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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부어주시는 성령하나님께 영광

은혜를 부어주시는 성령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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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킹덤빌더다

 

 

 

이경애

HTM USA CFO & Secretary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며 입으로 선포하게 되었다. 물론 실수도 한다. 아니, 실수하는 시간이 더 많다.하지만 이제는 정죄감으로 묶이지 않는다. 회개하고 신앙의허리끈을 다시 묶으며 내 삶 가운데 좀 더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내 삶을 통해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변화되어,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시청각 교재가 되기를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나는 킹덤빌더다!

요즘 나는 때때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나는 하나님의 의다!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주위 가족들에게 경고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외친다. 내 속에서 터질 것처럼 올라오는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을 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삶을 다짐하며 신앙의 허리띠를 동여맬 때 이렇게 선포한다.

30여 년의 미국생활로, 조급해지면 영어가 먼저 나오는, 나는 교포 1.5세에 가까운 이민자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활에 여유도 생기고 두 아이도 결혼시키고 이제 우리 부부도 성경에 나오는 부자의 맘으로 잘 먹고 잘 살자고 생각하며 행복하면서도 보람있는 미래를 구상하며 계획했다. 단기선교도 좀 가고 필요한 곳도 돕고 세계여행도 다니며 Enjoy하며 살자고. 두 아이를 일주일 간격으로 결혼시키고 크루즈여행을 갔다 온 후, 감기도 한번 앓지 않아 병원에는 갈 일이 없었던 남편에게 이제는 우리도 오십이 넘었고 그동안 낸 비싼 보험료도 아까우니, 피검사라도 한번 해보자고 몇번을 사정해서 병원에 가 간단한 검사를 했다.

며칠 후 검사결과가 아무래도 이상하니 암전문의에게 가보라며 의사가 써 준 추천서를 들고 혈액종양 전문병원을 찾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제까지도 잘 지냈는데….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아픈 적 없던 남편이 악성 백혈병이고, 그것도 3기에서 4기로 넘어가는 단계라니!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형선고를 받고(이때가 2009년 9월) 갑자기 들이닥친 너무나 엄청난 일에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온몸에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 의사는 지금 당장 입원해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한국의 중소기업 정도 규모의 회사를 약 30년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남편은 사장이면서 CFO 역할을, 나는 부사장으로 마케팅과 투자 업무를 맡고 있다. 10여년을 남편과 함께 새벽마다 다녔던 교회에 가서 이럴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소리 지르며 얼마나 따졌었던지…. 그동안 누구보다 헌금도 많이하고 비싼 명품백 하나 사지 않고 교회에 먼저 헌금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날마다 가정예배 드리고,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잊어도 하나님은 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는데…. 막내딸은 첫마디 말이 아멘이었고, 예배 때마다 부르는 성인 찬송가를 외워서 부르며 따라하는 모범 가정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그 큰 미국교회의 천정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치며 하나님께 떼를 썼다.

몇 날을 이렇게 고함치며 울고 결정한 것이 가까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병원들의 소견서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네 시간 남짓 달려 기도원에 도착해 짐을 풀고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장로님 부부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드리던 중 기도원 장로님 부부께서 한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다. 우리 사정을 들은 목사님께서 손기철 장로라는 분이 한국에서 사역하시는데, 엄청난 치유가 일어나고 역사가 있으니 그분을 찾아가 보라 하시면서, 그렇게 유명한 분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답은“네! 네!”했지만, 나는 원래 크게 고함치는 목사님은 싫어했고 그런 설교는 들으려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치유사역을 한다면 이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조용하게 기도하고 싶어 왔는데, 마주칠때마다 자꾸 그 이야기를 하신다. 작정한 삼일을 마치고 떠나려는데 갓피플 웹사이트 주소를 적어 주시길래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열어 말씀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말씀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반말에다 욕도 조금 섞어가며 소리 지르는 그런 설교가 아니었다. 조용하지만 강했고 그 옛날에 코스타에서 받았던 은혜, 아니 하나님을 다시 만난 이후로 처음들어보는, 뼈에 살이 붙는 듯 한 시원한 설교였다.

