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상담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가족 문제의 세대 간 전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동생과 제가 일명“술 취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해질 녘이 되면 어김없이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술을 달라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어머니가하는 구멍가게에 그 아저씨가 와서 술을 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이미 많이 마셨으니 오늘은 그만 마시라고 하며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그냥 돌아가지 않고 계속 술주정을 하며 술을내놓으라고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동생과 저는 그 아저씨가 너무 싫고 미웠습니다. 한 번은, 좋은 말로 달래는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가 마음대로 가게에서 파는 술병을 따서 앉아서 술을 마시려고 할 때, 제가 나서서 그 아저씨에게 나가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가뭐라고 하니 술김에도 놀랐는지 그 아저씨는 술병을 들고 마지못해 나갔습니다. 가게를 보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이 어린 눈에도 보였기 때문에 저와 동생은 술 취한 그 아저씨를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사실 제가 잘 아는 동네 오빠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오빠는 전교 회장이었고 공부도 잘하는 바로 위 상급생이었습니다.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교회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었기에모든 여학생들이 그 오빠를 좋아했습니다. 저도 그 오빠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성탄절 새벽송을 하기 위해 시골 교회 학생들이 모두 모일 때 그 오빠와 한 팀이 되어 좋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술 취한 아저씨를 볼 때는 너무미웠지만, 그 아저씨가 행패를 부릴 때 아들인그 오빠가 와서 데리고 갈 때는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 아저씨가 저녁 무렵이면 매일같이 동네를 다니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면 동네 사람들이 아저씨의 집으로 연락을 했고, 그러면 그 오빠가 와서 술 취한 자기 아버지를 데려가곤 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는 중증 알콜 중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교회모임에서 그 오빠가 하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은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시골 어머니 집에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은 그 오빠도알콜 중독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술이 제일 혐오스럽다던 그 오빠의 모습이떠올랐습니다. 왜 그 아들은 그렇게도 싫어하고 진저리를 치며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맹세하던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걸까요…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이라는 학자는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은 이전 세대의 문제가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수된다는 주장입니다. 보웬의 연구 가설은 불안정한 자기를 가진 어머니가 태아를 자기 자신과 융합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출산 후에도 정서적으로 아기와 자신을 분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정서적으로 밀착되고 공생적인 감정이 많을수록 후에 정신분열병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모자공생’(mother-child symbiosis) 가설을 주장합니다. 현대 이론에서는 병리적 문제의 원인을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이러한 모자공생 개념이 비판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가족을 하나의 정서적 단위, 상호 관련된 관계망으로 파악하고, 세대를 넘어 가족 문제를 조망함으로써 가족치료이론 발달에 기여한 면은 인정되고 있습니다.
저는 보웬의 이론을 배우면서, 그토록 경멸하고 싫어하던 아빠의 모습을,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수많은 아들, 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절대 아빠 같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내가 아버지처럼 사나 봐라 했던,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그 엄마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 아들, 딸들 말입니다.
잠시 보웬의 이론을 좀 더 살펴보면, 보웬은 개인을 가족이라는 전체 체계의 한 부분으로 보고 가족체계를 중심으로 가족을 하나의 정서단위(emotional unit)로 묶어서 보았습니다. 이 체계는 한 가구에 사는 사람을 모두 포함하는 핵가족, 생사(生死)나 거주지와는 상관없는 확대가족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거나 죽은 모든 가족원들, 또는 집에 같이 살거나 떨어져 사는 모든 가족원들은 현재 핵가족 정서체계 안에서 가족의 독특한 형태를 이루어 냅니다.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의 핵심개념은, 자기분화(differentiation of self)인데, 이것은 정신내적인 것과 대인 관계적인 것의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정신내적인 측면은 감정과 지적인 과정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고 대인 관계적 측면은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분화 개념에 두 개의 힘을 가정하는데, 가족 안에서 연합하고자 하는 힘과 서로 분리하고자 하는 힘입니다. 우리 모두는 독립적이고자 하는 힘(개별성)과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르고자 하는 힘(연합성)의 상호작용 속에 있습니다. 이 두 세력이 균형을 이루게 되면‘분화(differentiation)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개별성과 연합성의 불균형은‘융합’(fusion)이나‘미분화’(undifferentiation)를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작고 안정된 관계 단위는바로 삼각관계(triangl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리가 두 개인 의자를 상상해 보셨습니까? 의자는 최소한 다리가 세 개가 되면 안정을 유지할 수있습니다. 대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삼인체계가 정서체계의 기본요소로 가장 작고 안정된 관계단위가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해서 스트레스가 커지게 되면 이러한 불안정한이인체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어느 한쪽이 제삼자를 관계에 끌어들이게 됩니다. 우리 가족들안에서 흔히볼수있는삼각관계의 예는, 남편이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서부부 불화가 발생할 때, 아들이 태어나면 부인이모든 정서적 충족을 아들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경우입니다. 