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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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힐링시네마
안경

 

작가 이애경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바닷가 오지 마을. 마음의 짐을 잔뜩 짊어진 듯 큰 트렁크를 끌고 이곳을 찾아온 한 도시 여인과 느리고단순하게 사는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의 충돌이 작은 소란을 일으키듯, 이 영화는 인생을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들의 태도에도 작은 소란을 일으킨다. 목적도 모르고 쉴새없이 달려왔다면,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이 영화가 주는 느긋함과 여백 속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영화에서처럼, 가끔 안경을 벗어던진 채 다소 흐릿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여겨질 때까지 말이다.

 


 

일본영화에는 그것에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감동이 있다.액션, 스릴, 드라마가 있는 할리우드식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영화는 어쩌면 하품만 나오게 만드는 무미건조한 영화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영화 <카모메식당> 으로 삶의 섬세함을 표현한 유명 여성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음식, 여백의 미가 모두 담겨있는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은 슬로우 라이프. 복잡하고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작은 것이 주는 것들의 소중함을 찾는 라이프 스타일을 응원하는 영화다.

담담한 느낌으로 일상을 그려내는 이 영화를 잘 들여다보면 메시지들 또한 담담하고 소박하게 숨어있다. 여백이 있고 여유가 있는 영화. 그래서 그걸 찾는 것은 보는사람들의 몫이다. 급하게 빨리 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놓치기 쉬운, 하지만 여유를 갖고 마음을 비우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잔잔하고 충만한 기쁨을 선물하는 영화인 것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먼 가고시마 요론섬으로 여행을 떠나온 대학 교수‘타에코’. 그녀가 큰 트렁크를 끌고 들어간 곳은‘유지’라는 사람이 운영하는‘하나다’민박집이다. 유명해지면 손님들이 많이찾아오게 되어서 싫다고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간판을 만들어놓고 민박집을 운영을 하는 유지의 주변에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등학교 생물여교사 ‘하루나’가있고, 매년 봄이 되면 이 마을로 와 바닷가 방갈로에서 빙수를 파는 의문의 아주머니 ‘사쿠라’가 있다. 여기에 타에코가 흘러들어왔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질적인 무엇처럼 섞이지 못하고 삐거덕거린다.

아침에 타에코의 방안에 들어와서 눈을 뜰 때까지 앉아있는 사쿠라식의 아침인사,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어야하는 식사시간 등 개인주의적인도시의 삶에 익숙한 타에코는 이 바닷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왠지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게다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타에코를 힘들게 만든다.

짐을 푼 타에코가 이 마을에 관광할 곳이 뭐가 있냐고 묻자 민박집 주인 유지는 이곳에는 관광할 것이 없다고하며, 마치 왜 관광을 하려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대신 그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색하기(젖어들기)’를 한다고 설명해준다. 사색한다는 것의 개념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는 마을을 산책할 때 ‘사색하거나 젖어든’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난다. 방파제에 무상념으로 앉아있는 아주머니, 바닷가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주민. 그들이 하는‘사색’을타에코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아침마다 바닷가에 모여 피아노소리에 맞춰 사쿠라가 개발해낸 ‘메르시 체조’라는 유치한 체조를 하는동네 주민들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 그녀는 결국 다른 숙소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한다.

가까스로 다른 호텔을 찾아가지만이곳은 더 기상천외한 풍경이 펼쳐진다. 땀을 흘리고 먹는 밥이 맛있다며, 호텔 손님들에게 밭일을 강요하는 것. 타에코는 이 괴상한 마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짓고 돌아서 나온다.
사쿠라와 유지는 민박집을 나가버린 타에코를 걱정하고, 이상한 호텔을나온 타에코는 트렁크를 끌고 나와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밭길 사이로 그저 걷기만 한다. 그러던 중 그녀를 걱정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쿠라를 발견하고 그녀는 말없이 사쿠라의 자전거 뒤에 타고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간다. 트렁크는 길바닥에 버려둔 채.

그녀가 사쿠라의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은 하루나와 민박집 주인 유지의 부러움을 산다. 그들은 입을 모아 나도 타보고 싶었다며 부러워한다. 사쿠라의 배려와 관심을 받는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하루나에게 이 사건은 질투를 느끼게하는 일이 된다.

