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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빌더의 일상 삶

킹덤빌더의 일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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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장. 킹덤빌더의 일상 삶

 

1. 삶의 성경적 이해

삶에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vision-driven life)이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desire-driven life)이 있다. 전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신의 삶을 계속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삶이고, 후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정한 목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일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 우리는 매일 만남, 일(작업), 시간, 재정, 건강과 관계하고 있다. 따라서 인생은 어떤 목적[신의 섭리(providence)에 의해서 주어진 목적 혹은 자신이 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운명(destiny)]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 다섯 가지의 삶의 요소와 관계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볼 때 단지 목적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삶의 요소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가, 다른 말로 어떤 생활습관(life style)을 가지고 있는가가 우리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매일의 습관화된 과정의 총합이지 결코 어떤 사건이나 숙명(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만남, 일, 시간, 재정, 건강과 같은 삶의 요소들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화와 균형이라는 것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다. 곡예사가 줄타기를 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조화와 균형이다. 곡예사는 봉을 좌우로 계속 움직이면서 균형을 잡아간다. 다른 예로 아이들 방에 걸려 있는 모빌을 생각해 보라. 어느 한쪽의 모형이 흔들리면 다른 모든 쪽의 모형도 동시에 흔들리며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 모든 삶의 요소 중 하나에만 관심을 가지면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없게 되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그중 한두 가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에 문제가 있으면 결국 그 문제 때문에 나머지 요소도 발목이 잡힌다. 예를 들어 능력은 있는데 사람들과의 교제가 좋지 않다거나, 돈은 많은데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삶의 요소들이 조화와 균형을 잡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삶의 요소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 대해서만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렸는지를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인식될 때는 잠재적인 부조화와 불균형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우리가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이미 수습하기에 너무 늦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잠재적인 불균형으로 실제 삶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의 요소들이 서로 균형 잡히지 않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끊임없이 세팅을 다시 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매일 새로운 일거리들이 더 많아 지고, 우리 능력이 허용하는 한 우리는 더 큰 욕구를 느끼게 되고 더 많은 일들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서 우리는 여유도 없이 자신의 심신의 모든 힘을 다 소진하게 된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margin)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쟁사회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여유 대신에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삶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스케줄을 짜는 것과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다. 스케줄은 일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고, 우선순위는 정말 중요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스케줄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럴 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에 기초하게 마련인데, 이 욕구는 각자 인생의 비전과 목적을 결정하는데 기초를 이루는 세계관(신념체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세계관은 대부분의 경우 어릴 때의 무의도적이고 무의식적인 믿음을 기초로 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그 가정이나 주위환경 또는 권위자의 삶의 태도가 그 사람의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시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자신의 생각과 삶의 태도가 변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그 세계관은 변화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따른 하나님나라의 삶보다는 장소적으로나 행위적으로 성과 속을 나누는 이원론적인 삶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1) 당신의 마음의 보물은 무엇인가?

일, 사람, 재정, 건강, 시간인가? 아니면 그 모든 관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우리가 어떤 것을 중요시하고 귀하게 여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그곳에 있게 된다. 결국에는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위해 존재하게 되며, 그곳에 묶이게 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6

 

2) 욕구의 근원은 무엇인가?

아브라함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동인이고, 우리는 이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5단계 욕구설에 기초해서 우리는 욕구를 단계적으로 채워가지만, 그 욕구의 근원은 세상적으로 말하듯이 단지 태생적인 것일까? 성경적으로 볼 때 욕구의 근원은 죄로 인해 깨어진 심령의 결핍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욕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소유권, 통치권, 공급권을 의미한다. 바로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서 이 땅에서 다스리고자 하는(소유하고자, 통치하고자, 공급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본래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자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탐욕이고, 이것을 가진 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마귀의 속임에 의해서 교만과 욕심이 바로 죄를 낳게 된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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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우리를 지으시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이루는 존재로 만드셨다. 다스리는 권세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고, 우리에게 청지기 직분으로서 그 권세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6-28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5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존자에서 자존자의 삶을 살 때, 다른 말로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이 다스리는 권세(소유권, 통치권, 공급권)인 것이다. 우리의 삶을 다시 정리해 보면 우리는 죄를 짓고 난 다음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즉 자신이 다스리는 권세의 주인이 되고자 다섯 가지 관계요소를 이용해 자신의 소유, 통치, 공급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초대교회 때 사람들이 성령 강림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다시 우리에게 임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그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난 후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 바로 소유, 통치, 공급권의 이양이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3-47

