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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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건강
의사를 만나다 – 너는 세상의 빛이라

 

한양의대 교수 김석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ubler-Ross)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스위스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이 분의 가장 큰 업적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애도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에 대해 연구한 것입니다. 이 분의 이론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는 첫 번째 부정(denial) 단계, 두 번째 분노(anger) 단계, 세 번째 타협(bargaining) 단계, 네 번째 우울(depression) 단계, 마지막 다섯 번째 수용(acceptance) 단계의 5단계를 거쳐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이러한 5단계는 단지 죽음을 앞둔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받아들여야만 할 때, 신체의 일부를 잃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등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상실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심리적 반응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는 않아서 실제 이 단계를 거치는 말기환자는 임종환자들의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블러-로스의 이론은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으며,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심리반응에 대해 연구한 다른 학자들의 경우도, 임박한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부정(denial)과 어쩔 수 없는 수용이 죽어가는 환자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죽음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죽음은 정말 피할 수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인생 최대의 비극으로 무기력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만약 여러분이 의사로부터 한 달 안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는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신앙상태를 점검하기 위한목적으로 흔히 던져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당신은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십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래서 자신 있어 하기도 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 질문에 대한 답이여러분의 구원을 확인해 주거나 여러분의 신앙상태를 판단해 줄 수 있을까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스스로는 구원받았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의심이 많거나 완벽주의적 경향을가지고 있는 사람들은‘나는 구원받지 못했을 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아니요!”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구원을 받았는지의여부와 내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질문에 대한 대답이 뭔가를 정확히 평가하도록해 주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구원받은 자인가, 다른 말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성령님의 계시로 알고있는 자인가를 아는 것은 환란 앞에서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TV에서 특집으로 방영한 <쿼바디스(QUO VADIS)>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로마의 네로황제에게 정말 많은 크리스천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굶주린 사자에게 잡아먹히도록하고, 화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에서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굶주린 사자나 화형대 앞에서 죽음과 직면한 크리스천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들이 죽음 앞에서 보통 인간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네로황제는 이들의 태도를보고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두려움까지느끼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굶주린 사자가자신을 향해 달려오는데도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자에게 물리는 순간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지만 아직 물리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찬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옆 화형대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어가고 있고, 곧 자신의 발아래에서도 불길이 솟아오를 텐데 그 순간에도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어디서그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죽음에대한 태도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맹수의 이빨에 물어뜯기는 고통을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유는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퀴블러-로스를 포함하여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대해 연구한 사람들의 주장을 보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요?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작 죽음이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대해서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죽음에대해 연구한다는 자신들도 죽음 그 자체를 정직하게 직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만을 연구하게 되었고,그러다보니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서 철저히 무기력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서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러다보니 결론은 부정과 어쩔 수 없는 수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안타깝게도 그들은 죽음 앞에 그저 그렇게 무기력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알았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질문을 한번 바꾸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주님이 오늘 밤에 오셔서 나와 함께 천국으로 가자고 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다시 말해“여러분이 오늘 죽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하는 질문으로요. 정답은 “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떠올리셨습니까?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유 익하리라  빌1:23-24

 

 

바울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으므로 그렇게 하고 싶으나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남아있는다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믿기어진다면, 우리의 반응은 한 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망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것뿐입니다. 그리고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고 이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이런 것이 믿기어진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남아있는 가족이나 내가 하던 사역이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아쉬워하거나 미련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붙들려고 하거나 걱정할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의사로부터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적어도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순교당한 로마시대 크리스천들이 사자에 물릴 때 비명을 질렀던 것 같은 반응은 보일지라도 그렇다고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이 말이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담담히죽음을 기다리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상황에서 선한 싸움을해 나가야 합니다. 의학적인 도움도 당연히 받아야하고 누려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환자가 죽음 앞에 있을때 그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요? 믿지 않는 자가 볼 때 저 사람도 말기암 환자이고 나도말기암 환자인데, 어찌하여 저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가? 오히려 조금도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의사가 시한부 판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않고 지금도 자신이 이미 나았음을 확신하며 기도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저 사람이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저 사람이현실을 부정하는 기제를 사용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데 그것이 부정이라는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아니다. 그것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컨디션이나빠져 가고 있는데도 이미 나음을 입었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저 사람은 미친 것인가?

이것이 바로 믿지 않는 자들, 아직도 사망 권세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의 눈에 비취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인턴 시절을 되돌아 볼 때 지금까지도 가장 음산하게 기억되는곳이 바로 중환자실입니다. 그 곳에 입원해 있는환자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식이 없습니다. 호흡도 스스로 할 수가 없어 인공호흡기를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합니다. 하루에 한두 명씩 계속 사망해서 병실을나가게 되는, 병원 안에서도 가장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입니다. 그곳은 두려움과 어둠이 사로잡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내게된다면 무엇을 할 것입니까? 주님은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어야 하고 그래서 구제사역을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렇지만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교회가 이 말씀을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우리가 빛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빛의 자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은 내가 건강하거나 아프거나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컨디션에 따라 이루어진 현상이 아니라 내 안에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빛으로 지낼 수 있고 또 빛으로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내 스스로가 나는 더 이상 빛이 아니라고 믿으며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드러나시는 것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사실은 저절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죽음의 신이 운행하고 모든 이들이 죽음 앞에서 심한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는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그곳에서 여전히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는 자들마다 여러분의 빛에노출되어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빛을 느낄수는 있게 됩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월요말씀치유집회에 와서 핸드폰 기도를 전하자 자신의 남편뿐만 아니라 그 옆 침대에서 기도를 들었던 분에게도 놀라운 진전이 있었다고 간증하신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빛으로만 있다면 그런 일은 주님께서 얼마든지 이루실 수 있습니다. 위암말기 환자라도“이 암 말고는 다 좋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궁금해 하고 신비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반응하는가, 왜 굶주린 사자 앞에서도 죽기 직전까지 찬양할 수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결코 어두워질 수 없는 세상의 빛입니다. 중한 질병도 말기암도 결코 꺼뜨릴 수 없는 그런 빛입니다. 오히려 중한 질병과 말기암을 타고 들어오는 어둠의 권세와 능력을 파하는 그런 능력의 빛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아파서 의사 앞에 앉아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물론 의사도 하나님의 자녀로 그 모든 진료 과정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함을받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여러분이 빛으로 그 자리에 있다면 당신의 빛이 그 의사를 밝힐 것입니다. 치료또는 치유는 사랑 또는 빛에 의해서 일어납니다.왜냐하면 상처나 질병은 어둠, 쓴뿌리 또는 죄와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치유장면에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비록 인간적인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합니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비록 환자로 와 있다고 하더라도 빛으로 그 자리를 비추고 있다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모든 의료진, 또는 주위의 환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그곳에 더 많은, 더 빠른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퀴블러-로스의 이론에 대해 반박을 하는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퀴블러-로스는 각자의 환경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환자가긍정적인 경험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들은 그들이 부정적인 경험에 둘러싸여 있을 때와 다른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의 주위에, 심지어 병든 내 몸을 치료해 주는 의사에게 조차 긍정적인 경험이 되는 세상이 빛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