민박집에 돌아온 타에코는 조금씩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몰래 체조를 따라 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쌓았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덧 바닷가에 앉아 ‘사색’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색하기 혹은 젖어들기

타에코를 찾기 위해 바닷가 시골 마을을 찾아온 제자가‘사색하기가 최고인 곳’이라고 극찬한 이 마을은 어떻게 보면 심심한 물맛 같은 맛이 느껴지는 곳이다. 작은 마을과 바다가 전부. 아무것도 없기에 사색하기에는 제격이지만 도시 사람들에게는 꽤나 지루하고 심심한 장소일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계속 강조되는 ‘사색’이란 무엇일까. 영화에서는 누군가 깊이 생각하고 추억을 생각하는 것을 사색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은 지나가는 것들을 진득이 기다리는 것이 사색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흐르는 순간들을 즐기며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후회는 없고 매일매일 단순한 일상을 살며 순간을음미하며 살아낸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사색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잘 할수있는것과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사색하거나 젖어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바로 가만히 앉아있는일. 타에코의 모습에 투영된 우리자신도 그들이 하는 사색이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사쿠라의 빙수, 코이노니아적인 삶

이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사쿠라의 빙수를 매개체로 형성되었다. 민박집의 주인 유지가 ‘내가 빙수를 먹지 않았다면 이런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말이다.

사쿠라는 매해 봄이면 이곳에 찾아와 빙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그녀에게 나누는 것은 기쁨이다. 그리고 사쿠라의 빙수를 먹는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대신 지불한다. 그것은 노동의 형태로 지불되기도하고, 해지는 노을 저녁 만도린을 연주하며 불러주는 노래로 지불되기도 하고, 예쁘게 고이 접은 종이인형으로 대신 되기도 한다. 무언가에 대한 보상이 돈이라는 화폐가 아니라 품앗이나 물물교환의 형태로 통용되었던 과거의 모습이 떠오르기도하고, 신약시대 코이노니아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친교와 나눔이라는 말로 통용되는 코이노니아적인 삶이 물질을 함께 나누고 복음에도 함께 참여하는 삶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그들에게 뭔가를‘제공한다’ 는 것은 경제적 활동이라기보다는 기쁨을 나누고, 그것이 생각지도 못한 다른 형태의 기쁨으로 돌아올 수있다는 공식을 넌지시 제시해준다. 사쿠라의 빙수를 먹는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떠돌고 있는 타에코에게 빙수를 한 번만 먹어보라고 권유한다.체조를 하러 오라고 강요하거나, 사색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빙수를 먹어보라고 계속해서 권유한다. 그런 권유에도 타에코는 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한사코 거절을 한다.

수많은 권유와 거절. 결국 마음을 열고 빙수를 먹게 된 타에코에게 문득, 아련한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온다. 그것은 사쿠라에게 받은 어떤작은 은혜, 화폐로 환산될 수 없는그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사람에대한벽을깨고, 자기고집을 꺾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작은 터닝포인트이기도 하며, 또한 그것으로 인해 나누는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순간이었다.

주었으면 받는 것을 기대하고, 무언가를 받을 때 대가를 지불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은혜를 나누어 주는데도 인색하지만, 은혜를 받는데도 인색하기가 쉽기 때문이다.대가 없이 그저 받은 빙수 하나로 타에코의 생각이 바뀌었고, 그저 받은 것에 대한 대가는 정해진 값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베풀고 싶은 것을 주는 것으로 대가의 개념이 바뀌는 것이었다.

사쿠라의 빙수뿐만 아니라 민박집주인의 식탁도 언제나 풍성하고 넘쳤다. 그는 바닷가재, 최상급 소고기 등을 얻게 되면 항상 사람들을 불러 만찬을 베풀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 누군가에게서 받았으니 그저 나누는것. 소박하게나마 코이노니아적인 삶을 이뤄가고 있었다.

 

천천히 가는 것, 소박한 것들의 소중함

영화는 소소한 여러 개의 메시지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서 포근한담요를 짜듯이 우리들의 마음을 덮어준다. 소소해보이지만 사물과 사건에 대한 생각들을 마주할 때면 감독이기도 한 작가의 깊은 통찰을 볼수가 있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무심하게 던지는 대사 속에서, 행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큰 간판을 달면 손님이 몰려 곤란하니 작은 간판을 달았다는 민박집 주인 유지의 말 속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된다. 마을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타에코의 말에 저쪽이 바다고, 이쪽이 마을이라며 그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살아가는데 그다지 복잡하고 많은 양의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빗대어 말한 그의 삶의 단순함이 툭 튀어나오는 대목이다. 민박집 주인 유지가 사람들에게 그려주는 지도를 볼 때면 그의 철학이 빛을 발한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이어주는 한 개의선. 그리고 중간쯤에 꼭 참고해야 할 이정표 하나 정도가 그가 그려주는지도의 전부다. ‘슬슬 잘못 왔나?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더라도 참고 2분만 더 가다 꺾어라’는 친절한 문구 속에도 그만의 빛나는 철학이 담겨있다.

