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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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관계회복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1. 연결된 존재로서의 한 사람

 

상담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마도“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관계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또한 불행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한 사람’이지만 실상은‘많은 사람에게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설령 혼자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 홀로 계시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강력하게 네트워킹되어 있습니다. 그 네트워킹이 힘이 되기도하지만 동시에 긴장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2. 관계의 다양한 양상

몇 년 전 라드스미스(Rod Smith) Open Hand 상담센터 총재가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강연을 하면서 가족 속에서 관계가 왜곡되어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관계의 왜곡된 모습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면서 킹덤빌더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등 돌리고 멀어진 두 사람

우리가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워지게 됩니다. 내 목소리를 내서 어떤 감정이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차라리 내 목소리를 잠재우고 다른 관심사를 찾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관계는 멀어져 갑니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자고 5년, 10년 같은 집에 계속 살긴 사는데, 아이도 같이 키우긴 하는데 그 마음의 역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마치 등을 돌리고 멀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30년간 이렇게 등을 돌린 채 살기도합니다. 하지만 겉으로는“우린 부부생활 잘 유지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주변 사람들이 볼때는 완벽한 부부라고 생각합니다. 집도 공동명의로 되어 있고, 9시 뉴스도 같이 보고 명절에는 고향도 같이 가지만, 마음 속 모습은 등 돌린 채입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도 교감이 전혀없는 관계입니다. 외롭고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2) 마주보고 손을 움켜쥔 채 서로를 움직이지 못하게하는 두 사람

어떤 사람들은 너무 가까운 나머지 서로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서로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움직이면 나머지 한 사람이 쓰러지게 됩니다. 자유가 없는 모습입니다.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의 모든 것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양상입니다. 내가 슬프면 상대도 같이 슬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날 사랑한다면 당신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껴야 해. 당신이 나를 벗어난다면 난 너무나 외로울 거야. 이게 바로 사랑이고 헌신 아냐? 당신 왜 날 화나게 하려고 해? 내가 당신과 결혼한 거잖아요!” 이렇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을 자신에게 묶어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움직이면 자신이 쓰러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습 중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되시는지요? 사람들은 가까이 하려다가 마음대로 안되면 등을 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상담을 받으러 온 부부가 밀착된관계에 있다가 소원한 관계가 되면 치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한 상황에서 전무한 상황으로 옮겨간 것 것뿐입니다.

 

3) 한 사람 뒤에 숨어있는 사람

관계의 또 다른 양상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모든것이 큽니다. 목소리도 크고 파워도 큽니다. 그래서 부인은 작아지고 작아져서 완전히 사라지게되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부인이 너무 강하고 힘도 좋고 돈도 부인이 벌고 모든 것을 부인이 다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가 다해야 돼?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애들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것도 내가 다 챙겨야 돼? 당신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돼!”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경우는 애들이 점점 커지고 강해지고 부모는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서 아이들이 온 집안을 다 주도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집안을 통제하는 권력이 됩니다. 어느 집에는7살 난 아이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두 합한 것보다 목소리가 크고 힘이 셉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라는 것은 육체의 힘이 아니라 관계의 역동에서 가지는 권력(power)을 말합니다. 상담을 받고 있는 어느 집사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그 집사님이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아, 우리 남편이 이번에승진했어요.”“아 그렇군요. 그래서 요즘 어떻게지내세요?” “우리애가 이번에 좋은 대학 갔어요.” “아 네, 그렇군요. 그래서 집사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그러자 그 분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삶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3. 내 두 다리로 서는 것, 내 손을 펼치는 법을 배우는 것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우리가 앞서 말한 것처럼 등을 돌리고 서 있는관계 가운데 있다면, 천천히 몸을 돌려서 상대에게 다가가서 상대방의 등을 톡톡 치면서 “미안해요. 내가 오랜 시간당신에게 등 돌리고 있어서 미안해요. 무시해서 미안해요. 함께 살면서도 당신 곁에 있어주지 못한 무정한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 당신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가운데 의미 있는 대화가 시작됐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 번 당신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제발 다시 한 번 나를 봐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침 내 배우자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상대방의 등을 두드리다 나는 이미 지쳐서 다시 돌아서 버리고 싶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지치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되면 어쩌지? 내가 자기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라는걸 발견할 지도 몰라….’이 세상에 아무도 몰랐던 내 존재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말한 것처럼 서로가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었다면, “여보, 이게 나한테는 힘이 들어. 나에겐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아. 조금만 뒤로 물러서야 될 것같아. 그렇다고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게 아니야. 다만 많은 사람들과 풍성한 관계를 맺고 교감하는 게 필요한 거야. 다른 사람들과도 친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당신에 대한 헌신은 변치 않았어. 아이들도 여전히 사랑해. 하지만 당신의 삶을 내가 내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의 삶은 당신 손에 내삶은 내 손에 있어. 당신이 나에게 기댈 수도 있고 내가 외로울 때는 당신에게 기댈게요. ”이렇게 이제 서로를 위해 존재하되 서로에게 밀착된 존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헌신은 있지만 자유를 가지고 공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의 뒤에 숨어서 살거나 또는 종속시키고 있다면,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면 이 사람에게 내 전부를 다 쏟아야 해. 내 전 존재를 100% 줘야 해. 내 몸에 남은 것이 없이 내 존재의 모든 조각을 다 주고 나서 내가 텅 비고 나면 내가 저 사람을 완전히 사랑한 것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나니까 나라는 존재는 없는 상태가 제대로 된 부모로서의 양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녀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숭배하는 경우도 있고, 아내를 숭배하는 남편도 있고, 직장을 숭배하는 남편도 있고, 자기 휴대폰을 숭배하는 사람, 인터넷을 숭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과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휴대폰과 얘기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보다 자기 새 차에 들이는 정성이 더 많은 경우, 가족에게 쏟는 시간보다 경력관리에 쏟는 시간이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내가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건데, 그런 옷 입으면 안 돼! 너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하고, 자기 걱정보다 남의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자기 믿음보다 다른 사람 믿음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자기 옷 입는 것 보다 상대방 옷 입는 것에 더 신경 쓰고, 자기 염려보다 다른 사람 염려를 더 많이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그 사람에겐 너무 불편하기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뒷얘기 많이 하는 사람은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장하기 위해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가 “그래!”라고 하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에게 성장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고 있는지요? 다른사람 허락은 전혀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의 정의에는 상대를 자유케 한다는 것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 두 가지는 상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나는 당신에대해 어떤 통제권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 원리를 자녀에게 적용해 본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합당한 권위를 행사해야 하지만 자신의 자녀라고 리모컨을 누르듯 조정하고 통제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9

