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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5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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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장. 신유사역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

 

4.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먼저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해야 하시는가에 대한질문의 답부터 생각해 보자.

1)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치유하셔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자.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볼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지 않으실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2

 

 

(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1:30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뿐만 아니라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고, 마귀의 일을 멸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이 치유자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것은 알지만, 치유를 받은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 죄사함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은혜이다. 치유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으로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3) 우리가 치유된 다음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주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지금 이대로 죽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심으로 이 땅에 있는 동안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를 원하신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5:15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4:2

 

 

2)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치유를 생각하라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다 치유되지 않는 이유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 직간접적인 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루신 모든 일들이 나에게 임하였는데 어떻게 질병으로 고통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단지 언약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즉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관점에서 치유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치유를 생각할 때는 영적인 초자연계의 차원과 물리적인 현실세계의 차원을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죄사함과 구원’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육의 통치’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갈 것이다.

  • 우리가 현재적 하나님나라에 살기 때문이다(already but not yet).
  • 우리의 영은 죄사함을 받았지만, 우리의 육신은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이것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12:5-11

 

 

하나님은 구원받지 못한 자를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녀를 징계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의 거룩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 말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징계하시는 이유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시고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

 

3) 질병 그 자체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없다.

하나님이 질병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다고 믿거나 혹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치시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질병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으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신명기 28:1-14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대해서, 그리고 신명기 28:16-68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저주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질병은 저주에 속하지, 결코 축복에 속하지 않는다. 또한 출애굽기 15:26에서는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divine healing)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divine health)이심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면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케 된다고 말씀하시고 계심으로, 율법 아래에서도 질병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뿐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범할 때 그 백성에게 질병이 주어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은 구약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새 언약 하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때는 질병은 불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혼과 육을 통치할 때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늘 우리의 마음이 세상, 자신의 과거, 다른 사람과의 관계, 물질,그리고 악한 영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성령님의 통치함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 거하는 동안 24시간 365일 온전히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따라서 온전히 성령님의 통치함을 받지 못하고 틈이 생길 때 우리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며, 악한 영이나 병원균의 침입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비록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지만, 사는 동안에 질병이나 고통이나 고난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이 다시 우리의 혼과 육을 인도하시도록 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5. 기도했으나 치유 받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했으나 다 치유 받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치유 받지 못한 분들 중에는 정말 믿음이 없는 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 사람도 있다.

우리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겼건만 하나님은 왜 나를 치유해주지 않으실까?”라는 수학 공식 같은 믿음을 가지기 쉽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자.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쳤다. 그런데도 자신의 질병을 치유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그가 진짜 치유사역자라면 자신의 병부터 먼저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7-9

 

 

그러나 바울의 예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는 치유의 능력은 바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치유했지 현실에 기초하여 기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울도 자신의 질병을 치유 받기 위해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기도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계속 기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간절하게 몇 차례 기도하거나 치유사역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했는데도 치유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질병이 마치 사도 바울의 가시와 같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중단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 전에 자신의 질병 치유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마음을 받았는지 먼저 묻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기도하여야 한다.

내 상황이나 현실과 상관없이 주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믿는 믿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 기초한 믿음이다. 어떤 분들이 “기도해도 치유되지 않을 때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느냐” 고 물으시면, 지금까지는 “질병이 치유될 때까지” 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체적인 음성을 들을 때까지” 기도하라고 한다. 만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느냐”고 물으시면, “그 질병으로 죽을 때까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신유를 바라는 것은 단지 자신의 육신의 치유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여야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다. 그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된다. 그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어 버릴 때 그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치유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단순히 나의 생명의 연장, 혹은 내 삶의 축복과 형통이 이유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들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불태워지지 않는 것으로 옳은 행실을 인정받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6. 실패의 고통 직면하기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마13:58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딤후4:20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막9:28

 

 

우리는 위의 성경구절을 통해서 기도사역이나 축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모든 질병을 치유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제자들의 경우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면 예수님에게 직접 그 이유에 대해 여쭈어볼 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물론 성령님이 계시지만 어떨 때는 제자들처럼 우리 곁에 직접 여쭈어보고 답을 얻을 수 있는 분이 계셨으면 생각할 때도 있다. 치유사역을 하면 할수록 기도하는 자의 마음에는 “왜?”라는 질문이 더 많이 생기게 된다.

 

1) “왜 그렇습니까?”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기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실패의 아픈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떤 성도나 그 가족이 아플 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믿음을 가지고 함께 모여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였건만, 상태가 더 나빠진다든지 아니면 결국 하늘나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 모두는 실패의 고통을 겪으며 “왜?”라는 질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심지어 이런 경험으로 인하여 신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바울은 왜 드로비모를 병듦으로 밀레도에 둘 수밖에 없었나?” “왜 어떤 사람은 잠깐 기도했음에도 그 즉시로 치유를 받은 반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은 그렇게도 열심히 기도했건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일까?” “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치유되지 않을까?”

