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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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힐링시네마
허니

 

작가 이애경

 

꿀, 달콤함 혹은 외국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명칭 허니. ‘허니’라는 단어에는 이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에서도 ‘꿀’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그것은 약속, 풍요 또 그 이상을 의미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주는 다양한 의미처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집중시켜준다. 그것은 터키의 조용한 숲속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배경음악을 전혀 삽입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 두 명으로 집약되어 극이 이끌어지는 주인공 여섯 살 꼬마와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년기의 익숙한 것들과 이별해야 하고, 쉽게 이해받고 용서받는 일들이 줄어들며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자기 안의 틀에서 빠져나와 사회의 틀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공기의 저항을 받듯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가는 시기가 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옛 자아와 계속해서 이별한다는 것. 결국, 성장이 아픈 이유는 옛 것들과의 이별에 상처가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고알을 깨고 나오는 그 일이 버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안에 머물러있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고 나와야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신과 강력한 끈으로 묶여있던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의 이별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겁고 어렵다.사이가 각별했던 아버지와의 이별을 겪으며 자라나는 한아이의 성장통을 그린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애틋하고또 대견하다. 마치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고 성장하는데 겪고 넘어가야할 그리스도인의 성장통을 동일하게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영화는 풍경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감독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터키 감독 세미 카플라노글루 감독이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럽의 우림지역 터키 아나톨리아 숲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세미 카플라노글루 감독은 시인 유수프의 이야기를 다룬 <유수프 3부작 시리즈>로 유명한데, 이 시리즈의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인 <허니>에서 감독은 여섯 살 아이 유수프의 성장과정을 그려냈다.

감독은 첫 번째 작품 에서는 어머니와 이별하는 장년기의 유수프를 그렸고, 우유를 파는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그린 두 번째 작품 에서는 정체성을 찾고 고뇌하는 청년기 시절의 모습을 그렸는데, 모두 각종 영화제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허니>는 제 60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각 국제영화상에서 감독상, 촬영상 등을 휩쓸며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사소한 일상에서 감지할 수 있는 하나님을 연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혹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해 더 깊게 묵상할 수도 있다. 또 우리를 부르시고 가까이 하시고, 단련해 정금으로 만드시는 과정을 찬찬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도있다. 물론 이 영화는 터키 영화이기 때문에 이슬람문화가 기반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간과 해서는 안되긴 하지만.

조용하고 적막한 숲 속 한가운데 새소리, 바람소리가 영화의 시작을 알리면 숲이 소리를 내는 틈을 가르고한 남자가 당나귀를 끌고 숲속으로 들어온다. 그가 밧줄을 던져 나무위로 높이 올라가다가 나뭇가지가 바작거리는 소리를 내고 꺾이는 장면에서 숲은 더욱 적막해진다. 남자의 숨죽인 숨소리만 들리는 긴장의순간. 가까스로 밧줄 하나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 야쿱은 위태로워 보인다.

여섯 살 말더듬이 유수프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아빠가 하는 일은 꿀을 따는 일이다. 유수프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꿀을 채취하는 것을 돕는다. 아버지 야쿱은 아들 유수프와아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 유수프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버지와함께 있는 시간이다. 아버지와 말을 할 때는 말을 전혀 더듬지 않는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거대한 산이자 든든한 지원군, 자신을 품어주는 큰성벽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입에 달라붙는 꿀처럼 달콤함을 주는 친구다. 마치 그들이 살아가는 숲처럼. 아이 유수프는 아버지를 통해, 숲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을 경험해나가기 시작한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아버지가 방울을 달아준 새가 날아가면 새를 쫓아서 학교에 가는 것이 유수프의 일상의 시작이다. 그러나 학교에간 유수프는 다른 아이들처럼 칭찬뱃지를 가슴에 달지 못한다. 책읽기를 시켜도 계속해서 말을 더듬기 때문이다. 한 번은 두 페이지를 전부 외운 뒤 자신 있게 손을 들었지만 선생님은 야속하게도 다음 페이지를 읽어보라고 주문했다.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건꿀을 채집하고 온 아버지를 만날 수있어서다. 아버지는 유수프에게 계속해서 읽기를 시키고, 대화를 유도한다. 아이가 소심해진 것 같으면 아버지 귀에다 속삭이라며 소곤소곤 이야기 해준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따뜻한 바다 같은 존재다.

아버지는 나무토막으로 작은 배를 만들기 시작하고, 몰래 그 과정을 지켜봤던 아이는 그것이 아버지가 자기에게 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무배는 삼촌의 아들에게 선물로 배달되고 그 광경을 본 아이는 삼촌 아들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 아버지로부터 도망간다.

