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장. 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4
III장. 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4
5. 킹덤빌더의 삶의 요소 – 일(직업)
일(작업)
1. 일
1) 일의 본질적 의미와 변질
일의 성경적 의미
타락후 일의 의미
2) 그리스도인의 이원론적 사고
3) 일과 의식주
4) 일과 문화
5) 일과 능력
6) 일과 소명
7) 일과 교회
8) 일과 안식
9)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4) 일과 문화
구원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 각자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고, 그곳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동일한 영을 가진 사람들로 채우기를 원하신다.
그곳은 하늘에 있는 어떤 곳도 아니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 가는 곳도 아니고
1) 현실의 삶에서 우리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2) 우리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 곳이고, 3) 경건치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4) 세상적인 생각과 방식이 가득 찬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약속의 땅인 것은 바로 하나님이 친히 영광으로 임하심으로 이 땅을 바꾸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허락하신 땅은 이 세상의 가시적인 물리적인 장소이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영적인 것이다. 모든 상황을 악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사람과 직업이 아니라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거짓된 생각과 타락한 사고체계, 그리고 정사와 권세, 어두운 세상 주관자의 영향력 등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4-5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오늘날 문화는 모든 일을 효용성, 가치, 속도에 기초하여 판단한다. 그러나 인생은 이것으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희락(즐거움, 기쁨)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오늘날 효용성과 가치와 속도에 기여하는 자유와 희락은 높이 평가하지만(즉, 자유와 희락을 더 누리기 위해서는 효용성, 가치, 속도에 기초하여 일해야 한다는 생각) 효용성, 가치, 속도와 관계없이 누리는 자유와 희락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와 희락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나타내는(하나님의 친밀함을 통해서) 것에서 나와야 한다.
또한 지금의 세상의 문화적 기반과 사회의 각 부분을 이루는 중요한 분야와 영역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흔히 문화를 구성하는 9대 영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사회와 문화의 주축이 되는 영역은 미디어와 인터넷, 정부, 교육, 비즈니스와 금융, 종교, 예술과 오락, 가정과 사회보장제도, 과학과 기술, 건강과 의료이다. 이 영역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서로의 영역에 비가시적으로 비의도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이 사회와 문화의 영역은 교회와는 전혀 다른 규범과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바꾸거나 정복할 수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권세와 어두운 세상 주관자,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7장에 있는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을 탄 음녀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각 영역에서 형성된 일터 문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위선의 문화 (광고나 홍보, 마케팅으로 가려진)
2) 과정보다는 실적과 결과를 중시
3) 경쟁적이고 투쟁적인
4)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상명하복
5) 개인윤리를 무시하는 집단주의 조직
6) 술과 향락 중심적
7) 혈연, 학연, 지연 등의 관계 중심적
우리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도래케 하기 위해서는, 만유를 회복시키고 원수를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기 위해서는) 이 아홉 개 영역을 정복해야 한다. 그리고 영역이라는 각자의 산들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산들이 합력함으로서 비로소 이 사회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사회, 바로 하나님 나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새로운 사고체계를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우리는 사회의 문화가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문화는 그 사회의 1-3%의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다. 실제로 소수의 리더와 네트워크가 각 문화의 영역을 통제하고 변화시키고 주도한다. 다른 말로 문화의 변혁은 탑-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볼 때 역사 이래 인류의 문화는 지금까지 몇 천 명 이내의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고 주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변질된 사회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동성애를 허용하는 사회를 생각해 보라), 반대로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변화된 사회문화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의 추종자이지 창달자가 아님을 알 수 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추종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끌어갈 소수의 리더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기독교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 될 만큼 기독교인수가 늘었고 교회가 부흥했지만, 사회의 문화는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을 가르쳤지만, 사회의 각 문화영역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문화영역의 정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을 쪼개어 교회를 섬기고 주일학교 교사의 역할은 했지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영역에 문화(시스템, 규범, 체제)를 바꾸기 위한 소명을 받고 그 일에 자신을 던져 넣은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 영역에서의 성공이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왜냐하면 각 영역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는 총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영역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이 사회와 문화를 대변하는 열개 영역에 킹덤빌더가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다시금 사회의 모든 영역에 여호와의 전이 회복될 것이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 사2:2-3
5) 일과 능력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능력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로 능력이란 전문지식이나 숙련도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능력에는 우리와 육과 혼적인 힘만을 의미하며 영적인 힘이 배제되어 있다. 즉, 능력이 있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남보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능력에는 비성경적인 적자생존의 법칙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일에는 인간의 노력과 능력 이전에 하나님의 본질이 나타나야 한다. 본질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즉, 일에는 인간의 능력이라는 비윤리적인 경쟁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거룩한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이것은 경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의 목적이 남을 이기거나 살아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나타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신3:24
우리가 매일 행하는 작업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묶여 있는 우리의 마음(생각, 감정, 의지)에 따라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 마음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하나님의 탁월함이 나타나야 한다. 실제 우리는 하나님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이 땅에 주께서 주신 소명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지식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에 힘입어 그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0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29
이 세상은 일(작업)을 통하여 경쟁에서의 이김, 성공, 결과 등을 요구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분의 나타남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실 때 그분은 그의 일을 행하신다. 그분이 행하실 때 어떤 인간도 상상할 수 없는 그분의 탁월함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탁월함의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통하여 현실에 묶인 내 마음이 눈앞에 보이고 생각되고 느껴지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영의 말씀에 의해 변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말씀의 실체가 이루어지도록 행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3
