 내가 배웠던 것을 내가 기억해서 풀어내고 이 상황에 말하는 것은 능력이 없습니다. 겉사람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의 말은 내 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성령님께서 감동 주시고 조명해 주셔서, 그 말씀을 오늘 이 시간 나에게 레마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멘!
예, 그렇습니다.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지금 여기 있는 모든 보이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타락하고 마귀의 흑암의 권세가 이 세상을 주도함으로 모든 피조세계는 왜곡되고 변질되고 타락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진리이고 사실이라고 보고 타락된 내 마음으로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한 것을 습관화시켜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한 세상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온전한 세상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으로 보이는 피조세계를 지으신 것입니다. 이 모든 피조세계는 말씀의 거울상입니다. 우리가 봐야 되는 것은 타락되고 변질된 피조세계를 타락한 내 존재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 것을 보려면 이 세상을 지은 말씀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 같이 땅에서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자녀의 삶입니다. 아멘!

그런데 내 마음으로 그 말씀을 머리에 집어넣어서 해석하고 판단해서는 나 자신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결국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성령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셔야 됩니다. 그럴 때 이 피조세계를 바꿔가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이 바로 자녀의 삶이고,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이 땅에 실체로 나타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이 우리의 매일 삶이 되어야하고 자녀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마귀가 두루 다니면서 내 앞길을 수 만 가지 상황으로 막고 있는 것들이 영적 전쟁입니다.
내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말씀으로 이 상황을 보고 이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두렵고 떨리고 죽을 것 같고 염려되고 걱정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요? 그것은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희락과 사랑을 뿜어낼 때에 공기의 밀도가 바뀌고 여러분의 가정이 바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가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이제 겉사람으로 말하지 맙시다. 성경을 통째로 암기했다 할지라도 겉사람으로 말해 봐야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 가지 말씀을 들었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다 암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이 세상을 볼 줄만 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입니다. 이미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겉사람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이 조명되어지고 그것을 통해서 볼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믿기어지기 시작하고 그 일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일이 이루어진 걸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상상입니다. 지금 이 현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 것을 보는 것입니다. 아멘!
지금 내가 간암에 걸렸다면, “주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이 말씀대로 내가 그것을 그려보기 시작할 때 성령님께서 그려주시는 것입니다. 간이 깨끗하게 되고, 온전하게 되고,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괜찮은 것이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말해야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아멘! “주님! 내 간이 깨끗케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치유된 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여러분!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미래를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입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현재로 끄집어들이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자기 마음의 판단으로 그려보고, 자기가 미래를 잘되게 통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염려,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기도 열심히 한들 어떻게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까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역사하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그렇습니다. 마음이 주체가 되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님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체험하게 하려하심입니다. 날마다 이 삶을 함께 삽시다.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을 바꾸십시오. 아멘!
여러분! 제 말에 관심 갖지 마시고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들으셔야 합니다.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세상으로 바꾸
어야 합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서 지금 이 집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질병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 부분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십시오. 저는 그것을 <킹덤라이프>라고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삶!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서 <킹덤라이프>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핵심은 내 마음이 내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멘! 마음은 없어지지만 나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날마다 이루어집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 부분에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저희 가족들은 조금만 실수하면, “아! 그거 아빠 마음이지, 아빤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성질낼 일도 없어요. 다툴 일도 없이 웃고 맙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못하고도 먼저 그렇게 해 버립니다. “그건 내가 아니고 내 마음이었어.” 예. 욕먹기 싫으면 제가 먼저 해 버립니다. “미안해! 이건 내 마음이지 난 아니야.” 여러분! 그 과정 가운데 점점 여러분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을 예수님께 내어드릴 수 있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빛이 비치기만 하면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처럼, 한순간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느낄때에 마음에 있던 그 더러운 것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허망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가 아니고 내가 만들어낸 허망한 상상이고 생각이고 불필요하고 잡다한 마음의 생각일 뿐입니다. 감정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상처, 쓴 뿌리다 사라집니다. 경험해 보세요. 아멘!

 

아직도 내가 과거가 어때서 누구 때문에 뭣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고,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했지만 그것은 울고불고한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를 지지 않으면 다시 올라옵니다. 심리학을 통해서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은 우리 마음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하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영적인 존재임을 묵상해야 되고, 체험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니라” 그러나 더 중요한 말씀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만이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으리라”입니다. 우리는 믿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생명 안에 있는 자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을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