자연이 조금씩 훼손되기 시작하면서근처의 벌집에서 꿀을 더 이상 채집할 수 없게 된 야쿱은 집에서 멀리떨어진 곳으로 꿀을 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가려고 보채지만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머니를 지키라고 아이를 달랜다. 아이는 아버지의 말에 수긍하며 집에 남는다. 며칠이 지나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은 짙어만 간다. 유수프도 돌아오지 않는아버지를 계속해서 기다리지만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와의 사랑, 교감의 언어

개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언어>를 보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인정하는 말 (words of affirmation), 함께하는 시간(quality time), 선물(gift), 봉사(acts of service), 스 킨 십(physical touch)으로 나뉘는데,이 영화에서는 다섯 가지가 모두 다뤄지지만 이 중 함께하는 시간과 선물, 봉사가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엄마가 식탁에 유수프가 마셔야할 우유를 내어놓는다. 우유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를 대신해 야쿱은 우유를 마셔준다.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번진다. 이건 둘 사이의 암묵 같은것이다.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우유를 대신 마시는 수고를 해준다. 아버지의 수고는 아이가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전적으로 할 수있게 끌어당기는 역할을 해준다. 나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아버지라는 믿음이 서서히 자라난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듬뿍 사랑을받고 있다는 확신을 한다.

영화에서 선물은 ‘자연이 주는 선물’과 ‘아버지가 주는 선물’의 두가지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아이는 꿀을 채집하러 다니면서 자연이 준 선물의 의미를 깨닫는다. 꿀은 무조건적으로 은혜로 받는 선물이고 값없이 받는 사랑이다. 자연이 값없이주는 사랑을 받고 자란 유수프는,어느 날 아버지가 손수 만든 나무배를 자신에게 주지 않고 삼촌 아들에게 주었다는 사실에 상당한 상처를받는다. 후에 아버지가 나무배를 유수프에게 선물함으로 아버지에 대한 아이의 신뢰는 다시 회복된다. 그리고 그 회복된 마음속에서 자라난 건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받은 나무배를 다시삼촌 아들에게 선물함으로써 남에게사랑을 흘려보내는 법을 알게 된다.

아버지 야쿱은 말로 칭찬하고 표현하며 ‘인정하는 말’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말을 하듯 아들에게 칭찬하고 격려하는 형태를 띤다. 때문에 어린 유수프가 말을 더듬지 않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대상은 아버지가 유일했다. 아버지는 키를 낮추고 눈높이를 낮추어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친밀함의 대상이자 가장편하고 안식 할 수 있는 상이었다. 아이는 아버지 앞에서는말을 더듬지 않고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담듯이 진지하고 열심히 들어준다. 또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높이는 것이 아버지의 교육 방식 중하나였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신체적인 친밀감은 반대로 아이가 아버지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이기도 했다. 아버지 야쿱이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을 때 아이는 놀라지 않고 물을 떠와 아버지의 얼굴을 닦으며 만져준다. 서로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음으로 아버지와 아이는 더욱 친밀해진다.

이 중 가장 눈여겨볼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다. 야쿱은 유수프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아이가 어른이 되는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형태라기보다는 ‘이렇게 해보렴’하는 권유의 형태를 띠고 아이에게 찾아온다. 일종의 작은 도전들인 셈이다.

우유를 대신 마셔준 아버지는 아이에게 사과와 칼을 밀어주면서 사과를 잘라보라고 하고, 꿀을 채집하러가는 길에는 꽃 이름을 묻기도 한다. 달력에 쓰여진 글을 읽어보라고 하고, 또 벌을 쫓아내기 위해 연기를 쐬어달라고 부탁하고, 멀리 떠나기 전에 아이에게 엄마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아이는 이 과정들을 통해 혼자서 할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도움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며,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법을 배워나간다.

 

순수한 영혼, 자연과의 교감

유수프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곳이 숲이고, 숲은 어린 유수프를어른으로 키워낸다. 모험, 두려움이모두 이곳에 있으며 아이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라난다.

유수프는 어떤 꽃에서 어떤 맛의 꿀이 나는지를 안다. 물을 뜨러 간 개울가 반대편에서 사슴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챈다. 아이는 새와 함께 다니고, 물을 엎질러 자기 노트를 적셔버린 당나귀에게 불평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자연은 삶의 일부다. 어떤 객체도 아니고 어울려 살아가는 환경도 아니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주체들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연을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그것들에 반응한다.
아이는 자연과의 교감이 가장 자연스럽고 자연의 언어를 들으며 반응할 줄 안다. 그래서 학교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갔을 때 언어의 소통이 어려운 것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유수프는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른 언어적 감각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는 다른사람들에게 이해되기 어려운, 그러나 명백히 존재하고 기능하는 언어이며 그것은 자연에 더 가까운, 하나님에게 더 가까운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유수프가 소통하는 언어중 또 하나는 꿈이었다. 아이는 꿈을 통해서 미래를 알게 되었다. 마치 요셉처럼 아이는 꿈으로 아버지와의 이별을 감지했다. 아이는 죽은 벌을 보는꿈을 꾸기도 하고,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한다. 말더듬이 유수프에게는 다양한 언어가존재했고, 그 언어는 그것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언어였다. 하지만 아이는 분명히 소통했고, 그것도 자연과 더 친밀하고 가까이 소통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나에게 있는 상처, 혹은 연약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알아듣게 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이가 자신이 말더듬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아이는 평생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문제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다른 소통의 언어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혹은 기적적으로 아이는 시인이 되었다. 우리의 연약함이, 모자람이 다른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의 방식에 수긍한다면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성장 그리고 성장통

