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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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목사칼럼 – 초대

2015_09_clom02

윤현숙 목사


지난달에 중보팀 동역자들과 함께 자원봉사자 훈련을 받기위해 미국 샬럿에 있는 빌리 그래함 라이브러리에 갔었다.
강의를 다 듣고 나오다가 정원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 사모님의 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전에 라이브러리에서 평생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내조하며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낸 룻 사모님의 이야기들을 접한 적이 있어서
그분의 삶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평생 살면서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지만
처음 결혼했던 집에서 평생을지내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분의 무덤도 소박했다.

 

 

묘비에는“공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인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작은 묘비에 새겨진 독특한 묘비명 옆에는 그분이 생전에 공사장에서 공사가 끝나고 그동안불편을 참아준 것을 감사하는 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그 글을 자신의 묘비에 기록해달라고 했다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죽은 후 자신의 묘비에 어떤 글을 남길것인지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그 글은 자신을 위한 것이아니라 그 무덤을 찾는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담게 된다. 그래서 묘비의 글들은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람의 메시지를 통해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며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해서 그런 글들만모아 책으로 엮은 것도 있다.

룻 사모님이 공사장에서 처음 그 글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아서 그 글을 묘비에 써달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글을 읽으며 나는 이곳저곳 파헤쳐지고 먼지와 소음이 가득한 공사장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아직“공사 중”이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는 그런 모습을…. 그런데 그 어수선한 현장을 보면서 어떻게 그 모습이 공사 중인자신의 모습이라고 룻 사모님은 생각했을까 궁금했다. 보통사람들은 자신에게 관대하기 마련인데 중국선교사의 딸로 태어나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왔는데 자신을 그런 모습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잘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잘 보이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에는 민감한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불편하게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넘어 갈 때가 많이 있다. 상담사역을 하다보면 다들 자신이 받은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빠서 아직 공사 중인자신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참고 있는지에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일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아뢰지만, 나의 변화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인내하며 기다려주신 일들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살았다. 그러다 하나님께서진정한 내 모습을 보게 해주셔서 비로소 문제를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십 수 년 전에 처음내적치유 세미나에 참석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모여 내면의 상처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하나님께마음을 토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른사람들은 다 울고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데 나만늘 맹숭맹숭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나는 문제가 별로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랬는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내적치유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주시니까 비로소나의 문제를 보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문제가없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로 내 모습이 허물투성이인 것을 보게 되었다. 이후 나의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참고 기다려주신걸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오래 참고 기다리신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된다. 예레미야 36장 15절에서“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다림과 인내는 지금도 사실 계속되고 있다.

룻 사모님의 묘비명을 보고 온 후로 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졌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공사 중인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지고 나로 인해 불편함을느끼면서도 참아주고 기다려 준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동역자들에게도 오랜 시간 기다려주시고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져,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다려 줄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