또한 바닷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던 타에코가 ‘뜨개질이란 공기도 같이뜨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팥을 졸이던 사쿠라에게 타에코가 말을 걸어오자 ‘팥을 졸이는 비법은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라며 초조해하지 않으면 조만간 틀림없이 맛있는 팥앙금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것 등에도 여유가 한껏 숨어있다. 이들이 내뱉는 말들은 미디어가,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과 반대노선을 향해 간다. 많이 가지고,많이 알고, 서둘러서 빨리 가고 성공하고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 듯, 다른 생각을 가질수 있도록 시선을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들은 삶에서 어떤 트렁크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일까

민박집에 찾아온 타에코에게서 가장두드러진 것은 큰 트렁크 가방이다. 민박집 주인은 두고 들어가면 옮겨주겠다고 이야기하지만, 트렁크 가방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마을로 일을 보러나간다. 그 트렁크 안에뭐가 있냐는 여교사 하루나의 질문에 읽을 책들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되묻는다. 이런 데 오면 책을 읽지 않게 되지 않느냐고. 이 트렁크 가방은 다른 호텔을 찾아 나갔다가 허탕치고 다시 돌아 나올 때도 ‘짐짝’이 되어 그녀를 괴롭힌다. 질질 끌고 다니는 그녀의 짐은 아주무거워 보인다. 우리들은 이렇게 각자의 인생에 짐짝을 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라는 표현을 쓰셨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이 되어버린 고된 일에서 벗어나고 삶에 쉼을 얻기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머리 아픈 현실에서 잠시 피할 수도 있고 바람을 쐬고 머리를식히고, 또 잠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고된 일에서 떠나기 위해 여행을 선택한 우리들에게 여행은 또 하나의 일이 된다. 가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곳들을 방문할지, 사람들에게 무슨 선물을 사다가 줄지… 마음과 몸은 쉴 틈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을을 여행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몸과 마음에쉴 틈을 제공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환경에 처해지면 뭔가 불안하다.쉬려는 여행에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꿰어 차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들에게 이곳은 어떻게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사색하고 젖어들기’를 해야하는 것은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하지 않을 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지도모른다. 그것을 영화는‘사색하기’ 라고 표현했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일상과 할 일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앉은 시간에서조차우리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계획된 양의 성경을 읽고, 사역에서할 일들을 점검하고, 챙겨야할 소그룹 멤버들의 이름을 체크하고, 심지어는 기도조차도 해야 할 일의 범주에 넣어져 하게 될 경우도 있다. 어쩌면 가끔씩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묵묵히 그분 앞에 앉아있는것.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일이 되는 모든것을 다 손을 놓고 그저 묵묵히 하나님을 사색하는 것. 영화에서의 표현을 빌자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지나가시기를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사색하기가 아닐까.

 

말씀으로 무장하는 삶

영화에는 사람들이 ‘하루의 나쁜 일을 막아주는 우메보시’라는 말을 외우며 우메보시(매실에 소금을 넣고절인 뒤 식초에 담근 일본식 피클)를 먹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던 타에코도 나중에는 그 말을 되새기며 우메보시를 먹게 된다. 실제로 나쁜 일을 막는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대상에 대한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과 그것을 믿게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말의 파워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영화에서는 우메보시가 그 대상이되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시119:105)’,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시1:2)’라는 성경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내 마음에 그것이 진심으로 믿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세상에서도 믿으면 믿는 대로 된다는 말을 기억하며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인가?

안경이라는 것은 그렇다. 벗었을 때명확하게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지만, 익숙해지면 그것도 그럭저럭 지낼만하게 되며 여유가 생기는 것. 날을 세우고 정확하게 살기위해 아등바등하는게 아니라 조금은 유연하게 닳아진 날로 사람들을 대하고 사건들을 대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안경을 벗으면 자유롭다. 꼭정확하게 따지고 살지 않아도, 연단되듯 무뎌지고, 또 단단해진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대표되는 성령의 열매처럼 연단되는 것이다. 또, 자기만의 안경을 쓰고 내다보던 세상에서 벗어나 진실된 세상을 볼 수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우리들은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안경을 썼다는 걸 제외하고 영화의 제목이왜 안경인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는 큰집, 비싼 물건들, 많은 소유물, 지위와 명예가 없더라도 그저머리 뉘일 집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함께먹고 함께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것을 전해주려고 한 건 아닐까.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천국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받은 것을 나누고, 세상의 잣대와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않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넌지시 제시해주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