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

서칭 포 슈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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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힐링시네마
서칭 포 슈가맨

 

작가 이애경

 

미국에서는 앨범이 단 여섯 장 밖에 팔리지 않은 무명가수이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전설로 남은 가수 ‘로드리게스’에 대해 파헤치는 실화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성을 불쑥 넘을 정도로 감히 허구적이고 픽션적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믿을 수 없는 잔잔한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이 감동은 후반부에 가서는 뜨겁게 무언가를 솟아오르게 이끌어주는데, 그것은 아마 우리 각자의 삶속에 숨어있는, 로드리게스를 닮은 무엇들일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꿈일 수도 있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 사역일수도 있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이 땅에서 무명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질문들일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가 주는 실화적 구성이 상당히 매력적이라 먼저 영화를 본 뒤 이 글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이 이야기는 ‘로드리게스’라는 미국인 가수에 대한 정보와 행적을 찾기 시작한 두 명의 남아공 팬으로부터 시작된다. 70년대 초반 ‘식스토 로드리게스(Sixto Rodriguez)’라는 멕시코 계 무명가수는 디트로이트의 한 허름한 바에서 노래를 하던 중, 당시 소울음악 분야에서 유명하던 한 프로듀서로부터 앨범 제작 제의를 받는다. 그 프로듀서는 밥 딜런 보다도 훨씬 좋은 곡들을 만들어내는 이 가수의 멋진 가사와 메시지가 담긴 음악이 상업적으로 크게 히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앨범을 제작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첫 번째 앨범 는 대중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고 망한다. 레코드 회사는 프로듀서를 스티비 원더 등의 앨범을 제작한 프로듀서로 바꾸고 두 번째 앨범 를 만들지만, 아무도 그런 음악이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패한다. 두 장의 앨범이 연이어 최악의 실패를 하게 되고, 결국 로드리게스는 레코드 회사와의 계약이 파기되어 미국 레코드업계에서 사라진다.

한편 저 먼 바다 건너에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시 인종차별과 사회탄압 등으로 불만에 가득 차 있던 남아공의 젊은이들에게 우연히 전달된 그의 앨범 가 큰 영향을 미치며 대히트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음악이 당시의 남아공의 인종차별 문제 등사회적인 상황과 저항정신을 담은 듯 자신들의 심리를 대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남아공에서 로드리게스는 약 2~30년 동안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보다도 더 신화적인 존재로 꼽히게 되었고, 그의 앨범은 웬만한 가정에 하나씩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히트를 쳤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인 가수 로드리게스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그저 ‘무대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한 아티스트’, ‘무대에서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생을 마감한 기괴한 아티스트’라는 소문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이렇게 ‘설’로만 존재하던 로드리게스의 행적을 두 팬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팬들은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온 미국 여성의 짐 속에 그의 앨범이 있던 것이 로드리게스의 앨범 가 남아공에 처음 들어오게 된 경로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은 친구들을 통해 입소문으로 음악이 번져나가기 시작하며 남아공에서 유명해졌다고 추측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고 사라져버린 로드리게스의 앨범이, 남아공에서만 50만장에서 백만 장 정도의 판매를 올리는 초대형 히트앨범이 되었던 것이다.

팬들은 로드리게스라는 가수가 미국에서는 전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해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도 더 어려웠다. 그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로드리게스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다. 그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하고, 또 그의 앨범을 제작했던 제작자들을 만나서 로드리게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가 쓴 노래 가사를 토대로 그가 살았을 것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그에 관한 정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디에 가면 그를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끝에 그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남아공의 신화 로드리게스가 무대에서 죽은 게 아니라, 현재까지 살아있다는 소식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뤄지고 있는 일들은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한 가수가 남아공에서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설정은 믿기가 힘든 사실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7~80년대 인데다가, 남아공이 동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가수도 팬들도 서로 이 사실을 모른 채 20여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것 자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픽션적이다.