우리는 우리의 가진 소유와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섬긴다. 그것은 교회에서나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일하는 방식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출31:1-7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는 자는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로, 골리앗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때 하나님의 권능이 다윗에게 임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17:45-47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고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슥4:6
6) 일과 소명
우선 직업이 소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직업”의 라틴어 어원은 “보카레(vocare)”인데, 이것은 부르심을 뜻한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을 가진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직업과 일은 귀한 것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바처럼, 일의 어원이 예배와 동일하다. 그 말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전3:22
실제 삶에 있어 가장 힘든 일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일을 찾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열심히 살아가거나 혹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는 진정한 내적 기쁨과 평강, 그리고 자유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잘못 선택한 이 직장이나 일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이나 직업을 찾아야 하는가?
(1)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하에서 주어진 일에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라.
우리는 흔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이 곳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행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소명은 각자
에게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아야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을 찾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의 종류와 신분을 가지고 적성이나 하나님의 소명을 운운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삶이나 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마음의 태도의 문제이다. 우선, 당신이 행하는 일과 신분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도해 보라.
(2) 지금 처한 위치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 오히려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일까에 대해서 기도하라. 지금 처한 상황과 처지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이용해서 벗어나는 것이 최상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때에 그 상황을 변화시키신다.
(3) 하나님이 가장 잘 나타나시고 더 기뻐하시는 일로 인도함을 받도록 기도하고 그것을 추구하라.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고자 하신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 각자에게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은사를 주시며 어떤 일을 행하게 하신다. 우리가 그 일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을 추구할 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게 되며,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일, 직업, 신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바로 자신의 소명에 대해 인도함을 받는 것이다. 진정한 소명이란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나를 통하여 가장 잘 나타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생각을 하고 느끼며 일들을 행하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는가로 주어진 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잘 나타나실 수 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실 때 그분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나를 만족시키는 일이나 행위에는 기쁨과 성취감은 있지만 거룩함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없다. 그러나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나 행위를 하면 할수록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고, 그분과 더 깊은 친밀함을 누리게 된다.
우리의 주어진 일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 가운데는 탁월함(능숙함)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능력이 가장 잘 나타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가? 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이 가장 잘 나타났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1)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서 가장 잘 나타는 일, 행동, 느낌이 무엇인가?
2) 당신이 그 일, 행동, 과정을 좋아하는가?
3) 그 일이 이 땅에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소명을 알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전부를 드리고 싶어 한다. 문제는 소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그것을 알면 최선을 다해 섬길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거나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한다는 식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소명을 알기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구하기 전에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바로 그 일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다. 우리 또한 이 사실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더 나타나시면 나타나실수록 나에게 주신 소명을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과거, 경험, 지식, 신분 등에 기초하여서 “주님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라고 기도한다. 진정한 소명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32:8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오직 한 길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식들을 대할 때 모든 것을 결정해서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따르게 한다면, 그 자녀는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길과 선택을 두시고 우리가 그 길을 택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하나님을 알아가며 더 성숙해지기를 원하신다.
나의 경우를 보자면 나는 천성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전할 때면 나는 내가 아닌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 마음에 말씀이 부어지고 그 말씀대로 입을 열어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재능이 아니라 은사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직업이나 일들을 통해서 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과 그분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단 순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다양한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서 서서히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소명을 알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진지함’과 ‘순종’이 필수적이다. 삶에 대한 진지함이란 자신의 삶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도록 하고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며, 순종은 자신의 재능이나 기분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감동에 따르는 것이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7:20
하나님은 각자에게 준 소명을 통하여 그분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자의 일터에서 직업과 직분을 통하여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일을 행하기 위한 은사가 주어져야 하며, 또한 재능이 하나님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수단(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수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셔서 맡기신 일(소명)은 당신에게 가장 기쁨을 주고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일속에서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와 더 깊은 연합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그 일을 통해서 우리는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소명을 찾는 것이야 말로 일의 귀천을 떠나서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세상의 평가는 소유, 통치, 공급에 기초한 성공으로 판단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얼마나 더 나타내었는가로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