 

 

 

4. 책임감과 회복

그런데 여러분이 자유하게 되었을 때 그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아니면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은 개인의 책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처참할 수도있고 부모님이 안 좋은 분이셨을 수도 있습니다.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성인입니다.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전적으로 지는것입니다. 상담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성인아이(Adult child)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 큰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심리적 반응 기제는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얼굴은 장성한 어른인데 몸은 기저귀를 차고 있는 형색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발을 쿵쿵 구릅니다. “내가 이 집주인인데 말이야! 내가 아버지인데 말이야!”라고 큰 소리칩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삶을 살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18

 

 

물론 너무 심한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해주지 못한 부모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있고, 아버지가 너무 약하고 어머니가 너무 강해서 상처가 된 사람도 있고, 아버지가 너무 강하고 어머니가 너무 약해서 상처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어린 시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적 행위를 강요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내 삶에서 누가 한번 잔인하게 대하는 것으로도 족한데 그런 잔인함이 켜켜이 쌓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은 당연히 잔인한 분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또한 방치된 경험이 있는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아빠를 보고 있지만 아빠는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나는 엄마를 보고 있는데 엄마는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장성하여 어른이 되어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렇게 힘들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엡10:3-5

 

 

이렇게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어린시절까지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합니다. “지나친 기능(over functioning, 과대기능)”은 뭔가를 입증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하나님이 나 좀 봐주셨으면 좋겠어서 눈코 뜰 새없이 바쁘게 지내기도 합니다. 섬기고 섬기고 또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저 좀 봐주세요. 관심 좀 받고 싶어요. 하나님! 제가 지금 너무 잘하고 있는 거 같지 않으세요? 저 좀 봐주세요.”

이것은 마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봐 주셨으면 하고 바란다면 우리는 하나만 하면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을 그냥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게끔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받으면 되는데 그냥 받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2:8-9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순교자의 삶을 강요받아 사는 게 아니라 기쁜 삶을 살 수있는 거죠? 주님의 관심 받겠다고 24시간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죠? 제 모습 그대로 주님이절 사랑하시니까요.”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답하실 것 같습니다.

“I Love you just way you are!”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기 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변화는 분명 가능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질병과 연약함을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8:17

 

 

이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움켜쥐거나 다른 사람을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나를 드려서그분이 온전히 통치하시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할 일인 것입니다. 그분의 통치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사랑이 내 안에 넘치게 될 때그 사랑이 흘러서 주변을 적시게 되면 모든 무너진 관계들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회복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