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힘으로

선한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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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묵상

본회퍼 목사님의 마지막 시입니다. 그는 나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체포·구금되어 결국 나치 친위대 형무소 내 구치소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이 시는 1944년 12월 19일 약혼녀에게 보낸 성탄절 편지에 동봉된 것입니다. “최근 밤중에 떠오른 시 몇 줄을 더 적어 보냅니다. 이 시는 당신과 내 부모님, 그리고 형제자매들에게 보내는 내 성탄절 인사입니다.” 시의 서두에서 그는 “그대들”, 그러니까 부모님과 형제자매, 약혼녀 등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함께 있음을 재확인하며, 자신이 “진실하고 평화로운, 선한 힘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만일 “무거운 잔” 곧 “쓰디쓴 슬픔으로 가장자리까지 가득 찬 잔”을 주신다 해도 기꺼이 받겠노라고, 하지만 만일 “이 세상의 기쁨과 그 햇빛을허락하신다면” 이 고통의 세월은 지난 일이 될 터이고 새로운 삶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리라고. 그는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담대하게 새 날을 마주하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며 그 선한 힘으로 감싸고 계시니까요. 편지에서 그는 단언했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나라에 삽니다. 그 나라의 실체를 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최애리


 

선한 힘으로

 

 

진실하고 평화로운, 선한 힘으로 둘러싸여
놀라운 위로와 보호를 받으며
나는 이 날들을 그대들과 함께 살고
그대들과 함께 새해로 나아가겠습니다

묵은 괴로움은 여전히 저희의 마음을 차지하려 하고
악한 날들은 여전히 저희를 무거운 짐으로 찍어 누르지만
오, 주여, 저희 겁에 질린 영혼들에게
당신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만일 당신이 저희에게 무거운 잔을, 쓰디쓴
슬픔으로 가장자리까지 가득 찬 잔을 주신다면
저희는 주저 없이 감사히 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선하시고 사랑하시는 손으로부터

하지만 만일 당신이 저희에게 한 번 더
이 세상의 기쁨과 그 햇빛을 허락하신다면
그러면 저희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며
저희의 삶 전체가 당신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저희 어둠 속으로 가져다주신
촛불이 따스하고 평화롭게 타게 하소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희를 다시 한데 모아 주소서
저희는 압니다 당신의 빛은 어둠 속에 빛난다는 것을

이제 저희 둘레에 깊은 침묵이 펼쳐질 때
듣게 하소서 저 충만한 음성을
저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찬미를

선한 힘으로 놀라운 보호를 받으며
저희는 담대하게 마주합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저녁과 아침에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계시며
새로 태어나는 날이면 날마다 그러할 것입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

 

 

 


 

 

2015년 신년호부터 「詩와 默想」 섹션이 신설되었다. 시편에 실린 詩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시편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詩’라는 형태의 문학으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은 신선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늘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 드리기를 원하듯이 ‘새로운 시’로 하나님을 묵상해 보는 것도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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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에는 2014년 10월에 출판된 『그리스도교 신앙시 100선 합창』에 수록된 시들을 실을 예정인데, 이 책에는 최애리 집사가 2012년부터 엄선하여 직접 번역한 100편의 시가 역자의 묵상이 담긴 ‘해설’과 함께 ‘1장-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2장-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장-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4장-그 손 못 자국 만져라’, ‘5장-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6장-나의 갈 길 다 가도록’, ‘7장-생명 시냇가에 살리라’ 등 총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실려 있으며, 책의 뒷부분에는 수록된 시의 원문과 시인의 생애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시 중에서 매월 한 편을 골라 이 섹션에 연재할 예정이다. 시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새로운 시도로 새해 아침을 시작해 보자.(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