이 만화 같은 이야기가 실화이기에 그것을 보는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슬며시 이끌어다준다. 내가 젊을 때 했다가 포기했던 그 무엇, 지금도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노력을 들이고 있는 그 무엇, 한때 패기와 열정으로 시도했으나 악조건과 불리한 상황에 부딪혀서 좌절하게 되었던 그 무엇, 우리 모두가 인생에 이런 그 무엇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드리게스처럼 과거에 좌절되어 사그라진 그 무엇이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전혀 뜻밖의 시기에, 크고 아름다운 꽃을 맺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천국의 상급을 믿고 기대하며 살아가기에, 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던 그 일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내가 심고 있는 씨앗이 아무리 물을 줘도 자라지 않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역이 전혀 커나가지 않고 진전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마음과 시간과 진심을 다해 돌봐주고 케어해주고 있는 어린 양들이 전혀 자라나지 않고, 심지어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들이 있어 심신이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다. 열정과 꿈을 갖고 시작했지만, 결국 포기해버린 소명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심은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을 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시기와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평생 친구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그가 죽고 난 뒤에서야 그 친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듯이,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신다. 내가 심은 씨앗은 반드시 그 결실을 맺게 된다.

때문에 결과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심는 일을 그만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또 죽을 때까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결과는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다는 것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음악을 심었고, 2~30년이 지난 뒤에야 그 열매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가수로서 실패하고 먹고 살기 위해 노동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음에도 뮤지션 정신만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은 그의 삶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결국 뮤지션으로서의 그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이 증명해주었다. 비록 너무 오랜 시간은 걸렸지만 말이다.

 

로드리게스에게서 요셉을 보다

로드리게스는 두 장의 앨범이 실패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시 평범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자기의 삶의 터전이었던 디트로이트의 공사장에서 일하고, 지붕을 고치고, 쓰레기를 치우는 등 블루 컬러 노동자로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예술가로서의 독특한 정신만은 잃지 않았다.

벽돌공으로 일하는 그의 친구는 한 인터뷰에서 로드리게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는 일을 다른 시각으로 봤다. 마치 중요한 의식처럼 엄숙하게 대했다. 막노동을 하러 오는 길에도 그는 턱시도를 입고 왔다. 그는 신비한 힘으로 주변에 널린 평범하고 비천한 것들을 변화시켰다.”라고. 그의 딸은 “아버지 로드리게스는 사람들이 치우기 싫어하는 오물을 마다하지 않고 손수 나서서 치우는 일을 도맡아 했다.”고 아버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일상은 섬기는 삶이었고, 그저 묵묵히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삶이었다.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래를 했고, 가수가 되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음악을 했다. 그리고 가수로서의 삶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 자기 자리에가서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가난한 멕시코 이민자로서의 삶을 한탄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자존감을 갖고 열심히 살아냈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있는 자리에서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자신의 예술가적 열정을 쏟아 부었다. 막노동을 하러 가는데 턱시도를 입고 갈 정도로 그는 자기 일에 대한 예의와 최선을 다했고, 나중에는 말 못하는 소외계급의 대변자가 되기 위해 시의원에 출마할 정도로 자기 개념이 뚜렷했다. 그것은 그가 일상의 그 어떤 것도 쉽게 보거나 허투루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행동했다. 마치 일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의 모습에서 요셉의 모습이 보인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묵묵하게 자기 일을 잘해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요셉처럼, 그는 일상에서 자기의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리고 요셉이 함께 감옥에 수감 되어있던 관원장들에게 꿈을 해석해주고 난 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국무총리가 된 것처럼, 로드리게스는 평범한 막노동 일을 계속하던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남아공에서 슈퍼스타가 된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존엄과 존경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로드리게스는 이야기하고 있다. 일례로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은 남달랐다. 그는 자기 아이들을 미술관, 도서관에 데려 가거나 특수 계층들이 가는 곳들에 가끔 데려감으로, 예술 작품이나 가치 있는 문화들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디트로이트라는 도시는 가난한 이들에게 이런 것들은 꿈도 꾸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는 원한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준 것이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영혼의 풍부함이 삶에서 훨씬 가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명성과 무명의 사이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 동안 남아공에서 팔린 앨범의 수익금을 되찾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그리고 20여년 이후 찾게 된 명성으로 인해 남아공에서 콘서트를 해서 벌어들인 돈이 많아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 말이다.