 

우리는 다섯 가지 관계요소를 가지고 자신의 소유, 통치, 공급권을 가지는 만큼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을 더 크게 그리기 위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더 크게 하기 위해서) 이 다섯 가지 관계요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만약 이 다섯 가지 관계 요소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무너지고 만다. 왜냐하면 자신은 다섯 가지 관계요소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2. 기독교 신자의 삶에 대한 성경적 이해

기독교적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크게 나누면 신자의 삶을 사는 자와 자녀의 삶을 사는 자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를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후자를 예수님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받았으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거하는 자녀의 삶 대신에 여전히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다). 이 경우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신자일지라도 다시 두 가지 부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기독교인이다. 이런 부류의 기독교인은 직장의 일과 신앙을 철저히 분리시킨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에서 신앙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시킨 채 이방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활한다. 신앙생활을 단지 자신의 형통과 축복을 위한 헌신과 천국가기 위한 면죄부 정도로 생각한다.

두 번째는 기독교의 원리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기독교인이다. 이런 부류의 기독교인들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고자 한다.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삶은 살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보다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왕따 당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친밀함보다는 자신의 의로 율법을 지키고자 애쓰는 삶을 산다.

두 부류 모두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알지만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가는지에 대해서, 즉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이라는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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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다(갈라디아서 2장 20절 후반부의 번역은 “live by the faith of (in) the Son of God 혹은 the faith which is in the Son of God”이지 “live by trusting the son of God”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과거 육체 가운데 있을 때의 자신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한다. 이러한 삶은 그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둔다는 점에서는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이미 그 삶은 일, 만남, 재정, 건강, 시간 모두에 스스로 종노릇함으로서 그것 자체가 자신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될 때 제한된 동일시(자신의 마음에 묶여 있는 것을 자기로 인식하는 의식)를 통하여 자신을 규정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일, 관계, 재정, 건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삶과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삶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성령과 말씀 안에서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면 실제 삶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1)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놓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게 된다.

다른 말로 다섯 가지 관계요소가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혹은 예수님을 닮아 가기 위해서 일하고, 관계하고, 돈 벌고, 건강을 유지하는 삶을 산다. 따라서 내가 예수님에게 더 잘하기 위해서는 일, 만남, 재정, 건강, 시간 등이 모두 잘되어야 하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도와주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내가 더 헌신할수록 하나님께서 그 부분에 더 축복해 주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결국은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2) 이런 사람의 경우는 세상과 분리되는 삶을 살게 된다.

세상보다는 예수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과 예수님을 분리하여 세상을 버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이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을 더 키운다. 왜냐하면 영향력을 넓히는 만큼 예수님을 위해서 더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영향력은 세상과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영향력은 예수님을 위해서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5:4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2-4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2:15-16

 

3) 자신이 스스로 주인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자신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종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종에게는 자유함이 없다. 단지 섬기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아니라 그것 이상, 즉 그 말씀의 실체를 나타내는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4:1-7

 

4) 결국 세상의 삶은 세상의 방식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세상나라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세상과 분리되는 이원론적인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의 복된 소식을 주셨고, 이 땅에 도래한 그 나라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17:14-18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호 “킹덤빌더의 삶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서 알아보자.

 


 

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Ⅰ장. 킹덤빌더의 일상 삶

1. 삶의 성경적 이해
2. 기독교 신자의 삶에 대한 성경적 이해

2014년 3월호부터 2년 6개월에 걸쳐 「HTM 지상세미나」 섹션에 연재하였던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시리즈가 2016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30회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실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에서 맞이하는 다섯 가지 삶의 요소(일, 만남, 시간, 물질, 건강)를 하나님나라의 사고방식으로 새롭게 조명해보는 <킹덤빌더의 실제적인 삶>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원하는 모든 킹덤빌더들의 열독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