이 때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던 긴장과 스트레스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옮겨가게 됨(우회함)으로써 부부 사이의 갈등은 안정되는 것입니다. 그 아내는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관심과 정서적 욕구를 쏟아 부으면서 남편을 향한 불만과 원망을 아들에게 토로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들은 어머니와 동맹관계를 맺고 아버지와는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보웬은 미분화된 부모가 출생순위와 상관없이 자녀들 중에 가장 유아적인 자녀를 투사대상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이 현상을 가족투사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족투사과정의 강도는 두 가지 요인과 관련되어 있는데 한 가지는 부모의 미분화 정도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가족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나 불안의 수준입니다. 정서적으로 단절된 부부는 심한 거리감을 느끼고 온통 자녀에게 관심을 쏟으며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애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형의 애착은 따뜻한 무조건적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불안하고 속박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결국 자녀들에 대한 과잉관여로 부부간의 거리감은 더욱 심화되고 자신의 불안 때문에 자녀에게 더욱 매달리고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함으로 인해서 자녀 세대는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게 됩니다. 가족투사과정은 어머니-아버지-자녀의 삼각관계 안에서 작용하게 됩니다. 투사는 불안을 감소시켜 주기 때문에 남편은 아이에 대한 아내의 과잉관여를 묵인하거나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도 합니다.
앞서 예로 들었던 아버지 세대의 문제가 아들세대에 그대로 반복되는 문제를 설명하는 개념은 다세대 전수과정(multigenerational transmission process)입니다. 다세대 전수과정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는데, 역기능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분화를 가진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한다는 것과 부모의 낮은 분화수준이 부모의 정서유형에 민감한 특정 자녀에게 전수된다는 가족투사 과정의 개념입니다. 다세대 전수과정은 정서체계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계승된 정서, 태도, 가치와 신념 등을 포함합니다. 창세기에서 이러한 다세대 전수과정의 유사한 예를 찾아보자면, 아브라함의 이삭에 대한 편애, 이삭의 에서에 대한 편애와 야곱의 요셉과 베냐민에 대한 편애가 다세대 전수과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또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하며 히12:15
그러하기에 성경에는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
그런데 문제는 결혼을 한 후에 물리적으로 분가하여 독립하였어도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원가족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남자 분은 아버지가 싫어서 서울로 대학을온 이후 한 번도 부산의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정서적 단절(emotional cut-off)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떠나기 위해 극단적으로 멀리 떠나거나 또는 함께 살면서도 부모를 멀리하고 회피하고 대화를 거부하거나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러한 정서적 단절은 부모와 가장 융합된 자녀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물리적으로 멀리 떠나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서적으로는 가장 많이 융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의 부모로부터 건강한 분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3
그런데 우리는 부모에 대한 효를 가장 중요한덕목으로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를 향한 숨겨진 분노와 원망을 떨쳐내지 않고 덮어둔 채로는 진정한 공경도 진정한 사랑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보지않을 때 그것은 또 다른 악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씩 잘못된 방향으로 상담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상담을 통해 모든 문제가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게는 되었지만 그로 인해 부모를 원망하고 탓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와 나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직시하는 것은 부모를 비난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처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상한 감정의 뿌리를 뽑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5:16
가족 내에서 대대로 전수되는 이러한 문제로부터 본질적으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본질적 태생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성령님과 함께 과거를 직면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삶을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나의 삶의 태도와 반응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상처와 쓴 뿌리를 그대로 심는 것이 아니라, 진짜나를 낳아주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나의 삶에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새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7
그렇습니다. 평생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고통 받으며 그것을 피하려고 또는 극복해보려고 했던 시도는 오히려 동일한 문제 속으로 우리를 가두었습니다.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그 악순환을 벗어나는 진정한 해결책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 온전한 가정에서 선하고 온전하신 아버지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받으며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내가 얼마나 큰 사랑과 은혜 속에 있는지를 아는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내가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정에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잘못된 태도와 감정,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끊어질지어다. 하나님 아버지의 태생적 사랑이 우리 가정에 가득할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