그동안 교회 일이라면 다 도맡아서 해야 했다. 내 몸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없는 시간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면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30배, 60배, 100배로 받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학교 가야하는 아이를 5시에 깨워서 이불로 돌돌 말아 새벽예배에 참석시켰고, 그러면 아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아, 선생님이“Wake up!”을 몇번씩 반복해 깨워주었단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제대로 된 신앙인 줄 알았다. 받은 만큼 드려야 된다고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구원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코스타에서‘구원’이란 소강의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영접했지만 아직도 무엇을하지 아니하면 불안하고 온전치 못했다. “참 복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손 장로님의 설교는 특별했다. 닫혀있었던 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동안 내가 해왔던 신앙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전혀 다른 평안을 주었고, 신앙의 구습을 깨뜨리는 특별한 설교였다. 우리 부부는 TV에 설교를 아침부터 밤늦도록 틀어놓고 설교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날마다 설교를 듣는 중에 남편과 나는 마음에 많은(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침을 받고 있었다.한국에 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으니, 갓피플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일 년간의 설교영상을 다운 받아, 날마다 부흥회를했고, 동생을 통해 장로님의 서적을 구입해 읽으면서 우리두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많은 상처들이 치유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가르친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병을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제물로 드려, 우리의 병은 이미 고침을 받았다고 선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하나님이 싫고 기도하기도 싫다는 아들을 달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렇게 준비되고 아직은 다내 것이 되지 않은 말씀을 마치 맞지 않는 신을 신은 것처럼 억지로 구겨 신은 신앙 아니 믿음을 붙들고 병원에 입원해 그 강한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며 골수를 찾기 시작했다. 형제들에게 연락해 골수가 맞는지 검사를 해야 한다며 준비하고 빨리 답을 달라고 했다.

의사는 샬롯에서 치료가 끝나면 골수이식을 할 병원으로 이동해 2차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마쳐야 하고, 그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나면 골수이식을 해야 하며, 골수이식을해도 부작용과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로 모든 장기와 조직 하나하나가 약해질 수 있어서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알 수 없단다. 더구나 176cm의 키에 평생 60㎏ 정도의 체중을 유지해 온 남편은 몸이 너무나 약해서 이런 치료들을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그런말이 어디 있나….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준비했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1차 화학요법을 마친 후, 남편은 눈뜨고 볼 수없을 만큼 말랐다. 평생 배 나오는 것이 소원이라던 남편의 모습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그런 남편을 보며“잘했어!당신 아주 보기 좋아.”라는 말이 나왔다.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나….(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는 내 입술을 통해 좋은 씨앗들을 심고 계셨고 선포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나 괜찮아 보여?”하고 묻는다.

한국에 연락하고 미국에 사시는 형님의 골수 검사를 남편모르게 진행했다.(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면, 결과가 언제 나올지 잠도 안자고 걱정할 남편 성격 때문에 많은 것을 남편한테 알리지 않았고 본인도 그것을 원했다.) 결과가 나왔는데 한 사람도 안 맞는단다. 세계골수은행(혈액은행처럼 골수검사 결과를 모아둔 자료은행. 여기에서 맞는 것이 있으면 골수 기증자와 연락해 재검사후 이식을 진행하게 된다.)에도 맞는 것이 없단다.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붙들고 집을 떠나왔다.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할 때마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과43장 2절 말씀을 선포했다.

담당의사가 밝은 얼굴로 들어와 골수 검사결과remission(일시적인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골수이식을 하지 않으면 200% 다시 돌아온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수없이 외치며 “담당의사는 하나님을 모르니까 저런 이야기를하는 거야.”라며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손 장로님 설교를 듣고 또 들었는지 이제는 설교를 외울 정도가 되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가까운 가족들에게 서운한 마음도 많이 있었다. 나도 낮아질 만큼 낮아지고 구원에 분명한 확신도 갖게 되었고 참 복음도안다고 생각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음을 입었으니 내 남편의 remission은 준비된 것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선포했다.