첫 번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 영화는 많은 수익금이 남아공에서 불법으로 음반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두 번째, 새로운 인생을 찾은 이후에 남아공에서 벌어들인 돈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다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는 것,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는 코이노니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정도의 명성을 얻고 남아공 최대의 수퍼스타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면 미국에서의 그의 삶도 변화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그는 여전히 동일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40년을 머문 디트로이트의 한 주택에서 소박한 삶을 살고 있고, 여전히 공사장 같은데서 일을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철저하게 이중적인 삶인 것이다.

가수, 혹은 예술가들이 살게 되는 삶은 대략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사는 삶. 또 하나는 오랫동안 자기의 길을 가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으로 남아 비참한 삶을 살다 끝나는 삶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비참한 말로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런데 로드리게스는 이 두 가지 이중적인 삶을 동시에 살아낸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그 상황을 즐기고 감사하며 사는 인물이다. 미국에서는 평범한 노동자로, 남아공에서는 스타로서 최선을 다해 산다. 세상의 것이 유한한 것이고,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외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이라는 것을 아는 것일까. 어쩌면 그의 딸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어떤 것을 추구하고 살아야하는 지를 이미 깨닫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철학은 숨어있던 그가 발견된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이후 그의 삶이 변했지만 그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남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문구는 그의 삶의 철학을 이야기해준다. “누구든 선택할 수 있다. 그는 예전과 같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라고. 그는 아직도(영화가 제작되었던 2010년경 까지도)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40년 넘게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로드리게스를 추적한 두 명의 팬들에게도 믿을 수 없었지만, 당사자인 로드리게스에게도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남아공에서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남아공 팬들에게도,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도 계속해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실제로는 로드리게스의 콘서트 4회가 모두 매진되고 2만 명의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몰려왔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차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가 등장한 뒤 관중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물론 로드리게스의 히트곡 중에 마약, 섹스를 주제로 한 곡들이 있고,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인 성향도 있어 그의 사상에 대해 100% 찬성을 할 수는 없지만, 폐쇄적이었고 닫혀있던 남아공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을 바꾸고 인종차별, 부조리함 등에 대한 인식을 깨우게 했다는 점에서 그의 메시지는 다분히 복음적이다. 빈곤의 도시, 노동자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그런 삭막한 주변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냈고, 그들에게 다른 세상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고, 기존의 생각과 틀을 깨고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노래를 통해 계속해서 자극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아공의 젊은이들은 정부가 인종차별을 유지시키기 위해 시도했던 모든 억압들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어쩌면 로드리게스의 삶은 우리들이 가야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미국에서는 누구도 이름을 알아주지 않는 노동자로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들 중에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가 처음에 앨범을 내고 가수가 됐지만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야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열정과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지만 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한 무명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남아공에서 첫 공연을 하던 날, 전설이 되어 사라진 것으로 알았던 그가 실재가 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선 순간이 찾아왔다. 그의 등장을 알리던 베이스 기타가 연주를 멈추고 약 2분 동안 전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만으로 큰 공연장이 가득 메워졌던 그 장면. 겸손히 허리를 굽히며 “나를 살아있게 해줘서 고마워요!”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나누었던 로드리게스와 관중들의 뜨거운 교감의 순간은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이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한번쯤은 펼쳐지길 기다리고 있는 장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영화에서 로드리게스에게 남아공이 그가 받아들여지는 ‘집’이라고 표현한 누군가의 말처럼, 그 공연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인정받고 응원받기를 갈망하는 집, 본향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을 응원하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는 그곳에 초대받은 나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지도 모른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레이스를 달려온 나에게 “참 잘했다!”고, “너는 우리에게 전설 같은 존재!”라고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쳐주는 그 결승점에 선 나 자신을 언제나 가슴에 품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