 

2)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많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켰던 사도 바울이지만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던 그는, 고린도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왜?”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but the man who loves God is known by God) 고전8:2-3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13:8-9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1) 겸손: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있다.
실패의 고통과 직면했을 때 우리는 겸손할 줄 알아야 하며, “왜?”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모른다.” 는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 질문 앞에서 그가 단지 부분적으로만 안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라야만 비로소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겸손’과 기꺼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야 말로 불신앙의 나락으로 우리를 떨어뜨리려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인 것이다.

(2) 사랑: 보다 높은 방법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love never fails).” 실패의 고통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답은 사랑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사역하였다면 설사 치유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것을 전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의해서 알려진바 된 것”이 치유가 실패한 것에 대한 대답을 얻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는 것이다.

 

3) 실패의 고통 극복하기: 행동 없는 믿음을 돌파하라.

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병자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많은 교회의 목회자나 지도자들이 기적 종식론을 가르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오순절이나 은사주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 즉 기적과 이사를 믿는 사람들조차 기대한 것만큼 많은 결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치유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더 많이 병자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이유들을 생각해보자. 신유에 대한 지식의 결여 때문일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교만하여 자신의 실패를 직면할 수 없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신학적으로 다른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과거의 실패에 대한 정서적 충격으로 인해 기도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치유사역자들이 고백하는 것은 ‘치유는 하나님의 역사이지 우리의 노력이나 헌신이 아니기 때문에 치유가 일어났을 때 교만해 질 것이 없으며, 반대로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자신을 비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라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가장 많이 기도한 사람이 가장 많이 실패한 사람일 것이다(Oral Roberts).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

 

 

실패는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친밀함, 하나님 음성 듣기, 더 높은 차원의 기름부으심, 겸손과 사랑, 천사의 사역 등의 하늘의 비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을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일 뿐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눅9:23

 

 

 

7. 천국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치유사역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육신의 장막을 떠나는 것을 볼 때,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소망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과 직면할 때는, 특별히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 때는, 아주 작은별 볼일 없는 한 인간으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아야 할뿐만 아니라, 동시에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가는 곳인 천국에 대한 소망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 소망은 도피처로서의 소망이 아니라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어야 한다. 그곳은 내 영혼이 육신에 묶이지 않고 안식하는 곳, 다시 몸의 부활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을 다스리기 전에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다.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때,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육신에 붙들려 살지 않게 된다. 또한 육신이 망가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이 아버지 손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3:1-3

 

 

누구든지 육신을 지닌 이 땅에서의 삶을 좀 더 연장하고 싶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후회가 되어서, 어떤 사람은 너무 억울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 좋아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떠나야 하는 이 땅에서의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육신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갖가지 일들을 행하며,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매달린다면, 그 마지막이 참으로 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 동안에 본향에 대한 비밀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면, 또한 그 천국의 삶이 이 땅의 삶보다 훨씬 좋은 것을 안다면, 자신의 영혼을 끝까지 육체에 붙들어 두려고만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에 붙들리도록 하여 더 아름답고 귀한 천국으로의 부르심을 두려움 없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15:19

 

 

우리 육체의 죽음조차도 마귀에 의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어야한다. 육신의 삶을 마감할 때 많은 경우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어 그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다가 그 삶을 끝내는 것을 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마귀와 질병에 묶여 살지 말고, 내 영·혼·육 모두를 지옥에 멸하실 수도 있지만, 내 영·혼·육 모두를 구원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끝까지 그분에 묶여 있어야 한다. 암이나 질병으로 죽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다가 죽자. 암이 나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도록 하자.비록 질병에 걸려 육신의 삶이 끝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이 육신에 매여 이 땅의 삶을 끝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 땅의 삶을 끝맺도록 해야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28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육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한 분들의 간증을 함께 나누며,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Ⅰ장. 신유사역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

1. 나는 어떻게 치유사역을 하는가?
2. 인간의 온전함과 질병의 근원은 무엇인가?
3. 구원받은 크리스천도 질병에 걸릴 수 있는가?
4.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5. 기도했으나 치유 받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6. 실패의 고통 직면하기
7. 천국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Ⅱ장. 신유사역에 대한 성경·신학적 견해
Ⅲ장. 신유와 치유
Ⅳ장. 성경적 신유사역
Ⅴ장. 신유사역의 분석
Ⅵ장. 하나님 자녀 관점에서의 치유
Ⅶ장. 신유사역의 실제
2014년 3월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HTM 지상세미나」 섹션에서는 손기철 장로의 저서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두란노)에
소개된 치유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그동안 「월요말씀치유집회」, 「치유사역자 스쿨」, 「치유세미나」, HTM 뉴스레터 『헤븐리터치』의 「신
유」 섹션 등을 통해 듣고 보고 배웠던 신유와 관련된 방대한 내용들이 총망라될 것입니다. 신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
했음을 증거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모든 독자들의 열독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