숙소로 사용했던 병원 근처 방에서 일부 짐을 챙겨 샬롯 집으로 내려오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감사해서 울었고 ‘혼자서 돌아가게 된다면….’하며 이곳을 올라오던 때가 생각나 울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는 못해요.”했다. 아니 두 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은 몰라서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과정을 알았으니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HTM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9년 9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꾸준히 동영상을 보며 은혜를 쌓아가고 있던 중, HTM 홈페이지에 제1기 북미주「킹덤빌더스쿨(KBS)」을 뉴저지에서 한다는 광고를 보고 신청해(장문의 편지를 쓰고날마다 기도하며 대학발표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렸다.) 참석하게 되었다. KBS 이후에 뉴욕에서도 손 장로님 집회가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비행기 표를 바꾸어서 집회에 참석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둘째딸 부부가 결혼 후 처음으로 연말 연휴를 이용해 집에 오겠단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다시 올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다음날 아침에 떠나는 비행기가 있단다.

남편한테 나는 다시 갈 테니 당신은 아이들하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먹을 것들을 준비해 놓고 비행기 표와 호텔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는데, HTM 식구들이 묶는 같은 호텔,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것도 손 장로님 옆방이다. 밤새도록 침대가 공중에 뜨는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로비에 내려가니 먼발치로 사역자들이 눈에 뜨였지만 선뜻 다가갈 수가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하고 왔다. “하나님! 당신의 뜻이라면 저들과 같은 호텔 가까운 방으로 인도해주세요.”나는 분명히 보았다 내가 동영상으로 받았던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있는 것을! 저들 가까이에서 그 기름부음의 부스러기라도 받고 싶은 심정으로 찾아갔고, 그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서 있는 집회는 다 참석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집회가 생각난다. 그때도 여전히 이틀마다 피검사를 하며 피와 혈소판을 수혈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 담당의사가 일반 여객기는 감염의 위험이 크고 혈소판과 적혈구 수치를 가늠할 수 없으니 못 간다는 것을 사정사정을 하며, “당신은 모른다. 하나님이 다 고치셨다. 필요한 적혈구나 혈소판은 미리 좀 여유 있게 수혈해 달라. 그리고비상시 가야할 병원을 준비해 달라.”조르고 또 졸라 갑작스럽게 개인 비행기는 안 되니, 마스크를 쓰고 예수의 피로 씻고 일반 여객기로 무사히 도착했는데, 샌프란시스코 호텔에 도착해서는 남편이 마스크를 쓰지 않겠단다. 손 장로님의 영권을 저하시키는 것 같아 마스크를 못 쓰겠단다. 아직은HTM 식구들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럽고, 사역자 틈에 끼어있으면서 마스크를 쓰는 것도 미안하니, 마스크도 쓰지 않고 집회에 다 참석하였고, 낮 시간을 이용해 피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만 마스크를 쓰고 아무것도 만지지도 못하게하고 조심 또 조심을 했던 일이 생각이 난다.(이 집회는 암환우회에서 주선했는데, 암 투병하며 간절히 장로님을 기다리고 준비하시던 분은 돌아가셨지만, 예정대로 열린 집회였다.)

샌프란시스코 집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운데 일상으로 돌아와 그저 감사하기만 하던 어느 날, 담당의사에게 암세포가 다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는 이전에 경고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화학요법도 두 배로강하게 해야 하는데, 다시 remission이 될지는 알 수 없단다. 이제는 시간이 없단다. 너무나 빨리 암세포가 움직이고있으니 빨리 병원으로 돌아오란다. 잠시마나 평안을 얻은 듯했던 우리 가정은 다시 술렁댔다. 막내 동생을 다시 불러 막내딸을 부탁하고 짐을 싸서 병원으로 가며 몇 번이고 남편에게‘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다짐시켰다. 이제는 갈 곳이 없다. 마음에 여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다시 온 이곳은 이전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다. 화학요법과방사선 치료 시작부터 사람이 기진맥진해지면서 열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의사들도 내 눈치만 살피며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단다. 40여개의 병상에 환자들이 수시로 바뀌고있었다. 같은 병동에 있던 젊은 한국인 형제도 하나님 품으로 갔다. 남편은 꺼져가는 등불처럼 그저 희미하다. 이제는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다.아들은 3학년 마지막 방학을 앞두고 유럽 교환학생으로 다시 가려던 것도 중단하고 아빠가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마치고 나오면 아빠에게 골수를 이식해 주기 위해 대기하고있는 상태다.