영화 전반에 걸쳐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지만 두드러지게 어른이 된 모습은 아버지의 부재 이후부터다.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지만 생사를알 수 없는 살얼음판 가운데서 아이는 엄마가 차려준 식탁 앞에 앉는다. 엄마는 유수프에게 우유를 마시라고 잔을 내어놓고 엄마의 슬픔을인식한 아이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것은 우유를 마시는 일이었다.자아를 내려놓고 희생함으로, 봉사함으로 상대방에게 사랑을 전하고자한 것이었다.

꿀꺽꿀꺽 단숨에 우유를 마시는 아이.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아이. 닭장에 가서 암탉이 낳은 계란을 가져다 준 일은아이가할수있는일을한것이라면, 이제는 하기 싫었던 일을 함으로서 자기 껍질을 깨고 한 단계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듬더듬 책을 읽으려고 애쓰는 유수프에게 뱃지를 달아주는 선생님.남들이 다 받은 칭찬뱃지를 가장 마지막에 받고 좋아서 집에 뛰어가지만 아이는 집에 온 경찰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다시 숲속으로 달려간다. 가장 기쁜 순간에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절망.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외로움’, ‘고독’을 건드린다. 철저하게 고독해진 아이는 자신을 언제나 받아들여 주었던 숲속으로 들어가고, 날이 어두워지고 천둥이 시작되자 아이는 큰 나무의 뿌리 사이에 편안하게 몸을 눕힌다.

 

고요함 속에서 찾아지는 미세함이 돋보이는 영화

영화에는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꽉 찬 배경음악과 효과음으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따라 감동을 극대화시켜주는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혹은 견디기 어려운 침묵의 시간을 줄지도모른다. 주인공들의 대사도 거의 없다. 영화에서는 말은 최대로 아끼고, 필요한 말만 하며 최대한 절제한다. 유일하게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는 학교에서 한 여학생이 읊은 랭보의 시다.

 

 

“밀 잎에 찔려도 나는 잔풀을 밟으며 가리라 / 꿈꾸는 사람처럼 나는 그 신선함을 발 아래 느끼리라 /
나는 바람이 모자를 벗은 머리 위를 감싸게 하리라 / 나는 말하지 않으리 / 아무 생각도 하지않으리 /
그래도 무한한 사랑이 내 영혼 속에 솟아오르리라 / 그래서 나는 가리라 멀리 멀리 마치 보헤미안처럼 / 한소녀와 함께인 것처럼 /
행복하게 대자연 속으로 가리라 / 여름날의 푸른 밤에는 숲길을 걷고 있으리 / 밀 잎에 찔려도 나는 잔풀을 밟으며 가리라 /
꿈꾸는사람처럼 나는 그 신선함을 발아래 느끼리라 / 나는 바람이 모자를 벗은 머리위를 감싸게 하리라”

 

 

유수프는 이 시를 듣고 이 시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은 유수프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를 규정하는 주제가 된다. 고통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신선한 것,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마치 꿈을꾸듯 느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내 스스로를 보호했던 모자를 벗어버리는 순간, 자연의 사랑이 나를 보호하고 시원하게 해주는 안식처로 삼게 될 것이라는 유수프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꿀이 의미하는 것

유수프에게 아버지는 꿀과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은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그저 주어지는 시간이었고, 아주 달콤했다. 꿀은인간이 숲을 파괴하기 전까지 언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 무지, 혹은 죄로 인해 숲은 훼손되어가고 꿀을 얻을 수 있는 곳들이 사라져간다. 은혜가 그저 은혜로 주어지는 시대가 지나갔고, 인공적으로양봉을 하듯 은혜를 찾거나 혹은 구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꿀은 값없이 거저 받는 것이어야 한다.

영화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꿀처럼, 자연스러움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큰 사건도 없고 과장된 에피소드도 없다. 그저 어디서든 벌어질 수있는 일상을 다루는 듯 정적이고 일상적이다. 아이의 행동은 순수하고 그래서 자연의 섭리처럼 부담이 없다.

첫 장면을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여놓은 숲처럼, 혹은 마지막 장면에 아이가 큰 나무뿌리 사이에 편안하게 눕는 것처럼 영화는 보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젖어들고 녹아든다. 이것이 영화 <허니>가 주는 장점이다. 때문에 자연스러움에 익숙하지않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졸린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잠을 자는 것 또한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