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미디어
네 마음을 지키라
사진 작가 / 헤븐리터치 미디어팀장 주명규
미디어는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담아서 수용자들에게 보내는 역할을 하는 매개체. 신문, 잡지, 서적,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을 말한다. 과거 미디어 산업은 정보를 제공하는 생산자와 정보를 수용하는 소비자로 그 역할이 구분되어 명확했다. 사건이 생기면 소비자는 생산자가 공급하는 정보와 사실에만 의지하여 판단하고 결정했고 따라 왔다. 국민에게 사건과 정보를 알리는 수단이기에, 권력을 가진 쪽과 그것에 저항하는 쪽 모두 미디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미디어는 그 시대 권력의 힘이기도 했다.
권력자가 권력과 무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미디어를 사용했다면, 칼보다 강한 것이 펜의 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항하는 자들의 펜의 힘도 막강했다. 그래서 미디어는 시대 권력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쪽과 그것에 저항하는 쪽으로 나뉘기도 했다.
그 세대가 가지는 정체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정체성은 그 시대를 대변하며, 그 시대의 문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를 이루는 힘의 역할과 기능의 중심에는 미디어가 있었다. 과거 미디어의 범주는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정도에 불과했지만, 현 시대에는 내 몸의 장기와 같이 손과 핸드백, 주머니 속에서 24시간 기능하는 강력한 미디어 도구인 스마트폰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전화기의 역할은 이미 부가 서비스가 된 지 오래이고, 스마트폰은 이미 컴퓨터 대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하드웨어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소프트웨어의 진화의 속도는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어, 마치 과학기술적인 측면만을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는 권력의 이동이다.
곧 국민의 입으로 스마트폰이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SNS를 내가 하지 않더라도 SNS를 통해 만들어지는 여론이 내가 어떤 사건의 결과와 생각을 결정하는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금은 국민이 권력자가 된 시대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근자의 지방선거의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지지율 1위에 있던 몇 몇 후보들이 그들의 자녀가 올린 SNS글로 인해 낙마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 시대의 미디어의 강력한 힘을 볼 수 있는 한 예이다. 어느 때보다 국민의 생각과 관심이 같을 수 있는 것 또한 미디어와 국민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건의 슬픔과 애통, 죽음의 그림자로 어두워져 있다. 꽃다운 우리의 자녀들이 부도덕한 어른들로 인해 당한 아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대한민국을 힘들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 모두를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한 것은 죽음직전에 오간 그들의 통신 내용들이다.
실시간 SNS로 그 내용이 퍼져 나갔고, 그 와중에 유언비어, 왜곡된 정보들로 인해 유가족들에게 몇 번씩 죽음의 고통을 다시 겪는 것 같은 아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은 비단 유가족, 친구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실의에 빠뜨린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다른 재난보다 더욱 더 대한민국을 힘들게 한 이유가 있다. 한 의과대학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너무 감정이입을 강하게 하면 자칫 재난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람조차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마치 자신이 사고의 당사자인 것처럼 공포·분노·불면·우울과 같은 정신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이 2차 트라우마(trauma)다. 이게 확산되면 피해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국민이 집단 트라우마와 집단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피해자 인터뷰나 현장 중계방송에 신중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TV로 현장 중계를 하는 것은 시청자의 뇌를 학대하는 행위이다. 그 영상이 대뇌에 후유증을 일으킨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입증된 사실이다. 2001년 9·11 테러 때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보다 먼 시골에서 TV로 세계무역센터 건물 붕괴와 희생자의 울부짖는 모습을 반복 시청했던 사람들에게 정신적 후유증이 더 오래 남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봄에는 생기가 없었다.
지금은 언론의 힘보다 SNS의 힘이 더 강해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SNS를 통한 정보는 내용의 검증과 사실에 입각한 신뢰성 보다는, 인간적인 감정이 앞선 왜곡된 호기심을 유발하여 순간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원색적이고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로 대중을 현혹하기도 한다.
분명 SNS와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소통의 창구이다. 소통은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의미에서의 소통의 창구가 내 말만 하거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공격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치 않아도 이러한 미디어들을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다양한 이야기꺼리들로 가득 차있고, 내 의견과 뜻을 그때 그때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하여 의사 표현을 할 때, 절제해야 하고 가급적 표현에 겸손해야 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잠언 4장 23-4절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잠언 6장 16-9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길 원하신다. 불의에 대해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의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죄인의 삶을 살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끊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끊는다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는 사실과 정보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더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나와 뜻을같이한다 하여 과한 표현으로 여론몰이의 한 표를 던지고, 나와 틀리고 다르다하여 과하게 악한 말을 내뱉는 것은 결코 그 현상을 바꾸는 힘은 아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내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와 가정, 그리고 국가에 문제가 있을 때, 믿는 자라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의 태도로 반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