하루하루 일초가 일 년처럼 길다. 또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다. 고열은 하루에도 몇 번씩 비상에 비상을 걸었고 그때마다 나는 HTM에 메일을 써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고열이 잠잠해진다. 손 장로님설교를 듣는 중에도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데, 그럴 때면 바로 손 장로님의 고함소리가 나를 깨운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명하노니 죽음의 영은 떠나가!”라고 고함치며 선포한다. 남편도 어쩌다 입을 열면“예수님, 감사합니다!”한다. 무엇을 감사한단 말인가….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한다. 그렇게 말도 없는 사람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놀리는 집사님들도 있는데, 그런 남편이 오줌 싸고 똥 싸고 토하고 이제는 정신도 혼미한지 언제 잠옷 바지에 똥을 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감사하단다.

죽음 같은 터널, 지옥의 터널을 어느덧 빠져나오고 있었다. 2단계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골수이식 팀으로 옮기게 되었고, 옆 병동으로 옮겨 3단계의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골수이식이다. 하루하루가 시간싸움이었다. 이제는 시간도 요일도 알지못하고, 매순간 극도의 긴장감으로, 말씀으로 무장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이 시간들이 나에게는 거룩한 낭비의 시간이었구나…’생각이 들면서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얼마나 긴 시간을 나의 아버지는 기다리고 계셨는지…. 인생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보며 끝까지 기다리시고 예비하셔 내가 무슨 용도로 지어졌는지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킹덤빌더로 세워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그 긴 시간들은 매순간이 장로님의 지식의 말씀의 실험 현장이었다. 처음에는 알지도 못하고, 아니 머리로만 생각하는 상태였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결정하는 단계가 아니라, 말씀 속에 내가 맞추어지기 시작했고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성령하나님은 이 시간들을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기다리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안에서 예수님 없이 하는 모든일을 멈추게 하셨고, 불안하지도 걱정하지도 않고 늘 입술에서는 감사가 터져 나오고 지쳐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를 방긋방긋 웃으며 위로하고 여분으로 만들어 놓았던 성구말씀들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 무균실 복도를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방방을 씻고, 두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복도에 나와 있는 환자의 옷자락을 살짝 스치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명하노니 죽음의 영은 떠나갈지어다!”선포하였다. 그 일들을 통해 나는 확신 그것보다 더 큰 힘을 공급받았다.

그동안 늘 틀어놓고 들었던 손 장로님의 지식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살아서 역사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혈구,적혈구, 혈소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치가 올라갈지어다!”선포하고 나면 수치가 올라 수혈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그 이전에는 수혈할 때마다 너무나 심하게 부작용을 겪었다.)

우리가 왜 이 곳에 와 있는지도 잊고 피부와 뼈만 남은 남편을 보며“당신 잘하고 있어!”라고 인사를 건넨다.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예수님, 감사합니다!”로 답하고“수혈 안 해도된대!”하며 좋아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정해진 골수이식 날짜가 다가왔고 아들도 준비를 마치고 다음 과정을 진행하려고 하던 차에, 의사들이 아들의 골수보다는 제대혈 줄기세포로 이식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권고대로 이식을 마치고 일 년간의 병원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일 년 후인 2012년 5월 11일 이제는 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남편 몸에 살도 붙고 조금씩 운동도 하며 생활에 적응하고 있어 한국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동안 동영상으로만보고 받았던 은혜를 꼭 월요말씀치유집회에 직접 참석하여 누리고 기도하며 떨림으로 비행기 표를 구입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피검사에서 CMV 바이러스가 검출되었고 수치가 아주 높단다. 의사는 좀 더 상태를 지켜보자며 한국에 가는 것은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자고 한다. 기다리고 기다렸었는데 검사결과는 우리를 한국에 갈 수 없게했다. 너무나 아쉽고 슬펐지만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는 어느덧 2년이 지나 그토록 오고 싶었던 한국에 나와이 글을 쓰니 눈물이 내 앞을 가린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나를 그 때 그 시간으로 다시 이끌어 참 많이 힘들게 했지만 오히려 지금 이곳까지 인도하신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얼마나 기다렸던 월요말씀치유집회인가! 그 얼마나 사모했던 은혜인가! 이곳 한국에서, 월요말씀치유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 부부는 한량없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성령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했던 HTM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